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일터로 돌아온 내게 ‘퇴근’이라는 말은 다른 세계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큰애가 3개월 되던 무렵부터 12년 차인 지금껏 쭉 육아를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계시지만, 아침과 잠자리에 들기 전 시간만큼은 내가 아이들을 직접 케어하려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눈을 뜨면 곧바로 아이들을 깨워서 식탁에 앉히고 함께 아침을 먹으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 가는 길까지도 동행하며 수다를 떤다. 쑥쑥 크며 나날이 내면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아이들이 매일을 어떤 생각으로 지내는지 궁금해서다.
물론 출산 후 약해진 체력과 컨디션이 채 돌아오기도 전에 일터에 복귀했던 초보 워킹맘 시절에는 피로감이 상당했다. 작고 사소한 일들마저 높은 산처럼 느껴졌고 늘 비장한 마음을 먹고 바삐 움직여야 하루 일과를 감행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한 뒤, 모든 일을 끝내고 사무실이나 현장에서 나오면 집으로 다시 출근할 준비를 했다. 차 안에서 비타민을 입에 털어 넣고 속으로 기합을 넣었다. 기력이 없거나 지친 모습으로 집에 들어온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씩씩하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을 놀아주고 싶었다.
나와 사정이 비슷한 워킹맘들은 평일 아침저녁에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등원이나 잠자리를 함께하지 못하고 친척이나 부모님께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주말에만 아이들을 만나는 집도 종종 보였다. 하지만 나는 한 침대에 같이 누워 아이들의 하루를 듣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잠드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그 시간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지키려 했다. 평일에 가능한 한 모든 업무를 효율적으로 끝내고 주말 시간을 온전하게 확보하는 것 역시 아이들이 생긴 이후 회사를 운영하며 공고히 한 원칙이었다. 혹여 주말에도 현장에 나가야 하는 때엔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이 뒷바라지를 해주었는데, 그이가 홀로 육아와 가사를 척척 해내준 덕에 주말에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사업은 감사하게도 출산이나 육아와 무관하게 성장해 나갔다. 한번 튼 물길을 끊임없이 다듬고 넓히기 위해 늘 부지런하게 굴었다. 나는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들면 방에서 스르르 나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온라인 마케팅과 포트폴리오를 업로드하고 디자인 레퍼런스를 스크랩하고 연구했다. 워킹맘이 아닌 디자이너들보다 스터디할 수 있는 시간이 양적으로 모자랐기에 수시로 공부했다.
그럼에도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이란 녹록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플 때, 또는 한창 바쁜데 아이들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요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혹 관찰하신 사항이 있으시냐” 유의 문의나 코멘트가 올 때, 친정 엄마나 주변 사람들이 내 컨디션을 염려하는 한마디를 던질 때면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흔들렸다. 자로 정확하게 재서 나누듯 일과 육아의 비율을 늘 5:5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시적으로 일의 비중이 늘 때는 큰 죄책감을 느꼈고, 반대로 육아의 비중이 많아질 때에는 내가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루는 남편과 단둘이 있을 시간이 되어 자못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아직 미혼인 동년배 디자이너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고, 모임이나 스터디를 나가지 못하니까 콤플렉스가 생기는 것 같고, 결혼을 조금 더 늦게 했거나 아이를 조금 더 늦게 가졌다면 디자이너로서 더 빠르게 자리 잡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그간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말을 잠자코 들은 남편이 입을 뗐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이들이 있기에 당신이 시간을 더 알뜰히 쓰며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혼자 살았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꿈이 작았을걸? 지금 당신이 그리는 꿈을 봐. 아이들이 있으니까 스물아홉에 우리만을 위한 집을 지을 계획도 세우고 집안에 수영장이며 정원이며 만들 생각까지 하잖아. 결혼과 출산이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우리가 아이들을 통해서 너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 상황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한 남편의 말이 처음엔 와닿지 않아 서운했지만, 친정 엄마만큼이나 늘 가까이서 한결같은 응원과 지지를 해준 남편이었기에 그날 이후 그 말들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돌이켜보면 남편이든 가족이든 내게 일을 줄여라, 아이들을 더 챙겨라 등의 잔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은 우직하게 맡은 바를 열심히, 공동으로 해오고 있었다. 일을 줄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온전히 케어할 수도 못하는 스스로를 괜히 부족한 엄마라며 자책한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남편은 이후로도 내게 꾸준하게 “당신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힘을 보태주었다. 힘든 날이 돌아올 때마다 그의 응원을 되새김질하며 상황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내려놓고 지켜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 말처럼 아이들은 속 썩이는 일 한번 없이 잘 커 나가고 있었다. 정말 엄마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전화 너머 목소리 톤만 듣고도 내 기분을 알아채고 당장 달려와 주시는 친정 엄마가 선배 엄마로서 나눠주신 지혜와 사랑도 내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의 상황을 콤플렉스라 치부하지 않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비록 아슬아슬했지만 이렇게 나도 한 걸음 더 성장하면서 균형감을 터득해 가는구나.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