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마지막 일과를 마치고 나오자 대로변에서 비상등을 켠 채 대기하고 있는 커다란 차가 보인다. 차로 가까이 다가가니 문이 스르륵 열리고 남편과 아이들의 들뜬 얼굴이 보인다. 나는 피로에 절은 파김치 같은 몸을 겨우 싣는다. 우리가 탄 차는 어두운 밤길을 하염없이 달려 어느 이름 모를 노지에 닿는다. 차에서 내리니 밤공기에 젖은 흙과 풀 냄새가 진동한다. 두어 시간 전 서울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만 같다. 잠시 밖을 둘러본 우리는 내일 아침을 약속하며 차 안으로 돌아가 옹기종기 이부자리를 편다. 차창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꿀 같은 단잠을 잔다.
눈을 뜨자마자 차 밖으로 걸어 나와 기지개를 켠다. 물리적으로는 집보다 훨씬 불편했음에도 어쩐지 더 푹 잔 느낌이다. 눈앞 강가에는 어스름한 새벽의 잔상이 물안개로 남아 있다. 이 순간, 풀벌레와 새소리를 제외한 동물은 우리뿐인 것 같은 고요함이 평온하다. 갈아 온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있자면 커피 냄새에 눈을 뜬 아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 아침 인사를 건넨다. 집에서도 매일 아침 보는 사이지만 노지 위에서 맞은 아침의 가족들 얼굴은 매번 새로운 느낌이다.
우리 가족이 중고 캠핑카를 구매한 건 작년 봄이다. 남편이 처음 캠핑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히 반대했다. 분명 바빠서 몇 번 가지도 못하고 짐짝 신세가 될 텐데 그걸 왜 덥석 사, 하고 볼멘소리를 했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캠핑카를 사게 되면 캠핑을 너무 자주 가게 될까 봐 염려한 부분도 있었다. 게다가 구매뿐 아니라 이후 유지와 관리, 보수에도 만만찮은 비용이 지속적으로 들 것이 뻔해서 아까웠다. 경험으로 쌓인 데이터가 없는 분야여서 투자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아이들까지 합세해 벌이는 끈덕진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중고 캠핑카를 보러 가게 되었고, 이전 차주가 아끼며 잘 관리하던 차를 발견해 그날로 가져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봄부터 여름까지 보름에 한 번은 집에서 가까운 노지 캠핑장을 찾아 다녔다. 캠핑카 사용법에 차근차근 익숙해지는 워밍업 과정을 수행한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업과 대학원 수업을 병행했던 나는 금요일 늦은 밤 10시에야 부랴부랴 학교를 나서서 아이들과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차에 타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다음날에도 종일 병든 닭처럼 골골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몇 달 정도 지나자 체력이 붙었는지, 캠핑카 생활에 정말 익숙해졌는지 평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노지에서 보내는 주말이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강가에 앉아 ‘물멍’하며 커피를 마시고, 아침저녁으로 수풀을 산책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미처 해결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신나게 공을 차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의 옛 기억들도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사실 내가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여행을 원체 사랑했던 아빠를 따라 국내 곳곳으로 자주 휴가를 다녔었다. 아빠가 튜브나 베개를 깔아 침대처럼 만든 뒷좌석에 동생과 나란히 누워서 꼬부랑 할머니 노래를 합창하거나 ‘쎄쎄쎄’를 하며 설악산으로, 또 동해바다로 이리저리 실려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의 캠핑카였던 것이다. 또 돌이켜보면 아빠는 ‘원조 캠핑족’이기도 했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서 더는 리조트나 호텔로 휴가를 떠날 수 없었던 어느 여름날, 아빠는 어디선가 구해온 텐트를 들고 앞장섰다. 낡은 텐트 속에 웅크리고 누웠는데 달라드는 모기들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던, 끈적끈적하고 왱왱거리는 여름밤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대도 휴게소에 들러 먹는 군것질은 꿀맛이었고 계곡이나 바다에서의 시원한 물놀이는 늘 즐거웠다. 동생과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있다. 어느새 훌쩍 자라서 캠핑장에 나란히 앉아 설거지와 일거리를 돕는 아이들에게서 그때의 나와 동생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주말 캠핑에서 우리 가족은 각자의 루틴이 있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반려견 겨울이, 그리고 남편과 강가를 빙 둘러 산책한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함께 간단한 아침을 차려 먹고, 인근에 오일장이나 작은 축제가 열린다면 가서 둘러보기도 한다. 점심쯤부터는 밀린 업무를 마저 처리하거나 너무 바쁜 나머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적어서 곰곰 되짚어 보는 편이다. 같은 시각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공을 차며 땀을 흘리고, 남편은 캠핑카 관리를 마친 뒤 혼자만의 휴식을 즐긴다. 오후 네 시쯤 되면 모두 모여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캠핑할 때면 아이들이 집과 다른 환경임을 인지하는지 의자 접고 펴기, 요리 준비, 설거지, 무거운 짐 나르기 등을 주체적으로 나서서 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은 온 가족 구성원의 공동 의무임을 알려주고 싶던 참이었는데 그런 면에서도 캠핑이 좋은 기회가 돼 주는 것 같다.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산책하고 나면 다시 각자의 시간을 가지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든다. 서울 집의 가장 작은 방보다도 더 작은 캠핑카에서 네 식구가 밀착하다시피 가깝게 머무는 이틀. 요즘에 올 수록 이런 시간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다. 각자의 시간을 즐기면서도 서로가 뭘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 가족 캠핑이 주는 가장 큰 선물 같다.
자연 속에 묻혀 캠핑하는 주말은 내 일에도 크나큰 도움이 돼 준다. 바쁜 일상에 치여 잠시 잃었던 여유와 평정심을 찾는 데 기여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만 바빠서 해결하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문제들, 사람 사이의 문제라든가 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들에 괴로울 때는 단양처럼 강이 멋진 지역으로 떠난다. 물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의 강변을 거닐다 산책을 마칠 즈음 안개가 걷힌 맑은 하늘을 보게 될 때면, 나를 옭아매고 있던 문제나 불안감들이 안개처럼 서서히 걷히는 기분이 든다. 사무실이나 현장에서는 좀처럼 실마리를 찾을 수 없던 문제들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리 먹게 되고, 맑은 마음으로 문제를 다시금 천천히 직시하게 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문제가 결코 크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다시 마주하는 문제는 답을 찾기 쉽다. 때로 너무 어렵거나 심각해 보이는 문제들은 아예 하루 정도 접어두고 꺼내보지 않는다. 이틀의 캠핑이 끝날 즈음 다시 들여다보면 심각성이 한층 옅어지고 가벼워져 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꽤 많다.
이제 다시 캠핑의 계절이다.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흘려버린 여유를 주섬주섬 주워 올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노지의 수풀 내음과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다음 주말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