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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Oct 24. 2018

벽돌로 쌓은 공간, 대학로

전시 <기억의 틈>으로 본 대학로 공간

                                                                                                                      글, 사진: 콘텐츠 매니저 여름



  누군가와 함께 혜화역에 들른다면, 역 앞에 넉넉하게 자리 잡은 마로니에 공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테다. 이곳은 연인과 친구, 혹은 단체 여행객들의 만남의 장소다. 혜화역이 마로니에 공원 혹은 거리마다 소극장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는 연극의 장소로 기억된다면, 당신은 혜화를 누군가와 함께 왔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혜화역 근처를 혼자 걸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붉은 벽돌의 공간이라는 걸 금새 눈치챌 수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붉은 벽돌로 둘러싸여 있게 된다. 공원 뒤편, 공원과 연결되어 있는 듯 입구를 열어놓은 아르코 미술관에서 10월 12일부터 12월 2일까지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이라는 전시가 열린다. 도시와 건축을 이루는 최소단위인 벽돌에 대한 탐구와 역사적 추적에 관한 전시다. 대학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주된 재료가 벽돌인 만큼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미술관 밖 대학로를 거닐 때까지 전시가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다. 



   대학로의 벽돌은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학로 마로니에 일대가 전통적인 도심 주거지였고,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이, 이후 1970년대까지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을 만큼 여러 교육기관이 모여들었던 지역이다. 지금 예술가의 집으로 남아있는 경성제국대학 본관은 1931년 조선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이 벽조건축으로 설계했다. 벽돌은 점토에 첨가물을 넣고 굽는 작업이라, 무엇을 더하고 어느 화로에서 굽느냐에 따라 색감이나 질감이 달라진다. 박길룡은 지금은 시공사의 반대로 불가능할 수공예 작업으로 벽돌을 섬세하게 만들어 예술가의 집을 건축했다. 여느 벽돌 건물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모양과 다른 색깔의 벽돌이 견고한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이후에 세워진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 극장을 설계한 김수근 역시, 선배 건축가 박길룡의 건물 옆에 벽돌 건축을 짓는다. 벽돌 자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보통 덩치가 큰 건물을 벽돌로 높게 쌓는 일이 없다지만, 김수근은 벽마다 벽돌을 돌출시켜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그 덕에 아르코 미술관 건물에 하루의 볕이 들고날 때마다 벽에 길고 짧은 그림자가 아름답게 드리워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아르코 예술극장 내부에도 마찬가지로 돌출시킨 벽돌이 나름의 패턴을 이루고 있는데, 당시 김수근이 벽돌 돌출 부위를 일일히 계산해 지시했다고 한다. 그만큼 벽돌을 자유자재로 그리고 쓸 줄 아는 건축가였다. 


김수근 건축의 붉은 벽은 빛과 그림자의 캔버스다.


  아르코 예술극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구)샘터 사옥 역시 김수근이 붉은 벽돌로 설계했다. 건물 층마다 작은 창을 여러 개 내어 내부에서 벽돌 위로 빛이 들게 했다. 샘터 사옥 내부에 볕이 들면, 통로의 벽돌 곳곳에 아름다운 그림자, 혹은 그림이 드리운다. 아르코의 건물들이 마로니에 공원을 배려하듯 설계되어 공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샘터 사옥은 건물 내부에 창과 길을 여러 곳으로 내어 건물 안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건축들이 벽돌을 통해 대학로의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느새부터인가 이 주변 건물까지 죄다 붉은 벽돌로 설계되고 지어졌다는 점이다. 옛 샘터 사옥인 지금의 공공일호 앞에서 양쪽 골목을 둘러보면, 붉은 벽돌 건물이 빼곡하다. 모든 붉은 건물들이 벽돌의 색과 모양까지 일일이 설계되거나, 온갖 대화의 장치들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벽돌을 통해 하나의 장소성을 만드는 데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을 알고 나서 전시 <Unclosed Bricks:기억의 틈>을 보면, 입구에서 반가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입구에 커다랗게 전시되어있는 김수근 건축의 사진을 보면, 건물에서 놓칠 수 있는 패턴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전시장 안쪽에는 벽돌과 도시에 관해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본질적인 물성을 잃고, 인테리어 장식 요소로 소환된 스티로폼 가짜 벽돌이 진짜 벽돌 사이에 배치되어 있는 <클립>, 기본 단위들이 연결되고 큰 형태가 되어가는 식의 건축을 새롭게 사유하는 <높은, 자리, 정>,  이상이 바라보았던 종로의 CCTV 폐쇄 회로를 통해 도시 시간 탐구를 영상으로 표현해낸 비디오 작품, 붉은 벽돌 망루 이야기 등 도시와 벽돌에 관한 다양한 시각, 다양한 해석이 담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Unclosed Bricks:기억의 틈>은 12월 2일까지 아르코 미술관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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