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의 회복

혼자의 방, 나를 돌보기 시작하다

by 잉글맘

프랑스에서 돌아온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내가 혼자 지낼 수 있는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졸업하는 시기인 7월 말까지 서로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앞으로 6개월의 시간이 더 연장되었다.

원룸으로 짐을 옮긴 후 바닥에 누웠다. 마음이 불편한 것인지, 딱딱한 바닥 때문에 허리가 불편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원룸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는 내가 너무 처량해 보여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숟가락 1개, 젓가락 1모, 머그컵 2개, 접시 3개, 냄비 1개, 프라이팬 1개…


혼자 살려면 최소한의 살림살이가 필요했다. 친정 부모님 댁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고 나머지는 다이소에서 구입을 했다. 나중에 영국으로 돌아갈 때 늘어난 살림을 처리하는 데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아서 정말 최소한의 물건만 들여놓자며 다짐을 했다.


나의 아침은 이제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결혼생활 동안, 늘 아이와 남편을 챙기고 공부방 사업에 매진할 때 나의 건강은 늘 뒷전이었다. 처음으로 개인 PT를 끊어 운동을 시작하니 굳어진 내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질렀다. 코치님은 말했다.
“회원님은 몸의 긴장감이 많으시고, 어깨가 너무 올라가 있어요. 아직 50대가 아니신데 오십견이 벌써 오면 어떡해요?”
애쓰며 살아온 세월 동안 놓쳐버린 나의 몸. 이제라도 아껴주고 보살펴주고, 칭찬해주고 싶다.



리스본, 감사함을 배우다

2월 중순, 나는 다시 여행용 가방 안에 한국 음식을 넣고 있었다. 이번엔 포르투갈 리스본. 비자 거부로 인해 우리 가족 세 명은 두 달에 한 번 외국 여행을 다니고 있다. 사업을 할 때는 늘 여행을 가더라도 성수기에 비싼 돈을 주고서 짧게 다녀와야 했는데, 직업이 없는 백수이다 보니 저렴한 가격으로 비수기에 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닌가.

절망적인 생각들로 분노하던 때에는 감사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몸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지, 비수기에 저렴하게 떠날 수 있는 여행조차 감사하게 느껴졌다.


리스본에 하루 먼저 도착한 나는 피곤함 속에서도 혼자 낯선 도시를 걷는 것이 편해졌다. 다음 날 공항으로 남편과 딸을 마중 나갔다. 이번에도 딸아이는 부탁했다.

“엄마, 제발 차분하게 맞이해 줘.”

태국에서의 강렬한 기억이 아직 아이에게 상처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리스본의 날씨는 한국의 5월과 비슷했다. 손을 잡고 리스본의 거리를 함께 걷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상인지 새삼 느껴졌다. 한국 음식을 해 먹고, 함께 영화를 보고, 달콤한 수다를 떨다 잠드는 평범한 시간이 그토록 그리웠다.

벌써 떨어져 지낸 지도 6개월이 지났다. 조금씩 각 자의 위치에서 이 어려운 상황들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음을 알기에 서로가 안아주었다. 남편의 건강도 다행히 많이 회복이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 약은 어쩜 세상에서 가장 쓴 것이 아닐까?

그 약이 효과를 내는 그 순간. 우리는 예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조금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인연, 혼자가 두렵지 않다

리스본에서 로컬인들이 가는 작은 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을 만났다. 작은 마을의 아지트처럼 사람들이 모여 식사하던 자리에서 그 학생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을 동경하며 아르바이트로 여행 자금을 모은다는 학생의 눈빛은 맑고 예뻤다. 리스본까지 챙겨 온 한국 음식을 선물하며 따뜻한 인연의 소중함을 느꼈다.

여행이 끝나고 남편과 딸은 먼저 영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해졌고, 홀로 서 있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시 원룸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스스로를 돌보며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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