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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언니 백예진 Jul 12. 2024

우리 가족 보금자리 직접 짓기 도전기 - II


우리 가족이 살 단독 주택을 직접 지어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의 소도시, ‘하얀 마을’로 알려진 프리힐리아나의 주택들이었다. 푸른 지중해를 배경으로 늘어선 하얀 집들이 이루는 그림 같은 풍경, 그 속에서 여유로이 삶을 즐기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 가족도 포근한 눈꽃송이를 닮은 집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평화로이 휴식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토지 계약을 무사히 끝내자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그런데 의욕과는 다르게 일이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당초 토지를 매입할 때 세웠던 계획은, 토지 계약을 마치면 곧장 마음에 맞는 건축 설계사와 시공사를 찾아 건물을 먼저 세운 뒤에 실내 인테리어 시공만 내가 맡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세히 알아보니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건축 설계란 우리 생각과 달리 건물의 외관을 먼저 설계하고 나서 내부 구조(방 개수, 층수 등)를 짜는 것이 아니었다. 내부 구조를 먼저 설계한 뒤에 외관을 설계하는 것이 순서였다. 건축설계사무소 몇 곳을 찾아다니며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자 생각이 많아졌다. 내부 공간을 내가 구성하고 설계해야 하는데, 그것을 생략하고 다른 이에게 외부 설계를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며칠 내내 고민해 내린 결론은, 결국 내가 내외부 설계를 전부 직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 없이 건축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하는 날이 이렇게 갑작스레 오다니. 겁나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여태 실내 공간 디자인을 해왔을 뿐 건축의 기역자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한두 푼 드는 일도 아니고 며칠이나 몇 주 만에 완성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행복한 상상 속에서 그렸던 하얀 집이, 갑자기 절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다가왔다. 어찌 되었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 대학 시절처럼 바닥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태도는 비장할지언정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일이 풀리니까. 건축 신고와 착공계 신청부터 끝낸 뒤, 토목 설계와 구조 계산을 업으로 삼은 남편과 일주일간 머리를 맞대고 설계도를 함께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얼개를 잡고 나서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아이들을 재운 깊은 밤, 설계도를 뜯어고치고 발전시키며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2달이 지나 드디어 현장도 첫 삽을 떴다. 우선 집의 가장 기초가 될 1층 바닥의 콘크리트 타설과 철근 배근 작업, 전기 배선 작업에 착수했다.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콘크리트를 가득 실은 차가 오가는 현장을 지켰다. 그렇게 바닥을 만들고 형틀을 잡아 벽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고…  처음엔 두렵기만 했던 것이 실체가 되어 눈앞에 보이게 되자 너무나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현장에 가는 일이 신났고, 거의 매일 얼굴을 보게 된 작업 반장님들과 친밀해지고 집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설계에 담긴 의도들이 작업에 잘 반영되도록 했다. 그림이 점점 건물이 돼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식 같게 느껴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그렇게 완성된 우리의 집을 찬찬히 글로써 살펴보자면, 처음 상상한 스페인의 주택 모티브를 우리 집에 적용하기 위해 외관을 희디흰 화이트 스타코 플렉스로 도장했다. 단열과 크랙에 유리한 스타코의 기능적 장점과 깔끔함이 돋보이는 미감적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외부에서 집을 바라볼 때 드는 첫인상은 반듯하면서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특히 2층의 돌출된 듯한 대형 창을 통해 건물의 입체감을 강조하려 했는데, 이는 창이 위치한 공간인 아이들 방을 다소 특별하게 구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마음껏 받고, 밤에는 휘영청 밝은 달과 반짝이는 별을 가까이서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 주고 싶어  4m에 달하는 창을 설치했다. 조경의 경우 전체 건물의 조감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외부로부터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간결하게 조성했다. 밤에 보는 집도 낭만적인 무드의 야경으로 보일 수 있도록 주변의 다른 주택들에 비해 외부 조명에도 힘을 주고 디테일을 신경 썼다.





