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Jun 08. 2020

진짜 요가의 성지, 제주

제주 새벽 수련이 준 큰 깨달음.

제주는 요가로 유명하다. 요기니로 유명한 연예인 이효리 씨가 제주살이 붐을 일으키고,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도, 제주 요가는 그랬다. 국내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이국적인 풍경, 여유로운 환경,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가 제주여서 그럴 테다. 그런 제주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으로 요가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체험의 장이 될 뿐만 아니라, 중상급 요가 수련생에게도 도전의식을 고취시킬만한 실력 있는 요가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유명 요가 강사들도 때가 되면 제주에 내려와 특별 요가 수련을 하거나, 요가 강사의 스승 격인 선생님들께 기초와 원리를 깨닫고자 새로이 요가를 배우곤 하니, 어쩌면 제주가 요가 수련의 최종 목적지처럼 긍정적인 변모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유명한 요가원 중 하나인 아난드요가원. 다들 어찌나 잘하는지. 나도 꾸준히 수련해 훌륭한 요기가 되고 싶다.

나는 4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요가를 처음 시작했다. 원인 모를 흉추골절을 겪고 나서 공황장애까지 앓게 되었고, 정형외과에서는 무리한 신체활동을 평생 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그래서 더 배우고 싶었다. 업무 스트레스와 건강염려증, 아무리 쉬어도 뻐근한 목과 허리, 어깨, 부실한 다리까지 고루 튼실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 생각했다. 순환과 흐름 속에서 나의 호흡에만 집중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쉼표를 찍기에 요가만큼 좋은 운동도 없다 싶었다. 


처음 멋모르고 요가를 시작했을 땐 단순히 유연함에만 정신이 팔려, 뻣뻣한 몸뚱이를 요리조리 가누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요가를 한다고 하면 '남자가 요가를 해요?'라든지, '요가는 너무 정적이기 때문에 재미없지 않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런 질문들에 제대로 답할 수 없던 내가 요가 수련을 딱 일주일 해보고 대답을 얻었다.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절대로요.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더 많은 움직임과 열림이 끝없이 일어나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 내 몸과 세포, 관절 하나하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이, 동적이고 조직적이며, 어떨 땐 현란하기까지 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굴-몸을 앞으로 구부리는 동작-을 처음 할 때는 손가락 끝이 무릎을 넘기는 것도 어려워했다. 후굴-허리를 뒤로 젖히는 동작-은 끙끙거리며 하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었었다.

수련생들의 자세를 하나하나 잡아주시는 아난드 선생님. 저 잔근육 속에 선생님의 세월이 녹아있을 테다.


어느덧 요가를 조금씩 알게 된 지 4년이나 지났기에, 이제는 안다. 좋은 통증, 나쁜 통증, 그것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모든 건 그저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을.'


깊은 호흡을 통해 내 몸과 정신을 들여다 보고, 어디가 막혔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그 이유가 뭔지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추상적으로만 들리던 '숨을 불편한 곳으로 보내어 흐르게 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말이다.



제주에 오래 내려온 김에, 두 가지 요가를 함께 시작했다 - 이건 내 인생에 쉽게 없을 일이다 - 첫째, 하타요가로 유명한 아난드 선생님께서 지도하시는 아난드 요가원에 매일 새벽 수련을 하기로 한 것. 두 번째로 에어비앤비 체험 중 하나로 해외에서도 유명한 싱잉 볼과 명상을 병행해 보자고 마음먹은 것.


난 이거 잘 못한다. 어깨 빠질 것 같아..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제주를 떠나는 나는,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요가 체험을 통해 매우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됐다. 무기력한 몸뚱이를 질질 끌며 발걸음을 옮겼던 첫날과 다르게, 이제는 머리가 맑고 심신이 건강해진 느낌이랄까.


