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시뮬레이션 우주라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

by 인규

세상에 떨어진 아기의 울음소리는 마침내 낙원에 도착하여 내는 환호성일 수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내는 포효일 수도 있다. 아기는 축복을 받아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얻었다. 아기는 본인의 생명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21세기에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분석하여 메시지를 도출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으나 이는 아기가 보다 편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움을 줄 뿐, 세상에 떨어진 순간 내는 아기의 울음소리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어차피 낙원에 도착한 축복이라고 해석할 거니까.


결국 세상에 떨어졌을 때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생명의 잉태는 엄청난 축복이라는 대전제를 뇌에 심어야 비로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라는 생명에 무한한 고마움을 표하며 생명유지를 위한 선택이 삶에서 0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서 몇 초안에 이루어지는 필연적인 학습 과정이라고 나는 믿는다.


따라서 삶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 더 투박하게 바꾸면 왜 사냐는 질문에 삶의 목표로 대답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생명유지를 위한 선택이 0순위가 된 우리에게 왜 사냐는 질문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대전제와 공리에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각자의 삶을 지속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지속을 위해 음식을 섭취할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지속을 위해 체온을 유지할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삶을 지속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이렇게 대전제를 스스로 확립할 자유를 잃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아무리 고민해서 정해도 그 가치판단은 생명유지보다 하위 전제에 놓이게 된다.


만약 인간이 신에 의해 아니면 프로그램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사실로 판명이 난다면 각자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까.


자기 자신이 시뮬레이션 우주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 내가 가상세계에 속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다면, 가장 좋은 선례는 아무 이유 없는 자살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률이 증가할까? 근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반례라고 외치고 싶어서 시도하는 자살은 아무 이유 없는 자살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인간은 가상세계의 오브젝트라고 선언하는 논문을 읽게 된다면, 이를 그대로 순응할지 스스로가 반례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 안달이 날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난 그런 결과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할 수 있다. 그저 작은 내가 바라보는 조그마한 세상 속에서 조그마한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가는데 불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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