비행기 활주로처럼 가로로 시원하게 뻗은 형태를 띤 집 실내는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1층을 거실과 주방, 다이닝룸, 팬트리 공간 등 공용 공간으로, 2층을 마스터 베드룸과 아이들의 방이 있는 프라이빗 공간으로 구성했다. 메인 현관은 중문 없이 실내를 향해 개방된 형태인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창밖으로 식재한 나무들이 보이도록 설계했다. 정원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커다란 통창이 설치된 거실은 바깥에 나가지 않더라도 집 어디에서나 자연의 운치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집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연광을 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 높은 층고의 천장에도 길게 창을 내었다. 실내 마감재로는 웜톤의 화이트 친환경 페인트를 택해 벽면을 도장하고 바닥은 무광 포세린 타일로 마감해 전반적으로 티 없이 깨끗하고 맑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방과 다이닝룸에서도 역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긴 창을 내어주고, 블랙 컬러 가구와 천연 대리석 상판, 화이트톤 수납장을 배치해 디자인 완성도를 높였다. 





한편 2층의 방들은 프레임 없는 도어를 달아서 복도, 벽, 도어가 모두 하나처럼 군더더기 없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대형 창을 낸 아이들 방은 아토피와 새집 증후군 예방을 위해 친환경 종이 벽지와 친환경 페인트를 사용했고, 바닥은 화이트 컬러의 원목 마루로 시공해 퓨어한 느낌을 주었다. 침대의 경우 자작나무 소재로 직접 제작해 배치했고, 놀이방 역할을 하는 복층 아지트로 올라가는 계단의 빈 공간을 수납공간으로 만드는 알뜰함도 챙겼다. 2층의 마스터 베드룸은 온전한 침실과 드레스룸으로만 기능하도록 설계했는데,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정면에 창을 내고 방보다 더 넓은 테라스를 마련했다. 또, 휴양지의 리조트처럼 이국적인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 실링 팬을 달고 월넛 블랙에 가까운 컬러의 짙은 원목마루로 바닥을 마감했다.





집의 야외 공간과 내부에 각각 시그니처 공간을 설계하기도 했다, 우선 야외의 시그니처 공간은 수영장. 수영장의 설계와 시공 자체가 내가 이 업에 뛰어든 이래 처음 한 도전이었기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가로 2.5m, 길이 11m의 넉넉한 수영장은 스페인의 지중해 바다를 떠올리며 아이들이 커도 충분히 넓게 이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설계했다. 여름에는 수영장 데크로 쓸 수 있고, 겨울에는 닫아서 수영장을 덮을 수 있는 합성 목재 재질의 슬라이드형 도어를 설치하고 풀 내부에는 자동 여과 시스템을 적용해 수질 관리와 청소가 쉽도록 했다. 내부의 시그니처 공간은 2층의 욕실이다. 내부 설계도를 스케치하며 가장 먼저 배치하고 구체적으로 그렸던 곳이 바로 욕실이었다. 마스터 베드룸 만한 너른 평수에, 노천 가족탕을 연상시키는 욕조와 아름다운 녹음을 보여주는 큰 창, 벽난로를 중심으로 나의 모든 공간관과 디자인적 미감을 응축해 담은 욕실은 우리가 그 집을 떠나는 날까지 네 가족 모두의 최애 공간으로 등극했을 만큼 멋진 공간이 돼 주었다. 



집은 시공을 시작한 지 반년 만에, 처음 구상한 설계도를 거의 99% 재현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어찌나 모델링을 많이 하고 상상도 많이 했던지 준공을 마치던 날도 마치 그 집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총 1년 여에 걸친 과정을 지나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그날, 눈을 닮은 하얀 집이란 뜻을 담아 설원재(雪原在)라는 이름을 집에게 지어 주었다. 




설원재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의 일상이 행복했다. 산뜻한 봄기운이 돌면 해외 어느 호텔 수영장이래도 믿을 만큼 멋진 야외 수영장을 열어 아이들과 아침저녁으로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물 위에 음식이 담긴 트레이를 살살 띄워서 더없이 특별한 식사를 하는 날도 있었다. 여름 풍경을 그대로 몸에 흡수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피로도 싹 가셨다. 두 아이가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정원에서 마음껏 뛰노는 가을을 지나 욕조 안에 둘러앉아 벽난로를 쬐고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과일을 나누어 먹는 겨울까지, 설원재는 일 년 내내 우리만의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는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보금자리’라는 말 그대로의 뜻처럼, 설원재는 새 둥지처럼 우리 가족을 포근하고 아늑하게 품어주었다. 설원재로 인해 매거진이며 방송 등 미디어 촬영을 제안받는 소중한 기회도 얻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설원재는 그저 집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생명 어린 존재와도 같다. 



 더 코나의 설원재 프로젝트는 완공 이후 <밀크 매거진>에 수록되었습니다. 소개된 컷들 중 일부를 포스팅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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