20일 안에 그게 된다고? 맞다. 이 모두가 꾸준한 수련, 나의 마음과 몸을 들여다보는 연습, 명상과 울림을 경험하면서 가능해진 것들이다. 아난드 요가원은 20년 넘게 요가를 가르쳐오신 아난드 원장님께서 직접 지도하시는 요가원이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요가원에서, 무려 새벽 5시 반 수련을 주 5일 참가했다. 온기가 느껴지는 요가원 바닥에 누워 사바사나로 긴장을 풀고, 비틀고, 비틀고, 열고 열어가며 수련을 하는 과정은 지금껏 내가 주로 체험했던 빈야사 요가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자세도, 마음도 새로워야 했고, 큰 집중과 인내도 필요했다. 하지만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요가를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열두 번 경험한 지금, 나는 새로운 자세와 마음만큼 조금은 새로운 사람이 됐다.


모든 게 흐름 안이라. - 아난드 -

아난드요가협회 아난드 선생님.

모든 게 흐름 안이라. 이 말은 바로 아난드 요가원의 스승님이신 아난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처음 요가원에 등록한 나 같은 모지리 제자도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수업이 끝난 후 이어지는 차담을 통해 많은 걸 일깨워주셨다. 이곳저곳 걸려있는 믿기지 않는 사진을 봤을 땐, 처음엔 선생님께서 무서운 분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물론 3주 차의 수련이 끝난 지금은, 아난드 선생님은 따뜻하고 열린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됐지만. 위트 있고,  배려도 넘치신다. 제자들 하나하나를 아끼는 마음과 관심 덕일 게다. 수련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차 한잔 하고 가.'라는 말에 발길이 멈추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요가는 인생과 같다. 큰 줄기의 흐름이다. 졸졸 흐르다가 어느덧 모여 너른 강물이 되기도 하고, 가던 길에 돌에 부딪혀 물방울로 깨지기도 하고, 모래 언덕을 만나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맑은 날도, 흩뿌려졌다가 흐릿해지는 날도, 졸졸 거렸다가 또다시 우르르 쾅쾅 흘러가는 날도 있는 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흐름. 그게 있는 그대로의 인생, 제대로의 인생이 아닐까. 자연스러운 것. 흐름이 있는 것.

입이 떡 벌어지는 고도의 균형미.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수련하면 이런 동작도 할 수 있게 될까. 선생님 양말 사드려야겠다.


바로 그 흐름 안에서, 아난드 선생님의 철학과 요가에 대한, 또 후학 양성에 대한 열정까지도 배웠다. 잘못된 동작을 바로잡아 주시는 모습을 보면 왜 요가의 성지 제주, 그 중심에 아난드 요가원이 있는지 쉽게 깨닫게 된다.


남들은 쉽게 쉽게 하는 아사나-요가 동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에게도 때론 이름을 불러주시며 '주혁, 손목을 더 펴봐.', '주혁, 방향 바뀌었다.', '주혁, 다리에 힘 빼고.'- 이건 분명, 지적인데 좋다, 나란 녀석, 변태인가?- 지도를 해주신 바람에,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늦잠조차 잔 적이 없다.


몸과 마음이 가지런해지는 요가 수련도 수련이지만, 수련 후 이어지는 차담에서도 아난드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모든 것들을 체득하고 싶었다.


그러니, '아침 수면형 인간'인 내가, 매일 아침 4시 50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요가원으로 향하게 한 아난드 선생님의 가르침은, 사실 나에겐 조금 과장을 보태어도 기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밖에 방법이 없다. 요가의 'O'도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 요가의 원리와 이치를 쉽지만 깊게 깨닫게 해 주시니, 4년 동안 못해본 동작들까지 조금은 더 열고, 더 펴고, 집중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흉추골절과 거북목, 허리 디스크 때문에 지난 4년 간 한 번도 못해봤던 차크라-온몸을 뒤로 젖혀 아치 모양을 만드는 후굴 자세-를 처음 해내기도 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차크라를 꾸준히 연습하며 제주를 떠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해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아난드 선생님의 훌륭하신 가르침 덕분이지만.


나는 이런 거 못한다.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아..

