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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May 18. 2020

죽을 거 같다는 기분이 어떤 느낌인 거야?

모든 종류의 마스크를 쓰고 달려보았다.

가끔 달리기로 내 건강을 체크하곤 한다. 몸이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어디까지 수월하게 뛸 수 있는지, 기록이 얼마나 유사하게 유지되는지,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쿵쾅거리는지.


호흡에 집중하면서 한번 뛰어 보면 안다. 체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관절과 무릎의 상태는 어떤지. 들숨과 날숨의 박자는 어떤지. 어디까지 달려 나갈 자신감이 있는지.




코로나 시대의 달리기란 제법 쉽지 않은 구석이 많았다. '이 시국'에 굳이 밖으로 나간다는 두려움부터 시작해, 괜스레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걱정. 어딜 가도 마스크가 없는 게 어색한 시대에 마스크를 쓰고 헉헉대는 게 옳을까 싶은 의구심.


면 마스크를 쓰고 달려보았다. 외과용 마스크를 쓰고도 달려보았고, KF94, KF80도 다 써봤다. 결론은? 정말 죽을 거 같다는 것.  

정.말. 말.그.대.롭.니.다.  

외과용, 덴탈 마스크는 워낙 얇아서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펄럭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풀고 줄어든다. 얇은만큼 쉽게 젖기도 한다. 이런 마스크를 쓰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질주를 하면, 공포 영화나 스릴러 장르가 떠오른다. 비닐봉지, 랩 같은 걸로 사람을 질식시키는 아찔한 장면. 생이 짧아지는 기분, 딱 요단강 건너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큰일 날 법도 하다. 코와 입에 마스크가 들러붙는 순간 가슴이 멈추는 느낌.

안 죽고 집에 돌아와서 기쁘다.

일반  마스크는 내뿜는  때문에 서서히 무거워지축축해진다. 숨을  수가 없다. 덴탈 마스크보다 숨이 더 뻑뻑히 오간다. 좋을 리가 없다. 한번 젖어들고 나면 외과용, 덴탈 마스크보다 숨쉬기가 더 불편하다. 두께가 있으니 땀은 오죽한가. 필터 처리가 되어 있는 수제 면 마스크도 써보았다. 굳이 더 설명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KF80, KF94, N95등은 애초부터 운동용할 때 쓸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마스크 착용만 해도 답답하단 사람도 있을 정돈데, 이런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코 지지대를 한껏 구부려 일부러 숨을 쉴 수 있게 하거나 - 그렇다면 마스크의 본질은 버리겠다는 심산 - 코는 내어 두고 입만 가리는 정도라 해도, 들숨 날숨이 마스크 안에서 돌고 도는 기분 때문에 답답함이 심해진다. 나중엔 그 안에 땀과 타액이 고여 나가지도 않는다. 이런 마스크를 착용하고 달리기에 욕심을 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중국에서 체육시간에 마스크를 썼던 아이들이 잇따라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너무나 필연적인 사고, 그야말로 인재(人災)다. 한없이 안타깝고 탄식을 금할 수 없는 일.




공황장애를 13년째 갖고 있는 내게 달린다는 건, 내가 내 마음대로 정한 일종의 행동 치료 중에 하나다. '공황장애 중증도 테스트' 다. 과연 얼마나 숨이 차야 공황 증상을 느낄까 가끔씩 시험해 보는 . 


때로 나는,
나에게 무척 가혹하다.

어떤 날은 달리기를 하다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어김없이 공황 증상이 느껴진다. 어떤 때는 마스크가 코와 입에 달라붙어 숨 쉬기가 어려워지면서 호흡 곤란이나 과호흡이 온 적도 있다. 혹 그렇게 공황 증상이 오면 진정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불안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지, 느리게 뛰거나 심호흡을 하며 걷는 동안 찬찬히 정리해 본다. 그렇게 계속 반복함으로써 내 몸이 무리하지 않는 한계를 찾고, 조금 빠르게, 조금 느리게 아슬아슬한 변주를 타면서 내 심장과 내 숨이 버텨주는 수준까지 끝없이 달리며 나를 체크하는 일. 그게 2-3일에 한 번은 꼭 10km 이상 달리기를 하며 하는 나만의 '의식' 중에 하나다.


그래, 나는 뛸 수 있어

내 심장은 건강해.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일은 쉽지 않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특히 아이들이나 노약자 분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고, 건강하자고 하는 일이 자신의 안녕에 위협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사람이 가까이 오거나, 동선이 겹치면 달리기를 잠시 중단한다. 사람과 점점 가까워지면 마스크를 고쳐 쓰고 걷거나 잠깐 멈춘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있다면 더 조심한다. 가끔은 '무슨 오버냐' 할 때도 있지만, 예닐곱 초 숨을 참고 사람들을 피해 지나갈 때도 있다. 나도 알 수 없게 몰아쉬는 숨 때문에 타인이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행동이 꽤나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걸까, 그런 건 모르겠다. 그저 그 마음으로 이 시대를 버티어내는 것이다.


그저 뛸 수 있음에, 그저 오래 걸어도 되는 체력이 있음에, 10km가 무리가 되지 않는 건강이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가끔 공황장애가 오면 죽을 거 같단 기분이 어떤 느낌인 거야? 라고 묻는 분들이 많다. 아마 작가인 내가 설명해 준다면 더 상세하게 그 느낌을 묘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모양이다.


공황을 겪는 사람마다 느낌과 상황, 증상은 모두 다르다. 다만 마스크를 끼고 10km 달리는 느낌은 아래의 왼쪽 리스트의 1,2,4,5,6,8,11,12번의 느낌이 동시에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하다. 환장할 노릇? 그러니 아무리 운동 의욕이 넘치더라도, 꽉 막힌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지 않기를. 아무리 남 생각한다손치더라도, 서로 건강하자고 쓰는 마스크로 본인의 안전을 소홀히 하지 말길. 정말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죽을 거 같은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억지로 본인을 학대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마스크를 매일 써야 하는 코로나 시대의 일상은 가혹하다. 계단을 올라가거나, 언덕을 올라야 하거나, 서둘러 와 버린 지하철, 버스를 잡아 타려고 종종거리다 과호흡이 오는 상황은, 마치 내가 스스로 '공황이여 오라~'라며 주문을 외고 불러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손가락 하나라도 잠시 넣어 숨 쉴 구멍을 마련하는 공황인의 마음도 헤아려주시길. 반대로 그런 불안과 공포가 올 수도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결국 더 중요한 이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꼬박꼬박 마스크를 챙겨 쓰는 공황인의 마음도 받아주시길.

출처: 네이버, 삼성서울병원 공황 증상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마스크를 벗고, 언제 어디서든,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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