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Dec 13. 2019

아이유를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나는 아이유를 좋아한다. 아이유가 [미아]를 부를 때부터 쭈욱 그랬다. 논란의 여지도 없을 가창력은 물론이거니와 언제나 소탈한 모습, 노래에 대한 사랑과 열정,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 모든 것이 아이유를 좋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벌써 데뷔 10주년을 넘어선 아이유를 내가 그동안 미친 듯이 좋아해 왔다고 하긴 애매한 구석이 있다. 애매하게 좋아한다면서 브런치에 글까지 쓸 일인가 한다면, 딱히 할 말도 없다. 그저 TV에 나오면 좋고, 노래를 들으면 좋고, 신곡이 나오면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는 것 말고 뭐 더 할 게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사실 나는 누구를 그렇게까지 좋아해 본 적도 없다. 누구의 팬클럽에 가입해 본 적도 없고, 연예인을 쫓아다녀 본 적도 없고, 누구 사진을 붙인다든지,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고 좋아라 한다든지 한 적도 없다. 그저 아무리 좋아도 먼발치에서 마음으로 응원하며 잘 되길 바라는 정도랄까.


물론 문화생활을 좋아하기 때문에, 뮤지컬, 콘서트를 즐기러 간 경험은 많다. 국카스텐, 이소라, 오지은, 성진환, 찰리 푸스(Charlie Puth), 크렉 데이비드 (Craig David),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 해외 가수든 국내 가수든 가리지 않고 많이 다녔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이유 콘서트를 가야겠다, 꼭 가고 싶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아이유 콘서트에 간다고,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간다고 했을 때, 나온 첫마디는 모두 하나같이 '변태'였다. 나이차가 몇 살인데 아이유를 좋아하느냐, 어린 여자애를 좋아하는 거 보니 변태가 틀림없다, 혹시 이상한 취향이 있는 거 아니냐, 뭐 그런 반응들이었다.


뭐라고요?

아니, 갑자기 변태라니. 갑분변 - 이름도 더럽다 - 이라니, 내가 왜 변태야? 아이유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랬더니 다들 하는 말이 이랬다.


니 나이가 몇인데, 너 완전 아저씨잖아
아이유가 뭐냐 아이유가? 너 내년에 40이야.

그래, 내년에 나는 마흔이다. 혹시 몰라서 소심하게 검색창에 찾아봤더니, 마흔이면 이제 '중년'이란다. 중년이라니. 그래 나는 곧 중년이다. 그렇다 치자. 그래서 중년이면 아이유를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다들 쉽게 믿지 않지만, 내가 아이유를 좋아하던 방식과 그 이유를 설명하면 다들 놀라곤 한다.

 



첫째, 나는 아이유가 작사가로서 가진 장점이 사실 가장 좋다. 아이유는 진짜 '한국말'을 멋스럽게 잘한다. 그 말이 무엇이냐면, 좋은 노래를 위해 정말 예쁘고 좋은 단어를 고를 줄 아는 안목을 가졌다. 이게 내가 아이유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모두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지만. 특히 [무릎], [밤편지], [마음] 같은 노래들은 가사가 예쁠 뿐만 아니라, 위트 있고, '다른 사람이 쉽게 쓰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게 마음에 든다. 무릎을 '무르블'이라고 하지 않고 '무르플'이라고 하는 예쁜 노력도 좋다. 아이유는 딕션도 좋다. 남들은 소화하기 힘든 어려운 단어도 또박또박 전달한다. 대체 뭘 부르는 건지 가사 전달도 안 되는 후크송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당신의 창 가까이 반딧불'을 보낸단다. 21세기에, 반딧불이라니, 반딧불이라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머리칼을 넘겨 달란다. 탐색하는 불빛, 이 선 넘으면 침범, 정중사양, 다들 수군대는 걸 자긴 아나 몰라라니. 남들은 절대 쓰지도 않을 단어들을 생각지도 못한 창의력을 담아 쓰고 또 쓴다. 가사만 귀 기울여 봐도 만족감이 불꽃놀이가 되어 터진다.


둘째, 나는 아이유가 작곡가로서 가진 장점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수를 나름 평가하는 기준이 있는데, 정말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리듬, 음색, 멜로디, 음역대, 템포, 박자 이런 모든 걸 가지고 논다. 가창력이 좋은 가수들은 그렇지 못한 가수들에 비해, 참신한 진행, 조성 바꾸기, 박자 변형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가창력이 좋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천편일률적인 노래와는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들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모든 난이도를 소화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잘 못하면 동일한 음이 수십 번 반복되는 후크송 부르고, 한정된 음역대에서 놀아야 하니, 새로운 시도 자체가 불가하다. 아이유는 그걸 다 뛰어넘는 작곡 능력, 가창력을 가진 가수 중 하나다.


셋째, 나는 아이유가 정말 대단한 대중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남이 듣고 싶은 얘기가 아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태도가 참 좋다. 내가 BTS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다들 자기 얘기를 하기 때문에, 공감이 깊어진다. 나도 그래, 너도 그렇지?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는데의 케미스트리가 폭발한다. 흔히 노래를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가수들을 보면 앨범 안의 통일성도 없고, 발표하는 싱글의 연속성도 없다. 사랑했다가, 헤어졌다가, 이별했다가, 상처 받았다가, 극복했다가의 기승전결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힙했다가, 갑자기 누구에게 사랑에 빠져 졸졸 따라다녔다가, 갑자기 섹시했다가, 갑자기 청순해진다. 그리고 다들 스웩, 스웩 거린다. 본인이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주어진 곡을 그냥 기계처럼 멋 부리면서 소화하는 거다. 체할라.


