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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언니 백예진 Jun 11. 2024

아파트 인테리어 회사에서 디자인 회사로 리브랜딩하다



업력이 쌓이고 성장 곡선을 그리게 되면서, 난도가 어려운 공사 의뢰도 점차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래된 아파트의 전체 리모델링 시공을 하나둘씩 맡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신축 아파트 대상 공사만 했다면 쉽고 수월했겠지만, 해외 레퍼런스들을 스터디하면서 오래되고 낡아서 퇴물이라 여겨지는 공간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공간 디자인의 신비한 힘을 느꼈고, 나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간 스크랩하며 공부한 것들을 최대한 현장에 활용해서 진지하게 임한 결과, 클라이언트들의 높은 만족도를 얻을 수 있었고 자신감이 더 붙었다.  



이 무렵부터는 주거 공간이 아닌 상공간 디자인 의뢰도 종종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주 헤이리 마을에 자리한 소품 편집숍에서 ‘마치 집 같이 편안해서 드나드는 사람들이 이곳이 상업 공간이라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게 만드는’ 공간을 의뢰했고, 이 부분은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맡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의뢰 시점이 아이를 막 출산한 뒤 조리원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던 때여서, 오래 손발을 맞춰 온 반장님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웃지 못할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조리원에서 퇴원할 즈음 준공이 완료되어서 퇴원하자마자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아파트 인테리어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사업 분야를 점차 넓혀 가게 되면서, ‘코나 디자인’이라는 회사가 좀 더 확장성 있는 디자인 브랜드로 보일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지금 이 시점이 바로 우리 회사의 2막이 아닐까, 새로운 길이 서서히 드러나는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바쁜 일과 중 틈새 시간을 내어서 회사의 철학과 지향점을 글로 적어 옮기고, 로고와 브랜드 키 컬러 등의 키 비주얼과 브랜드명을 싹 변경하고 정리했다. 그렇게 ‘코나 디자인’의 리브랜딩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스튜디오 코나’이다.  



리브랜딩의 효과는 탁월했다. 회사와 사업의 방향성이 내가 바라고 설정한 길로 평탄하게 흘러갔다. 사업 분야가 아파트 인테리어로부터 주택 건축과 스테이 건축으로 옮겨 갔고, 상업 공간 설계와 시공, 그리고 건물 내외부 전체 대공사와 조경 공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을 선보이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들어서는 순간 기분까지 케어해 주는 뷰티하우스, 공간이 위치한 지역의 이웃까지 하나의 풍경으로 담아내는 재생건축,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쉼을 체화하는 필라테스, 환자들의 아픈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병원 등 각양의 공간들을 디자인하면서 우리의 비전인 ‘좋은 공간’과 ‘사람에게 이로운 공간’의 의미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스튜디오 코나로 리브랜딩 한 직후 초기에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아주 기억에 남는 건이 있다. 강원도 고성 바닷가 마을의 주택 건축 프로젝트인데, 고향인 이곳에서 나고 자라 결혼한 젊은 부부가 아이들에게도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교감하는 삶의 기쁨을 고스란히 물려주고자 가족의 첫 단독 주택을 직접 건축하기로 마음먹고 우리에게 의뢰한 건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워킹맘이란 사실을 클라이언트에게 굳이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사업의 주체라고 하면 전문적이지 않다고 여기거나 탐탁지 않아 하는 클라이언트와 협력사의 반응을 꽤 자주 보고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데 고성 프로젝트의 경우는 사뭇 달랐다. 건축 프로젝트 특성상 종합적인 완성도 창출을 위해 클라이언트와 세심한 커뮤니케이션을 주기적으로 하고, 만나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클라이언트의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과 또래이기에 엄마의 마음으로 디테일과 아이들의 동선을 하나하나 고심하며 설계도와 현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결과 클라이언트와 우리, 양측 모두가 만족스러운 프로젝트로 마무리되었고 영광스럽게도 매거진 <리빙센스>에 주택 사진과 인터뷰가 실리게 되었다. 당시 취재를 오신 기자님께서 클라이언트에게 “왜 스튜디오 코나를 선택했는가”를 물었다. 원하던 디자인 톤이 맞는다든가, 후기들을 보고 신뢰가 생겼다 유의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클라이언트가 뜻밖의 대답을 하셨다.  



백예진 대표님께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점이 컸어요.
저희도 아이들을 위해 이 집을 지으려 한 것이니까, 전문가이면서 아이 엄마 본인의 입장으로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임해주실 수 있는 분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그 대답을 듣는데 아, 하고 깨달음이 물밀듯 밀려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디자이너가 고객들에게는 오히려 더 진정성 있고 사용자 경험 능력이 높은 전문가로서 다가갈 수 있구나. 워킹맘이라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을 이유가 없구나. 그날, 어쩌면 스튜디오 코나로의 리브랜딩은 단순히 사업 분야뿐 아니라 대표인 나 개인의 사업관까지 확장할 수 있는 도움닫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브랜딩은 회사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정말 제2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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