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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언니 백예진 Jun 28. 2024

집도 얼굴 뜯어먹고사는 게 아녜요



가끔 짬이 나면 회사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REVIEW’ 페이지를 클릭한다. 그러고는 가장 과거의 리뷰부터 쭉 읽어보곤 한다. 꿈꾸고 바라던 공간을 더 코나와 함께 만든 고객들께서 손수 남겨주신 후기들을 찬찬히 읽고 있자면, 이전에 읽었던 글들도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짧게는 몇 달, 길게는 함께 해를 넘기며 동고동락한 고객들의 후기에 담긴 진심이야말로 사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읽는 동안 일에 치여 지쳐있던 마음도 어느새 도닥여지고 큰 동력이 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흥미롭게 보이는 점이 있다. 서로 다른 공간을 만든 고객들의 후기 글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단순히 원하는 비주얼을 넘어서
우리 가족의 연령과 생활 패턴까지 반영된 공간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냥 예쁜 병원이 아니라 오래도록 꿈꿔왔던,
저를 닮은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오랜 대화 덕에 가능했어요.”




외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안에 머물 사람 자체를 닮은 공간. 그리고 머물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패턴을 반영한 공간. 공간을 설계할 때 내가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이자 준공 후 가장 듣고 싶은 최고의 후기다. 좋은 공간의 디자인이란 그 안에 머물 사람으로부터 출발하고, 또 귀결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모든 프로세스 중 가장 앞단에 자리한 상담과 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더 코나의 경우, 공식 웹사이트 또는 전화, 메일을 통해 상담 문의가 오면 프로젝트 유형에 따라 메일 안내와 짧은 유선 상담을 먼저 진행한다. 이후 고객이 더 진행하고픈 의사를 보인다면 더 코나 오피스에서의 무료 방문 상담 일정을 잡는다. 오피스에서의 대면 상담은 더 코나의 프로젝트 프로세스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우선 사전 설문을 통해 고객의 기초 조사 데이터를 확인한 뒤 얼굴을 보며 가벼운 질문으로 긴 대화의 물꼬를 튼다. 이때 우리가 가장 먼저 건네는 질문들은 고객의 개인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퍼스널리티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일상과 일, 함께 사는 가족 이야기에서 출발해 스스로가 어떤 행동 패턴으로 생활하며 어떤 환경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는지, 바깥에서 카페를 비롯한 외식 공간, 휴식 공간을 고를 때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자연스레 들여다보게 된다. 이러한 대화를 충분히 거쳐야만 고객이 바라는 공간이 우리에게도 맞춤형으로 그려지고, 디자인이 나아갈 길도 명확해진다. 사람에 관한 고민 없이 그저 당대에 유행하는 디자인이나 매체에서 소개된 디자인을 복사, 붙여 넣기 해 만든 결과물은 어떤 식으로든 오래가지 않는다. 미적으로는 우수할지 몰라도 기능적으로 불편할 수 있고, 내구성이나 안전성 면에서 취약할 수 있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 뒤로 ‘한물간’ 공간이 되어 버리기도 쉽다.  



거주 공간 리모델링을 주로 진행했었던 사업 초기에는 그 시기에 유행하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자재로 집을 아름답게만 꾸미고 싶어 하는 고객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물론 미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은 디자이너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덕목이다. 나 역시 본분이 디자이너이기에 기본적으로는 미적인 부분을 아주 많이 고려하고 연구한다. 그러나, 상품이나 예술품이 아니라 사람의 육체와 정신이 오래 머무는 ‘공간’이라면 디자인 시에 정말 많은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나 그 공간이 우리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공간인 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잦은 이사로 각양각색의 거주 공간을 겪어보고, 일찍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살림을 하면서 공간 사용자의 편안함과 기능, 안전, 동선 등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연구해 온 나는 이런 경우에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한 비유들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객들을 설득한다. 고객님, 집도 얼굴 뜯어먹고사는 게 아니랍니다. 남들이 추천하는 것 말고 나 자신이 무얼 좋아하며 어디서 편안함을 느끼는가를 먼저 아셔야 해요. 



보통 90% 이상의 고객들은 상담 과정에서 이 부분을 깨닫고 협조해 주시지만, 내 조언에도 불구하고 ‘요새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타일이나 새시, 도장 등의 중요한 마감재 선택을 고수하는 고객들도 아주 가끔 있다. 예를 들어 흰색 대리석 무늬인 비앙코 스타일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비앙코 스타일로 욕실을 마감한 집, 핑크 골드 컬러로 수전을 도색한 집들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안부를 물으면 “그때 대표님 말을 들을 걸 그랬어요, 유행이어서 했는데 다시 보니 제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같은 말씀을 하시곤 한다. 다른 업체와 시공을 진행했다가 집이 망가진 다음에야 후회하며 우리를 찾아오시는 고객들도 많다. 구조와 환경에 관한 고려 없이 구축 아파트에 조적 욕조를 만들거나, 자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수 기능이 없는 시트지로 주방 싱크대를 마감해서 싱크대가 갈라지고 망가진 식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들이 발생할 확률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상담과 커뮤니케이션을 넘칠 만큼 해야 한다. 고객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찾고 공간에 반영할 수 있을 때까지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더 코나의 미션이고 신조다.



리모델링보다 규모가 큰 건축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는 훨씬 더 큰 품을 들인 설문을 통해 장기간의 사전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설문은 고객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꿈꿨던 집의 모습은 어땠는가, 어린 시절을 돌이켜볼 때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은 어디였나, 어린 시절 가장 안락함을 느꼈던 추억의 공간은 어디인가(책상 아래, 침대 밑, 툇마루) 등의 질문이 설문지를 이룬다. 앞의 질문들에 답하면서 하나둘 꺼낸 공간 관련 추억들을 몽땅 펼쳐둔 뒤에야 지금의 ‘나’는 어떤지, 왜 집을 짓고 싶은지, 어떤 모습의 집을 지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써 보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계약이 확정되면, 담당 디자이너와 현장 소장님, 나, 고객의 단체 메시지방을 만들어 매일 소통한다. 중요한 사안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거나 더 좋은 디자인을 위해 설득을 요하는 때에는 통화 혹은 대면 방식의 소통을 선호한다. 텍스트로만 소통하는 것과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하는 것, 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은 각각 놀라우리만큼 다른 결과를 가져다준다. 텍스트로는 어렵게 전달되던 내용도 서로 얼굴을 보면 한층 쉽고 부드럽게 풀리며 고객의 니즈와 뉘앙스를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꼭 중요한 사안이 없을지라도 보름에 한 번씩은 반드시 대면 미팅을 진행하는 편이다. 



결국 말하고픈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좋은 공간’의 답은 공간 안에 머물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면 그의 공간도 잘 만들 수 있다. 사람의 캐릭터와 특성을 반영한 미학을 공간의 외양에 담아내면서 최선의 안락함과 내구성까지 갖춰 균형감을 이뤄내는 것이, 바로 더 코나가 추구하는 공간 디자인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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