넷째, 나는 아이유가 성장하는 아티스트인  너무 좋다. 좋은 날, 너랑 나, 스물셋, 팔레트, 삐삐, 블루밍, 그리고 이번 앨범 [LOVE, POEM] 속의 모든 노래들을 부르는 아이유를 직접 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위로와 공감, 그 자체다. [팔레트]에서는 '좋은  부를   예뻤더라'라는 위트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서사'다. 위로다. 본인이 성장해 나가며 고민한 흔적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이번 앨범의 [자장가], [시간의 바깥], [LOVE, POEM]이 크나큰 위로를 전해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성장과 고민, 치열함과 혼란 속에서 정제한 자기만의 생각이 담긴 노래들이 너무나 좋다. 그래서 아이유의 노래가 발표되면 나는 항상 전곡을 다 들어본다. 그래서 싱글 앨범일 때가 가장 아쉽다. 아이유는 힘들겠지만 조금 무거운 앨범이 발매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예닐곱 곡, 아홉 열곡도 좋다. 그냥 세상에 '제대로 들을만한 노래'가 많아졌다는 게 반가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대단한 가수이면서도 여전히 장난기 있고 소탈한 아이유가 좋다. 1106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가수 이지은이자 dlwlrma. 그런 그녀가 싱가포르 콘서트에서 보여준    없는 소탈함은 모두의 친구이자 동생이자 누나,  같은 모습이었다. 항상 객석과 대화하고, 요청받은 신청곡을 바로바로 불러주고, 자신을  모르는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고, 본인을  아는 친구들에게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잊지 않았다. 노래 설명을 하고 부르든 아니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공연의 시퀀스대로 모든 상황을 예상해 보고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증거다. 그러면서도 그 바쁜 와중에 언제 공부했는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자신의 얘기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려는 노력 덕에, 객석은 언제나 환호와 웃음으로 가득했다.




이번 아이유 LOVE, POEM 콘서트는 한국을 떠나,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돈다. 나는 현재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기 때문에 12월 21일의 공연에 가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싱가포르 친구들도 만날 겸, 바람도 쐴 겸 12월 6-7일 싱가포르 콘서트에 다녀왔다. 공연장의 차이도 있지만 더 가까이서 보기에도 좋았고,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말레이시아보다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연을 최대한 즐길 수 있었다. 당초 하루였던 콘서트가 이틀로 늘어난 것도 대단한 인기를 실감하게 해 주었지만, 솔로 가수로 혼자서 무려 서른 두곡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팬들에게 보답하려는 아이유를 직접 보는 건 감격 그 자체였다. 공연 막바지가 되면서 목이 완전히 쉬어버렸는데도, 마지막 곡까지 열정적으로 토해내는 아이유에게 그렇게 고마울 수도 없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준다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그래, 나는 아이유의 광팬이 아니다. 아이유가 활동했던 11년 동안, 앨범을 사본 적도 공연에 가본 적도 없다. 그저 아이유를 응원하고 그녀의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나의 작은 소명을 다 했다. 나는 그저 아이유의 모든 노래의 가사를 대부분 외고 있다. 듣고 싶어서, 듣기 좋아서 듣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이유의 노래를 통해 아이유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했더니 반복해서 감동하고 탄복하게 되더라. [싫은 날]이라는 노래를 좋아하고, [무릎]과 [푸르던]을 좋아하고, [이런 엔딩]처럼 슬픈 노래도 없고, [스물셋]의 솔직함이 좋고, [자장가]의 애잔함이 좋다. 그렇다. 나는 결국 아이유의 광팬일지도 모른다.

 

결국 11년 동안 재야에 묻혀 지냈던, 스물여덟부터 서른아홉까지 아이유의 노래에 감동하며 뮤지션 아이유를 응원했던, 아이유가 좋아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며 열광했던, 11년 전에는 다행히 '변태'가 아니었던, 11년 후에 '변태'가 된, 그런 아이유의 팬일 뿐이다. 오직 내가 이제 곧 마흔이라는 이유 때문에 변태가 된.



정말, 마흔의 남자라면 아이유를 좋아하면 안 될까. 그럴싸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내 나이가 마흔이라서 내 취향이 우습고 변태스럽다고 말하는 세상에 사는 건 왠지 꽤 고약하다. 그렇다면 밀레니얼이 비틀스를 듣는 건 고리타분할 일이고, 중학생이 성시경, 박정현 노래를 듣는 건 애늙은이 같은 짓일 거다. 어르신이 BTS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이가 드셔도 철은 없으시네요 라고 말할 심산인 건가. 나는 당신의 취향이 어떤지가 궁금할 뿐이지, 당신의 취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당신의 관심사가 궁금한 것이지, 그 관심사가 내 기준에 맞는지 아닌지는 알바 쓰레빠다. 그러니 내 취향이 당신의 기준에 맞는지도 알바 쓰레빠22다. 그건 옐로 씨 에이 알 디.  


  넘으면 정색이야 Beep.

추가로 더 할 말 없냐고?


그래, 뭘 해도 너무 이쁘다.


그리고, 12월 21일에도 쿠알라 룸푸르 콘서트에 가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pM35t-U20&t=15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