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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행 작가 Jan 08. 2021

폭설과 비료푸대

어린 추억에 잠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나가보지 못 했지만 눈이 오는 광경만 봐도 좋다. 겨울은 춥고 눈이 오면 미끄러운 길로 인해 싫다. 하지만 눈 오는 광경을 보는 것은 좋다. 무슨 심리일까?    



눈이 오는 광경을 보며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내 고향은 전북 임실 오수이다. 고향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우선 ‘오수’라는 지명의 한자는 ‘獒樹’이다. ‘개 나무’라는 의미이다. 왜 이런 의미의 지명을 지었을까?    



지명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신라시대 거령현(지금의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사는 김개인(金蓋仁)은 개를 아주 사랑하여 항상 데리고 다녔다. 어느 해 이른 봄, 개를 데리고 장이 선 오수로 장보기를 나갔는데 너무나 술을 좋아하여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버렸다. 그는 몹시 취하여 개와 함께 집으로 가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만 잔디밭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때마침 부근에서 들불이 일어나 타 들어오자 개는 주인을 깨우려고 입으로 물고 끌어 보았으나 깨울 도리가 없자, 다급하게 가까운 냇물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흠뻑 묻혀와 주변의 잔디를 적시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차례를 거듭하자 잔디는 물에 젖어 불길이 그에게까지 번지지 않았다.    

얼마 후 한기를 느낀 주인은 깊은 잠에서 깨어 자기 옆에서 불에 타죽어 있는 개를 발견하였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그는 그 자리에 개 무덤을 만들고 그 앞에 평소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다.    

그런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돋아 큰 느티나무로 성장하였고, 그때부터 그 나무를 '오수(獒樹:개 나무)'라 칭하였는데, 1992년 8월 이 고장 이름으로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이 나무는 수령(樹齡) 500년에 높이 18m, 둘레 5m로 자라 1982년 9월 군(郡)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개와 관련된 설화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그 중 의견설화(義犬說話)는 한국의 의견설화 유형 가운데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에 속하는 대표적 설화로, 오수리 외에 전국 21개 장소에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의견비


내 고향 오수에서는 의견의 넋을 위로하고 의로운 정신을 보전하고자 1982년 오수의견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해마다 의견제(義犬祭)를 거행하고 있는데, 행사는 매년 4월 중에 좋은 날을 택하여 2일간 시행한다.    



눈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고향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추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수에는 ‘원동산’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의 추억이 있어서이다. 위 이야기에 나오는 개를 추모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놀이터였기도 하다. 올해 나이가 47세이다. 내 나이 또래는 기억이 날 것이다. 시골에서 살았다면 가지고 있는 추억이다. ‘’원동산‘에 가면 가파른 언덕이 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그 가파른 곳에서 비료푸대로 미끄럼을 탔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스케이트나 썰매를 탄다. 썰매도 탔긴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비료푸대로 놀았던 추억이 있다. 비료푸대가 찢어질 때까지 탔다. 어릴 적 겨울에 최상의 놀이였다.    



동네아이들과 놀던 그 시절이 기억이 난다. 가파른 곳에 올라가 푸대를 타고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면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있다. 하지만 푸대로 미끄럼을 탈 수 있는 기쁨이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고통이 정체되고 버스가 가다가 정지되는 폭설이 내렸다. 눈이 많이 와서 걱정이지만 눈 오는 것을 보니 어릴 적 추억이 기억이 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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