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에미레이츠에 살면서 너무 그리웠던 한국의 가을 산,
파란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베란다에 앉아서만 보고 있기 너무 아까운 가을 아침,
엄마와 함께 산에 가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온 산은 여전히 싱그러웠다.
말없이 걷고 걷다가, 숨이 찰 때쯤 배낭에 싸 온 얼음 가득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숨을 고르는 시간이 감사하다. 키 큰 나무 잎사귀들의 빈 공간 틈을 타고 내 손등에 떨어져 새겨진 볕의 그림자를 말없이 요리저리 구경하며 숨을 고른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볕이 따스했고, 나뭇잎사귀들이 흔들려 부딪치는 소리가 편안했다.
파란 가을 하늘, 그 안을 누비던 구름 여행
비행기에서 일을 하면서, 그리고 사막나라에 사는 7년동안 이 향긋한 풀냄새 짙은 산 공기가 너무도 그리웠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을 빠져나와 마시던 다른 도시들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그래서 유난히도 좋아했던 모양이다.
지금 아랍 에미레이츠 그 곳은 45-50도 까지 오르는 여름의 절정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진짜 여름과 시원한 여름 2가지 계절이 있다고 말하곤 하는 중동의 날씨. 더운 45.50도까지 치솓는 날씨에 비행기의 에어컨 시스템까지 먹통인 날엔 비행기가 출발하기도 전에 땀범벅이 되곤 했었다.
복고풍 스타일의 여전사 같은 유니폼에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갈색 가죽 장갑과 금색 로고가 박힌 따뜻한 모자를 쓰면 완성되던 정들었던 유니폼,
공항과 비행기를 연결하는 연결 브릿지가 설치되지 않고 계단으로 손님들이 탑승하는 날, 하필 모래 바람이라도 불어칠 때면
흔들리는 모자가 날라갈까 안간힘을 썼었다.
땀에 젖은 유니폼 셔츠를 가끔 불어오는 건조한 사막 바람에 말려 송글송글 해지던 날들.
그러고는 비행기 문이 닫히면,세계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과 몇 시간을 때로는 열시간을 넘게 그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했던 시간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뭇잎사이로 스쳐지나간다.
최종 면접을 볼 때 인터뷰어 2명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아부다비에 오면 가장 힘들 것 같은 게 뭐니?
"나 등산을 좋아하는데, 아랍에는 산이 없지? 산에 못 가서 아쉬운데 괜찮아. 다른 나라로 비행 갈 때 산에 가면 되니까."
인터뷰 준비하며 미리 준비했던 수십 개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은 생각나지도 않고 대화를 하다 보니 그냥 나 자신이 되어 말이 나왔다. 등산 얘기를 하니 멀뚱히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uae에도 산이 있기는 하다. 돌산. 돌로 된 산이다.)
산이 주는 힘은 무엇일까.
마스크를 쓰고도 혼자라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걷기의 힘. 걷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걷다 보면 차오르는 숨 아래에서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는 느낌이고,
걸으며 오르며 내 눈이 담는 산속의 풍경 그 사이에 보이는 하늘. 아스팔트 위에서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떠가는 구름들.
산을 오르고 걸으며 얻는 에너지는 내 몸이 말해 주고 있었다.
비행을 할 때도 참 많이도 걸었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수없이 걷고, 비행이 끝나면 호텔 안에서만 있기가 아까워
시차에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일으켜 세워 수많은 도시의 거리들을 거닐었었다.
50도의 온도에 밖에 나가기도 엄두가 나지 않는 날엔,
모래 바람이 불어와 마음이 사막처럼 메말라가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땐
일부로 자연이 좋은 유럽이나, 한국으로 비행을 신청하곤 했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11시에 산을 올라 내려오니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만보기는 2만 3천8 백보를 가리키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다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십 년 전에는 산에 조금만 올라도 힘들다고 투정 부렸었는데 그때 모습이 생각났는지 엄마는 산을 잘 탄다고 칭찬하셨다.
"엄마, 나 비행하면서 체력을 길러서 왔나 봐."
비행을 할 때 앞치마에 만보기를 넣고 걸음수를 측정해 봐야겠다고 농담삼아 한 말이 떠올랐다.
손님이 잠든 사이, 시카고로 향하는 밤하늘에서, 서울로 향하던 밤 비행에서, 100곳이 넘는 세계의 도시들을 향하여 떠가는 비행기안에서 수없이 걸었던 시간들 속에, 체력이 길러졌나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의 수고를 감수해야 하기도 하는 승무원 이란 직업, 수많은 세상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편견 없이 보자라는 생각을 많이도 했었다. 그것보다 더 크게 얻은 것이 이 체력과 인내심이었으리라.
어제 아직도 그곳에 있는 친구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멜버른에 왔다고.
마스크를 쓰고 4만 피트 상공을 걷고 걷는 내 친구, 항공사 동료들. 그리고 깊은 산 공기를 들이키며 오늘도 산속을 걷고 걷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이에 함께 살아가는 산속의 생명체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