그뿐일까. 본인이 쉬실 법도 한 긴긴 시간을 오롯이 내어 귀하디 귀한 차를 선뜻 내어주시며 편히 더 마시라 권하시고, 한 명 한 명의 대소사를 물어봐 주시는 선생님. 속 깊은 진리가 들어있는 말씀까지 따뜻한 차 위에 얹어주시니, 나도 모르게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온다. 어떻게 요가 스승님들은 그렇게 말 한마디로 천 가지의 울림을 주실까.


그러니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요가 선생님들이 제주에 찾아와 추가 수련을 하고 지도자 과정을 밟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닌 듯하더라. 수련이 한참 부족한 내가 당장 도전하진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요가를 수련해 언젠가 요가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싶게 만들기 충분한 이곳.


따뜻하고 배려가 넘치시는 선생님. 나는 아난드 선생님이 수련 시간에 하시는 쁘라나(Prana)가 너무 좋다. 비틀고, 비틀고, 열고, 열고. 그 안에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격주로 서울에서도 요가 수업을 하신다 해서, 집에 돌아가면 몰래 한번 찾아가 보려 했지만 알고 보니 그 수업은 TTC (Teacher Training Course)여서, 나 같은 요린이(요가+어린이), 요생아(요가+신생아)는 참석할 수 없는 수업이라고. 너무 아쉽다. 언제 다시 제주에 내려와 아난드 선생님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부디 다시 뵐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고, 훈훈하고 정겨운 웃음, 시조를 읊는 듯한 그 쁘라나 모두 잃지 않으시길.  



토요일엔 햇살이 따뜻한 오후, 창가로 제주의 바람의 넘나드는 호젓한 곳에서 요가와 명상을 함께 했다. 내가 살던 말레이시아에서 인기가 아주 많았던 싱잉 볼(Singing Bowl) 수업이 있다길래 참석해 본 에어비앤비 체험. 싱잉 볼을 통해 온몸 끝까지 전해지는 진동을 느끼고 그 흐름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느낄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이 체험에서 새롭게 만난 지예슬@i_msg, 김지윤@yogahajiyoon 선생님도 그동안 내가 알던 요가를 너머, 기본과 철학에 집중한 요가의 의미를 새로 보게 만들어 주신 분들.

더불에 요가 수련 후에 이어지는 비건 식사 체험은, 지금은 잠시 그만두었지만 한동안 채식을 꾸준히 해오던 나에게 더없이 좋은 건강한 한 끼였다. 뜨끈한 청국장에 열 가지 야채, 채소 반찬이라니. 온몸이 노곤해지는 수련 후에 노을이 지는 곳에서 먹는 채식 상차림은 역시 모든 것이 '흐름이다'를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이루고, 그렇기 때문에 깨끗하고 선한 것들을 먹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자연과, 생태계, 삶의 흐름. 순환의 고리. 지구와 생명의 흐름.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흐름이라는 것. 모든 게 흐름 안이라는 것. 결국 내려앉고 나약해지는 나날들도, 불편한 통증, 반갑지 않은 고통도 찾아왔다가, 지나가고, 멀리 흘러 다시 또 돌겠지만. 그러니, 고통도, 기쁨도, 좌절도, 즐거움도, 그저 순리대로 흐르는 대로 가보는 게 인생의 과정이자 참 의미일 수 있다는 것.


이제 는 내 스마트폰 배경화면이 된 아난드 선생님의 말씀.


새벽 수련을 통해 참 따뜻하고 맑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수련을 함께 하며 정담을 나눴던 요가 강사님들 (특히 미나 쌤 @mina•_•3936, 아르나 쌤 @arna_yoga_jh), 언제나 자세가 바르시던 필라테스 강사님들, 이 분들의 열정에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지도자가 되었고, 꾸준한 가르침을 통해 또 다른 제자들을 길러내면서도, 본인의 수련과 배움을 위해 기꺼이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더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 오늘도 긴 호흡을 내뱉는 사람들.


그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이 아름다운 제주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언젠가, 고맙게도 그 좋은 흐름이 내게 다시 찾아와 준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