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살롱 #8] 오래된 공간의 창의적 재해석 - 공공그라운드 편
공공그라운드 기획 프로그램 [공공살롱]은 공간, 건축, 도시와 관련된 테마를 중심으로 공공그라운드의 미션인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새로운 실험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공공살롱에서는 "오래된 공간의 창의적 재해석"을 주제로, 오래된 공간들을 되살려 해당 공간만의 아이덴티티를 살려 나가는 4개 공간의 기획, 운영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각 지역의 특수성과 공간의 역사성을 살려 나가는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글, 사진 | 우주
혜화역 2번 출구 앞에는 대학로의 역사와 함께 해온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공공그라운드의 첫 번째 건물 '공공일호'입니다. 1979년 (고)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로 완성된 대학로의 (구) 샘터 사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공공그라운드 배수현 대표를 모시고 샘터 사옥에서 공공일호로의 변화, 1년 간의 준비 끝에 다시 문을 연 파랑새극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건물의 맥락을 재해석하여 공간을 기획하는 법,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며 운영한 사례를 나누었습니다.
"샘터 사옥은 꽤 오랫동안 부동산 시장에 나와있었습니다. 요즘 대학로는 '핫한' 동네는 아니지만 지가가 굉장히 비싼 동네였고, 당시 매입 주체가 없었어요. 용적률이 낮아서 임대 수익이 보장되지 않았거든요. 시장의 수익률은 얻지 못하겠지만, 이 건물을 보존하는 것이 수익률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지 않고, 건물의 가치를 살리는 방향으로 기획했죠.
여러분도 좋아하던 공간이 개발로 없어졌던 경험이 있을 텐데요. 소중하게 생각한 공간이 없어지고, 추억이 묻어있는 공간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 없어지지 않도록, 공공그라운드는 건물을 보존하고 임팩트를 주는 것을 지향합니다."
공공그라운드가 매입한 샘터 사옥은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입니다. 아르코 대극장, 아르코 미술관, 그리고 샘터 사옥은 '대학로 삼총사'라고도 불립니다. '대학로'라는 지명도 원래 서울대가 있었기 때문이고, 샘터 사옥은 서울대 문리대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하면서 택지 부지로 변경되었고, 하마터면 아파트 단지가 될 뻔한 자리를 샘터사 (고) 김재순 회장님께서 매입하면서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과 아르코 미술관 등 아름다운 건축물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샘터 사옥 앞에는 대학천이 흘렀다고 합니다. 건축 당시에는 이 건물만 섬처럼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천 때문에 건물 입구가 천변이 아닌 서쪽을 향해 있었고, 외부 계단이 별도로 나와있게 되었어요.
완공 당시 1층은 화랑이었고, 지금의 스타벅스 자리는 '난다랑'이라는 다방이 있었습니다. 이후 운영된 '밀다원'은 굉장히 유명한 다방이었다고 해요. 당시 서울의 3대 맞선 장소로 조선호텔, 코리아나호텔, 대학로 밀다원을 꼽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인이나 작가 등 유명한 사람이 자주 오는 다방이 쭉 이어졌다고 하고요."
1984년에는 지하 1층에 파랑새극장이 개관했습니다. "파랑새극장은 대학로 최초의 민간 소극장입니다. 그동안은 대극장 위주의 공연 문화가 있었다면, 소극장이 생겨나면서 다양한 예술작품이 상연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동 인형극 전문 극장으로 개관했고, 김광석, 동물원, 들국화 등도 파랑새극장에서 초연을 했어요. 문화예술이 꽃피던 시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랑새극장 개관 이듬해에 지하철 4호선이 개통되었고, 몇 년 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들어섰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샘터 사옥도 꾸준히 변화했습니다.
"2001년에는 샘터 책방이 있었다고 해요. 책방 자리는 곧 임대용으로 이용하게 되었고요. 만화방, 보드게임 카페도 잠깐 있었다고 합니다. 2007년에는 공연 수요에 의해 지하 2층에 파랑새극장 2관을 열었습니다. 원래는 기계실이 있었는데, 5층으로 이동하여 극장으로 변경했습니다."
강연이 진행된 001라운지는 원래 옥상이었습니다. 2012년에 증축 공사를 통해 5, 6층에 공간이 생겼고, 비로소 엘리베이터가 생겼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 자리는 건축가가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샤프트를 만들어둔 공간입니다. 40년 전에 이미 엘리베이터 공간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당시 샘터 사옥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이로재 (승효상 건축가)가 증축 공사를 맡아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사무실을 옮기기 전까지 샘터사의 인하우스 건축사무소처럼 크고 작은 공사를 모두 맡았다고 합니다."
