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중인 초보 자취러를 위한 체크리스트
작년에 반지하라는 주거공간에 대한 썰을 4편으로 풀고, 번외 편으로 집주인으로서 겪은 웃픈 해프닝도 두 편 썼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할 말이 생겼다. 이번에는 오래된 반지하에 처음 살게 된, 혹은 선택지 중 하나로 고민하고 있는 청춘들을 위한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다.
반지하 주거를 택하는 서민이 청춘만이 아닌데 굳이 그렇게 짚어서 얘기하는 것은, 그동안 내가 직접 겪거나 방송, 글을 통해 간접 체험한 20대 전후의 'pre어른'들이 생각보다 반지하 관리에 너무 미숙했기 때문이다. 그 나이 이후의 어른들에겐 너무 상식적인 얘기인데, 갓 성인이 돼 가족의 품을 벗어난 젊은이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긴 관찰의 결론이다. 내 아들도 그 나이 때에 들어오면서 확신은 더 강해졌다ㅠㅠ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여기서도 적용된다. 어른이 괜히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매일 이런저런 실수를 하면서 쌓인 경험이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든다. 실제로 13년간 반지하 셋집들의 집주인 노릇을 해 보니 나이가 있는 세입자들은 반지하 공간을 잘 어르면서 살았다. '이 정도면 살 만하겠다' 싶게 유지를 잘했고, 큰 불만 없이 장기간 거주하다 임대아파트에 당첨되거나 돈을 모아 지상 공간으로 떠났다. 이 글에서 난 그분들을 지켜보며(또한 내가 작업실로 쓰며) 얻은 지혜를 나누려고 한다.
일단, 내가 언급하는 반지하방은 20년 이상된 오래된 단독이나 빌라의 반지하로, 10평 전후에 방 1~2개, 부엌, 화장실로 이루어진 곳에 한정한다. 딱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정도의 낡음에, 고시원급 원룸보다는 훨씬 넓지만 여전히 비좁고, 직접적으로 해가 드는 시간이 3시간 미만인.
보통 보증금 500-1000에 월세 30-50 사이로, 서울 안이 다 비슷하다. 아파트는 강남과 강북이 몇 배씩 차이나면서, 반지하는 희한하게 시내 요충지건 외곽이건, 아주 오래된 집이건 비교적 새집이건 가격이 별로 차이 나지 않는다. '표준 예산'을 갖고 있다면, 서울 요지의 교통 편리한 곳을 과감히 공략할 수 있다.
오래된 반지하 문제의 팔 할은 습기다. 직사광선이 드는 시간이 매우 짧거나 없다시피 하면 공기는 마를 새 없이 축축하고, 창문이 위쪽에만 있기 때문에 하부의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땅에서 뿜어내는 습기는 계속 공급되는데, 그걸 날려버릴 햇볕과 통풍이 부족하니까 습기는 계속 누적된다.
옷을 좋아해서 많은 편이라든가, 이불, 커튼, 깔개 같은 패브릭이 많으면 반지하가 좋지 않다. 천은 습기를 빨아 당긴다. 촘촘히 걸려 있으면 통풍이 안돼 곰팡이가 생긴다. 이렇게 생긴 곰팡이 얼룩은 세탁을 몇 번 해도 없어지지 않아 버려야 한다. 습한 구석에 오래 방치된 옷에서 참기 힘든 냄새가 날 수도 있다. 이번 여름 진짜 비가 많이 왔지 않은가. 우리 집 반지하 창고방(원래 이곳도 세 주던 곳이었다)에 빨아서 두었던 작업복을 오랜만에 꺼냈는데 정말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기생충에서 부잣집 사장님으로 나왔던 이선균이 너무 이해가 갈 정도였다. 제습제를 곳곳에 놓았는데도 습도계가 90%를 넘나들더라니.
상대적으로 신발은 괜찮다. 신발을 좋아해서 모으는 젊은이들도 있는데, 신발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고 종이박스에 넣어 착착 쌓아놓으면 습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적다.
