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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Apr 14. 2022

JFK8 (1/3)

2020년 3월의 기억

JFK8.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투표를 통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했다는 뉴스에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이름이다. 언뜻 암구호처럼 보이는 JFK8은 뉴욕시에 있는 유일한 아마존 물류창고의 이름이다. 지난해 말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이 미국 내 직영 매장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한 데 이어 이번에는 30년 가까이 이어진 아마존의 '무노조 경영' 원칙도 깨지게 생겼다.

그 중심에 선 JFK8을 일찌감치 글의 제목으로 정해둔 건 지난해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읽었던 인상적인 뉴욕타임스 기사가 떠올라서였다. 앞서 "도시를 굴리는 엔진"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뉴욕을 굴리는 엔진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바로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필수 노동자'들이다. 오늘은 JFK8의 노동자와 노동조합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파트 우편물실에 도착해있는 택배 포장지에서 JFK8은 쉽게 눈에 띈다. JFK8의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물건은 나를 찾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글에 잠깐 언급했지만, 홀푸즈에 장 보러 갔다가 우리 말고는 대부분 장보기 대행 서비스를 하는 긱 노동자인 걸 발견하고 놀랐던 게 2020년 3월쯤의 일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입에 붙기도 전, 그러니까 아직 언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란 표현을 쓸 때였다. 미국 언론도 한동안 'Novel Coronavirus"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 굳이 바이러스가 시작된 나라, 지역을 콕 집어 부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혐오주의자들이 중립적인 이름을 붙이지 않겠다며 악을 쓰던 시절이기도 하다. 우한 폐렴이란 말을 꿋꿋이 쓰던 몇몇 국내 언론이나 "누가 뭐래도 나는 이걸 중국 바이러스(China Virus)라고 부를 거야. 듣기 싫어? 그럼 쿵푸 바이러스 어때?"라고 비쭉대며 말하던 트럼프도 생각난다.

2020년 3월 뉴욕은 어디를 보나 낯설고, 매우 싸했다. 한산하다 못해 유령 도시처럼 썰렁한 거리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어쩌면 그때는 다른 사람보다도 우리 같은 동아시아인을 보면 최소한 반 발자국 정도라도 더 거리를 두고 지나쳐가곤 하던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트럼프의 "중국 바이러스" 발언을 인종차별주의라고 규탄하는 뉴요커라도 그랬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자기를 지키려는 본능은 이성적인 사고를 앞지르는 법이니까. 

마스크가 귀하디 귀한 시절이었다. 한국의 신천지 교회 발 바이러스 확산 소식을 접한 뒤 마스크를 찾아 동네를 한 바퀴 쭉 돌았지만, 마스크는 못 구하고 한 가게에선 "너희 친구들(your people)이 한참 전에 몇 박스씩 사갔어. 아마 바다 건너 집에 보내려 했나 봐." 따위의 뜨악한 말을 들었다. 악의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그렇게 말하던 백인 아주머니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다른 사람의 비말이 두렵기도 했지만, 아직 날씨가 쌀쌀하니 목도리를 칭칭 감고 모자를 푹 눌러쓴 다음에 마스크까지 쓰면 피부색도 가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막 보도되던 때였다. 내가 선택할 수 없던 것이 낙인이 되어 어느덧 혐오의 창끝이 나를 향하는 세상에 사는 건 생각보다 끔찍했다.


참고로 동아시아인을 영어로 바르게 옮기면 East Asian이 아니다. 미국 사람들의 인식에 맞춰 옮기면 Chinese가 정확하다. 우리나 한국, 일본, 중국 사람들이 다르다고 하지 보통 미국 사람들에겐 '알게 뭐람?'일 테니까. '에이, 그래도 엄연히 다르지.'라고 생각하시는 분 중에 인도, 파키스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생김새만으로 구분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인정. 그 정도 눈썰미가 있다면 그 눈썰미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의 무지를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중국을 딱히 좋아해서 그러는 것도 물론 아니다.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중국을 혐오하는 정서가 두드러지게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미국 내의 중국 혐오를 보고 고소해하며 손뼉을 치는 분들을 꽤 많이 본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중국인과 한데 묶여 혐오와 공격의 대상이 되는 내 처지가 딱해서 늘어놓는 넋두리다. 지구 상의 70억 인구 중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 더 많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싫어하는 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지만, 그 마음을 혐오의 언어로 발화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잖은 경우 한국 사람들의 중국 혐오는 결과적으로 누워서 침 뱉기가 되곤 하는데, 그 침은 혐오발언을 한 사람이 아니라 나처럼 미국에 사는 동아시아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떨어진다.


오늘도 이야기가 샛길로 새 버렸다. 실은 며칠 전부터 쓰고 있던 글인데, 어제 갑자기 지하철역에서 난 총기 사고 때문에 다른 글을 먼저 쓰고, 다시 쓰던 글을 이어가려니 머릿속이 봄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어수선하다. 글마저 더 어수선해지기 전에 이 글은 이쯤에서 닫고, 곧바로 두 편에 걸쳐 원래 쓰려던 글을 이어가겠다.

2020년 3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은 건 제목의 배경화면 속 팻말을 들고 있는 크리스 스몰스가 물류창고 노동자의 건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아마존에 항의하며 작업 중단(walkout)을 주도했다가 해고당한 게 2020년 3월의 일이라서였다. 관련해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글을 썼는데, 글에 다 못 담은 이야기를 한 편, 그저께 업데이트된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 스몰스와 팔머 인터뷰를 정리해 한 편으로 더 소개하려 한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불거진 아시아 혐오를 간접적으로 잠깐 겪고도 이렇게 힘겨워한 나는 흑인 노동자인 스몰스와 (함께 노조 결성을 주도한 동료 노동자) 데릭 팔머가 평생 겪은 직접적인 차별의 고통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아마존은 내부 문건에서 스몰스를 가리켜 "똑똑하지 않다"고 평가했지만, 스몰스의 인터뷰는 역경을 헤쳐 나온 단단한 이의 통찰과 지혜로 가득한, 감명 깊고 흥미진진한 '1시간 순삭' 콘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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