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불타오를 당신의 밤
일단 시작하면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넷플릭스 시리즈 몇 개를 추천하고 싶다. (나만 당할 수 없어..) 이제부터 하얗게 불타오를 당신의 밤에,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불면증을 선물한다.
띵동, 불면의 밤이 도착했습니다.
1.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
드디어 시즌3 시작. 지독한 불면이 또 시작될까 두려워서 세 번째 에피소드까지 밖에 못 봤지만, 수작임은 분명. 학교 폭력, 차별, 집단 따돌림, 왕따 등 불편하지만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나라 제목은 <루머의 루머의 루머>지만, 원제인 13 Reasons why는 시즌 1의 주인공인 해나가 자살을 하면서 왜 해나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13가지의 이유를 다루는 방식으로 에피소드를 이어나간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원제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물론 <내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열세 가지 이유>라고 제목을 붙였더라면, 애초에 김샜겠지만.
어마어마한 시리즈의 인기와 파급력 때문인지, 각각의 시즌 앞뒤로 출연 배우들이 직접 나와서, 학교 폭력, 성폭력, 자살 충동, 왕따, 따돌림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면 언제든지 공식 웹페이지나 핫라인으로 연락해 달라고 공익광고와 유사한 메시지를 남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우리가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다시피-너무나 많고, 시리즈를 통해 설마 있을 수도 있을 악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의미에서 일 것이다. 이미 결론을 풀어놓고 시작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만 시청자의 심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영리한 작품. 실제로 시리즈 속에서 등장하는 많은 아이들의 고민과 위험을 예방하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애잔한 공감과 구슬픈 위로와 진지한 고민이 담긴 깔끔한 정찬.
2.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SEX EDUCATION
오티스라는 귀여운 소년이 친구들과 겪어 나가는 성장물(?)로 말해도 될까. 물론 영어 원제에서 볼 수 있듯이 주제는 바로 '섹스'다. 섹스 테라피스트를 엄마로 둔-무려 엑스파일의 주인공 질리언 앤더슨-오티스는 무슨 트라우마에서인지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 순진한 소년. 학교에서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소년이지만, 오티스의 엄마가 섹스 테라피스트라는 게 소문이 나면서, 순식간에 많은 아이들의 '성적 고민-성적 고민이 아니라 성쩍 고민이라고 읽는다-'을 들어주는 '상담사'가 되어버린다. 당최 자기도 모르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오티스. 그 줄기에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스토리가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다.
주조연급 아이들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등장하고, 순수한 오티스의 모습과 진정성 있는 마음이 시리즈 전체를 휘감으면서,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럴까. 새로운 시즌 확정! 오티스가 점점 성장해 나가며 오티스의 마음에도 사랑이 싹트고, '누구나 고민해 봤을 법한' 성적 고민들을 다루는 이야기가 크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시즌 2가 빨리 시작되길 기다리는 건 나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3.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 HOW TO GET AWAY WITH MURDER
왜 이 작품을 이제 봤을까.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캐릭터가 모두 너무나 생생해서, 이렇게 말이 많고-진짜 의학 드라마, 법학 드라마 등은 어쩔 수 없는 듯-스토리 전개가 빠른데도, 주인공들의 모든 상황에 공감이 되고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이다. 유능한 형사소송 변호사이자 법학과 교수인 애널리스 키팅, 그리고 그녀의 수업에 참석하는 제자들이 복잡하게 얽힌 살인 사건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뤄냈다. 이 시리즈도 <루머의 루머의 루머>처럼, '일단 누군가 죽고 시작'하지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한 명이 죽는 대신에, 이 작품은 매 시즌마다 누가 죽는다. 대단해. 누가 또 누굴 죽이고, 그 비밀을 누가 덮고, 그 죽음을 덮기 위해서 또 누가 누굴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법학 드라마답게,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주인공들이 풀어내야 할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이 사건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매우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을뿐더러, 주인공 애널리스 키팅이 법정에서 '포효'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이다'를 양동이로 부어라 마셔라 하는 시원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기는 것'만이 전부인 세상에서 주인공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트릭'을 쓰기도 하지만, 그 결론은 모두 '정의'와 맞닿아 있다. 모두가 살인 '공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소송 케이스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마무리되는 편이지만, 시즌을 이어나가는 사건이 1에서 시작해 10으로 100으로, 1,000으로 레벨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고 또 저래'가 아니라 '와, 이걸 대체 어떻게 풀 생각이지?'라는 호기심으로 계속 들여다보게 만드는 대단한 수작. 원어 제목을 줄인 #HTGAWM 라는 해시태그로 작성된 인스타그램 콘텐츠만 해도 18만 개가 넘는다. 이유는, 직접 보면 안다.