빨래를 널면 습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직업상 혹은 위생상 빨래를 자주, 많이 한다면 반지하를 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게다가 드럼세탁기가 싱크대에 붙박이로 설치돼 있지 않으면 화장실에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좁은 화장실이 세탁기를 놓는 순간 꽉 차서 샤워하기도 불편한 비좁아질 수 있으니 반드시 세탁기 자리를 확인해야 한다. 빨래 말릴 때 제습기는 꼭 쓰는 것이 좋고, 집 가까운데 빨래방이 있어 부피 큰 빨래는 건조까지 해올 수 있으면 쾌적한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음식을 한다는 것은 최단시간에 최대의 습기를 공급하는 행동이다. 초보 자취러들이 제일 인식이 없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조리를 할 때는 반드시 레인지 위 후드를 가동해야 하고, 부지런히 부엌 창문도 열어서 습기를 빼야 한다. 후드와 창문을 냄새를 빼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전기밥솥에 밥을 할 때 같이 냄새가 심하지 않은 걸 할 때는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 놓고 반지하라 습기 곰팡이는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의 처지까지 비관하는 걸 TV에서 많이 보았다. 심지어 레인지 후드와 거리가 먼 곳에 상을 놓고 휴대용 버너로 끓이거나 고기를 구우면서 먹는 것은 최악이다. 습기와 냄새가 집안의 '섬유'에 파고드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오래오래 머물면서 괴롭힌다. 섬유뿐일까? 나도 작업실에 생선매운탕 비린내가 배 고생한 적이 있는데, 몇 개월간 끝끝내 안 사라지는 그 냄새를 추적해봤더니 어이없게 현관 테두리 실리콘이었다.
환경이 안 좋은 반지하집의 경우, 레인지 후드는 작동불량(후드로 빨아들인 공기를 외부로 내보내는 주름관이 잘 연결돼 있나 확인해야 한다!)에 창문도 가까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냄새도 그렇지만 부엌 싱크대 상부장 뒷부분이 습기를 먹어 다 휘고 썩어서 몇 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한다. 항상 부엌 바닥과 벽이 못 빠져나간 기름기와 습기로 끈적이고 말이다.
이런저런 살림살이가 많은 경우는 반지하 살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리를 잘한다고 해도 무언가 빽빽하게 차 있으면 그 부분에 통풍이 안 돼서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곰팡이는 단열이 안 돼서 실내외 온도차 때문에 이슬이 맺혀 생기기도 하지만, 통풍을 제대로 안 돼 생기는 통풍성 곰팡이도 있다.
지상의 원룸에 살다가 살림살이에 치여서, 같은 값에 공간이 더 넓은 반지하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선택이다. 그래도 지상의 습관처럼 옷을 밀도 있게 걸고 쌓아놓는다거나, 벽에 밀착해 수납장을 꽉꽉 밀어 넣거나 하면 좋지 않다. 아무래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어울린다.
풀타임으로 낮에 밖에서 일하거나 공부하고 해가 진 뒤에 집에 오는 생활패턴이면, 채광 때문에 우울할 일이 적어서 나쁘지 않다. 어차피 어두울 때 돌아오니까.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거나 집에서 공부한다면, 햇볕이 들고 편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 정말 중요하다. 창이 있어도 안이 들여다보일까 봐 막아둬야 한다면 너무 답답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우울감이 커져서 괜히 신세한탄을 더 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까지 커진다. 반지하 집도 채광이 꽤 괜찮은 곳도 있으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해가 드는 시간에 가서 확인해보고 결정하면 된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사람은 어떨까? 그래도 좋지 않다. 언뜻 잠 청할 때 눈부실 일 없어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밤낮으로 햇볕을 못 쐰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조명을 아무리 밝게 해 놓아도, 햇볕 하고는 같지 않았다. 햇볕의 위력을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어두컴컴한 PC방에서 하루 종일 지내도 난 괜찮은데? 하는 젊은이들도 종종 있는데, 정신건강상 좋지 않다.
다음 글에는 '운영 편'을 써볼까 한다. 앞서 말했듯이 '운영의 묘'를 잘 살리면, 지상보다 넓고 독립적인 공간을 쓸 수 있는 반지하셋방도 꽤 아늑한 아지트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