샘터 사옥은 2017년에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습니다. 바로 공공일호로의 변화입니다. 건물의 역사성을 고려하여 교육과 미디어 중심의 공간으로 기획했습니다.
"샘터 사옥은 서울대 문리대 자리였고, 어린이 극장이 있었던 공간이기도 했죠. 또 샘터는 대중을 위한 잡지 등 문화 콘텐츠를 만들었던 곳이고, 피천득, 이해인 등 거쳐갔던 작가도 많았습니다. 기존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3층은 교육을, 4층은 미디어를 테마로 한 공간으로 기획했습니다."
"3층에는 온더레코드와 거꾸로캠퍼스가 있습니다. 거꾸로캠퍼스의 공간을 기획할 때에는 학생들과 함께 기획했어요. 거꾸로캠퍼스의 특징이 프로젝트 베이스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다 보니 '헤처 모여'가 많았습니다. 팀으로, 또는 개인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 필요했죠. 그래서 의자나 책상이 굴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가구를 주문 제작했습니다.
특히 책상은 특수 제작했는데요. 이름은 공공일호예요. 상판을 화이트보드로 만들어서 이야기하면서 쓸 수 있고, 뒤집으면 바로 발표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법과 희망사항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간 설계에 반영한 사례 중 하나죠."
지난 6월에 개관한 '파랑새극장'은 공공일호 리모델링 시 가장 고민이 컸던 공간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공간일 거예요.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파랑새극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맞을까. 두 번째는 다른 조직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것이 의미 있는 사용일까. 파랑새극장 자리를 펍, 또는 바(bar)로 운영할 수 있었지만, 치열한 고민 끝에 기억 속 '파랑새극장'이라는 이름을 계속 가져가고자 음악 공연장으로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적 맥락을 이어가면서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바꾸고자 했습니다. 파랑새극장의 이름과 로고 타입을 계승하고자 색깔과 분위기를 맞춰갔습니다. "반전 매력을 줄 수 있는 조명장치를 사용했고,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커튼을 달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예쁜 공간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하고 싶었어요. 6월 말에 디제이, 어쿠스틱 뮤지션, 인디밴드 등 뮤지션과 함께 개관 공연을 했습니다. 현재도 어쿠스틱, 포크 느낌을 이어서 기획 공연을 이어가고 있고요. '지하에 이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반전 매력이 있는 공간입니다. 앞으로도 '파랑새'의 느낌을 살리고, 신인 뮤지션의 무대를 꾸려나가려고 합니다."
공공일호는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까요? 배수현 대표는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잘 살리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면 무엇이 좋은 보존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합니다. 크게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공공그라운드의 공간 운영을 기획한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보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공그라운드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플랫폼의 공간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 콘텐츠 발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향후 공공그라운드가 공공일호를 넘어 다른 프로젝트를 시도할 때에도 같은 기준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습니다.
운영적인 관점에서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파트너 사가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거꾸로캠퍼스의 '배움장터'나 온더레코드의 다양한 콘텐츠, 4층 코워킹 스페이스 입주사의 프로그램처럼요. 두 번째는 대관 프로그램입니다. 그동안 굉장히 많은 대관 행사가 있었어요. 마르쉐가 여는 시장에 공간 후원을 하기도 했고요. 세 번째로는 공공그라운드의 기획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공공살롱과 공공작당을 운영 중입니다."
공공일호에서 함께 생활하는 입주자를 위해 커뮤니티 운영도 하고 있습니다. "건물주가 왜 하나, 싶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공간 관리뿐만 아니라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플리마켓, 책모임, 맥주파티, 미식 모임 등이 있죠. 앞으로는 혜화동 사람들까지 포괄할 수 있게 시도할 예정입니다."
공공그라운드의 부동산 투자 실험은 회사에 대한 채권 투자자 모집과 보통주 투자자 모집 두 가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본 조달 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이를 통하여 운영 수익을 확보한 후 투자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방향으로 지속 가능성을 찾고 있는 셈입니다. 공공그라운드는 이러한 뜻에 동참하는 많은 투자자들을 계속 모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손태장 회장의 임팩트 투자사 미슬토로부터 투자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공공이호, 공공삼호를 통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파트너와 지역에 따라 테마는 달라질 수 있지만, 사라지면 아쉬울 것 같은 공간이 있다면 매입하여 함께 운영하는 모델을 지향하고요."
강연 이후로도 임팩트 측정 방법이나 운영 노하우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공공그라운드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없기 때문에 공공그라운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공공살롱에서 나눈 3개 공간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