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 룸메이트

나이로비 커피와 케냐 룸메이트

by 라니

오늘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문득 나의 룸메이트 조비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아부다비에서 첫 4년을 한 집에 같이 살던 내 첫 룸메이트이자,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본 아프리카인. 케냐 나이로비에서 온 천사 같은 내 룸메.


지방에 살았던 내가 외국인을 처음 본 게 언제인가 싶다. 대학교 때 교양 과목 외국인 교수님을 빼고는 21살 중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본 적이 없다.

영어 교양 과목 시간에도 외국인 교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이 없을 정도로, 나는 지극히 조용하고 때로는 수줍음도 많은 소녀였다.

그 수줍음 많던 스무 살 소녀. 집, 학교, 학원만 가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고 써 놓았던 일기장의 그 말처럼, 십 년이 지나 나는 참 멀리도 와 있었다.


아시아 대륙을 넘어, 중동 아랍 에미레이츠의 수도까지 와 버린 것이다.


입사 동기였던 조비 타 와 나는, 22명 동기 중에 유일하게 국적을 대표하는 한 명이었다.

케냐, 독일, 프랑스, 인도, 미국, 루마니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포르투갈, 러시아, 몰타, 그리고 Miran from South Korea!


6주간의 입사 교육이 끝나고

사회자를 맡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제이슨이

내 이름을 호명하던 순간의 떨림, 추억이 된 순간들.


우리의 가장 젊고 빛나던 시간을 함께 나눈 입사 동기들 22인방


그런 추억을 함께 나누고, 그 시간을 함께 살았던 입사 동기이자, 룸메이트 그녀가 생각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커피숍 메뉴판에 적힌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프리카 케냐 산지의 커피를 보면 종종 그녀를 떠올린다.


졸업하고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부다비 집에 벌떼 소동이 일어난 밤의 일이다.

나는 쉬는 날, 그녀는 밤 비행을 앞두고 있었다.

한 밤중 적막을 깨부수는 비명소리. 내 방에 있다가 거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허겁지겁 뛰쳐나갔더니, 겁에 질린 그녀와 시체처럼 죽어있는 수십 마리의 벌떼들이 복도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껌껌한 걸 좋아하던 내 룸메, 부엌에서도 요리할 때 어두컴컴한 데서 하는 것이 익숙한 아프리카 룸메였다. 그날도 밤 비행이 있기 전, 비행 준비물을 챙기며 베란다 밖에 널어놓았던 구두를 챙기러 나갔는데 역시나 밖의 베란다 전등은 켜지 않았기에 손으로 잡은 신발에 벌들이 함께 따라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 날 아침 조비타는 신발 냄새 없애려면 커피만큼 좋은 게 없다며 기내 구두에 커피 파우치를 쑤셔 넣었었다. 커피잔 대신 신발을 치켜들고는 냄새 한번 맡아보라며 난리법석이었다.

햇볕에 바짝 오징어 말리듯, 테라스에 기내용 구두를 널어놓고는, 독한 향수 대신 아라비카 향으로 감싼 구두를 신고 비행을 가려고 했을 것이다.


아랍의 벌들이 고약한 구두 냄새에 취해 기절을 했는지, 케냐 커피 향에 취해 죽었는지, 그날 밤 수십 마리의 벌떼들이 세상을 떠났다.


조비타가 비행 간 사이 경비원이 죽은 벌떼 들을 확인하고 갔다. 다음 날은, 회사 본사의 안전 부서에서 일하는 하얀 칸 두라를 온몸에 걸친 아랍 현지 직원 2명이 이런 일이 없었다며 최초 사건을 맡은 경찰처럼 현장 사진을 찍어갔다.



나이로비에서 온 룸메의 못 말리는 커피 사랑으로 일어난 벌떼 소동.

그녀는 그 뒤로 구두에 커피 파우치를 넣어두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으리라.



햇 병아리 같던 시절,

모든 비행이 설레고 때로는 14시간, 16시간 장거리 비행 후에도 모든 것이 마냥 신나던 시절, 높은 고도에서 위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해 피곤해질 찰나 비행기도 하늘 속 공기의 흔들림을 타고 흔들대다가 부엌 선반에 있던 생수병이 잘못해서 내 다리로 떨어졌을 때에도 그 멍자국의 아픔보단 애틋함과 열정이 더 컸던 시절.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감사함이 크게 다가오던 그 시절의 추억 속에 함께 묻어 있는 나이로비 커피 파우치의 기억.


내 인생에서 처음 만난 아프리카 천사, 나의 아부다비 룸메이트 조비타,

몇 년 전, 그녀의 고향 케냐에서 연극을 보러 갔다가 만나게 된 잘생긴 케냐 청년과 약혼을 한 그녀는, 우리의 휴가를 맞춰서 나이로비에 같이 가자고 했었지만, 나는 내 휴가에 한국에 가기 바빴다. 그리도 멀리 가서 살고 싶었는데, 그 멀리 가 살게 되니 그리운 건 고향이었다.


예쁜 집을 거의 다 지어간다며 좋아하던 조비타, 이번 여름 나의 생일에 그녀는 저 멀리 아부다비에서 제일 먼저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아부다비를 출국할 때, 격리 기간과 맞물려 그리고 부분 봉쇄된 현지 상황으로 부둥켜안고 제대로 인사를 하고 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엔, 꼭 케냐 나이로비행 비행기를 타고 너의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갈게.


새벽 6시, 잠옷 차림이 더 익숙하던 너와 내가 유니폼을 입고 같이 비행 가던 날,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예쁜 추억이 된다.


어젯밤 노트북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십 년 전 승무원 준비생 때의 사진들,

그 시간을 함께한 가족, 친구들과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모두들 더 젊었고 빛이 나고 예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너무 예뻐서, 추억이 너무 예뻐서 목이 메는 느낌은 무엇일까.


지금 하얗게 샌 아빠의 머리는 십 년 전 빗질 자국이 있는 숯 많은 검은 머리였고,

엄마의 주름은 조금 더 옅고 앳된 얼굴이었고,

회사 생활에 지친 남동생의 얼굴은 십 년 전 너무도 앳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생기 가득한 얼굴이었으며,

언니는 갓 엄마가 된 기쁨인지 아들을 부둥켜안고 찍은 사진 안에 기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준비생이던 나는, 꿈을 품고 사는 게 얼마나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지 느껴지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사는 얼굴이었다.

십 년 전의 우리, 십 년 전의 시간 그 시간 속에 남아있는 추억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 한 기상학자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십 년 뒤인 2030년이 되면, 2020년 이번 해를 참 좋았던 때라고 생각할 것이다 라고 했다.

" 참 좋았던 해."

"참 좋았던 때."


지금 이 순간. 이번 달, 이번 연도.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곤 하지만, 십 년 뒤 우리는 오늘을 이번 해를 어쩌면 나쁘게만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낮의 볕을 쬐는 한 노인의 오후, 할아버지는 어떤 추억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있을까.



우리는 추억 속에 살고, 그 시간 속에 저장된 수많은 예쁜 추억들을 재산처럼 하나하나 꺼내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 예쁜 추억이 주는 힘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받는다.


코로나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 그리운 사람들을 알사탕 까먹듯 꺼내어보고

오늘 같은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한낮의 볕이 손등에 내려앉은 날,

기억할 수 있는 예쁜 추억이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이다.


십 년 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무엇을 그리워하고 감사하고 있을까.

어떤 예쁜 추억들이 그 시간의 우리를 살아내게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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