4. 너의 모든 것 YOU
작은 서점에서 일하는 주인공 조가, 서점에 들른 벡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 무슨 로맨스물인 줄 알았잖아. 한국어 제목은 <너의 모든 것>이지만, 원어 제목이 'YOU'라는 게 더 섬뜩하다. 다른 것 하나도 없이 그냥 'YOU'. 모든 초점이 'YOU'라는 것. 이걸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건, 주인공 조가 벡에게 반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벡의 SNS를 염탐하거나, 스마트폰을 복제해 일상을 모두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조가 점점 더 지독한 스토킹을 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른 거 다 빼고 'YOU'에만 집중해서 보여주는 치밀하고도 섬뜩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리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독백을 듣고 있으면 정말 '아니 어떻게 이런 섬뜩한 합리화가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급기야 벡 대신에 스마트폰 메시지를 보내고, 벡의 집에 몰래 침입하고, 벡의 남자 친구를 살해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그게 '벡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목이 <YOU>인 게 너무 아찔하고 끔찍하다. 제일 무섭고 섬뜩한 건, 이런 이야기가 드라마 속에서만 벌어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 때문. 일상의 모든 걸 낱낱이 공개하며, 불특정 다수의 '좋아요'를 갈구하는 요즘 세상이라면, '있을 법도 하겠다'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게 이 시리즈를 '마약'처럼 만드는 핵심이다. 역시나 새로운 시즌 확정!
5.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첫 에피소드를 '언박싱'한 이후로, 시즌3까지 3일 동안 몰아보게 만든 '기묘한 이야기'. 이제까지 이런 정주행은 없었다. 이것은 지옥인가, 천국인가. 3일 동안 시즌 3개를 몰아서 봤다. 자그마치 25시간이다. 가뜩이나 불면증도 있는데 요 '기묘한 이야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 건 물론이다. 그런데 그게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가 되어 버린 순간의 짜릿함을 지금도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연출,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 음악 등 모두가 너무나 완벽해서, 다음 에피소드를 연속해서 틀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에 대한 '찬양가'는 이미 '넷플릭스X브런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리뷰(기묘한 이야기 안 본 눈 삽니다)에서 길게 풀었기 때문에 생략한다. 연출, 연기, 음악, 배경 설정, 흡인력, 설득력 모두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은, 출구 없는 넷플릭스 시리즈 중 단연 최고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길거리나 택시 안에서 80's, 90's 팝을 들으면 눈앞에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 이미 가을부터 촬영에 들어갈 거라고 하는 시즌 4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그때 또 나는, 내 생의 하루를 하얗게 불태우겠지?
6. 러시아 인형처럼 Russian Doll
주인공의 나디아가 대체 누군지 찾아보게 만드는 시리즈. 연기 감칠맛 난다. 서른여섯 번째 생일날 '어느 날 갑자기 의도치 않게 인생이 그냥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디아. 남들과는 다르게, 죽긴 죽었는데 깨어나면 다시 자신의 생일 파티로 돌아와 있다. 그것도 지독하고 음침한 화장실로. 처음에 <러시아 인형처럼>이라는 제목을 보고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서 가볍게 보기 시작했는데, 바로 마트로시카를 말하는 내용인 줄을 첫 에피소드를 보고 알았다. 인형 속 인형 속 인형 속 인형 속 인형, 그게 바로 마트로시카의 특징인 것처럼, 나디아는 죽고, 죽고, 죽고, 죽고, 또 죽는다. 계속 죽는다. 타임 루프라는 소재가 이제 '신선하지 않을' 법도 하지만, 시리즈가 던지는 메시지가 워낙 매력적이라 전혀 식상하지 않다.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나디아는 더 빨리 죽기 시작한다. 1분 만에도 죽고, 30초 만에도 죽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대체 왜 자꾸 환생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죽어 보는 것 말고는 원인을 알 수 없어 미쳐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보면 사람이 참 다양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유머러스하게만 그려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정말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워낙 연기를 잘해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편협하게 열중하지 않고도 '삶'과 '행복', '삶의 의미'를 꽤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은, 가벼우면서도 진중한 이야기. 그래서 그런지 또 새로운 시즌 확정!
7. 엄브렐라 아카데미 Umbrella Academy
이런 히어로들이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이런 배우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들이 어떻게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됐는지, 왜 그런 아이들이 생겨났는지, 어떻게 '엄브렐라 아카데미'라는 조직에서 한 가족이 되어 지구의 멸망을 막아내는 슈퍼히어로 역할들을 해내게 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흥미가 꽤 쏠쏠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아이들, 성인이 된 아이들의 '그럴 법한' 인생 이야기들이 가끔은 마음을 짠하게도 한다. 히어로물의 원조격인 <엑스맨>과, 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운 <킹스맨> 같은 느낌도 들고, MCU의 히어로들과는 뭔가 좀 다른-어떻게 보면 조금 허술하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대단한-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다.
새로운 시즌 확정!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시즌 내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엘런 페이지는 '개핵초'고구마 답답이로 등장하기도 하고, 시즌 마지막 스토리 전개가 '안드로메다'격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시즌에 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지, 또 어떤 히어로들이 추가로 등장하게 될지 너무 기대되는 시간 도둑 시리즈다. 애초에 이런 신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한날한시에 동시에 태어났다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그렇다면 주인공이 7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가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주기 때문에 나는 시즌 2를 학수고대할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솔까말, 때론 나도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잘 압니다. 제가 아직 끝까지 안 본 시리즈가 너무 많아요. 브레이킹 배드, 글리, 빅뱅 이론, 나르코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보디가드, 하우스 오브 카드, 가십걸, 수츠, 스킨스 이런 작품들은 제대로 집중해서 보려고 놔두고 있다가 초반 에피소드 몇 개들 밖에 못 봤어요. 근데 어떡해요. 저도 잠은 자고 살아야죠.
넷플릭스 덕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