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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Mar 20. 2023

블랙 회사를 만드는 괴인들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알고 보니 블랙기업? (4)


블랙 회사를 만드는 것은 결국은 사람이다. 

만약 제대로 된 회사라면 블랙을 만드는 사람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고, 혹시 채용하게 됐다면 제도적으로 막아낼 것이다. 


일이 힘들다 보니 직원들은 계속해서 퇴사를 했고, 매일 울면서 일하면서도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나도 A사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1년 정도 근무했을 때는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새로 온 사람들 수보다 적어질 정도로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다.


사람.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 한 명은 있다지만은, 내가 A사에는 끓여도 끓여도 우러나오는 사골 같은 괴인들이 있었다. 






내가 어렵게 취직을 한 걸 아는 아버지가 회사 다닐 때 들고 다니라고 SPA 브랜드에서 갈색 크로스백을 선물로 사주셨다. 나는 그 가방이 심플한 디자인에 수납공간도 넉넉한 가방이라 참 마음에 들었다. 


서류부터 간식, 여분의 배터리까지 다 넣어서 열심히 들고 다녔는데 매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눈에 띄었는지 2팀장이 나를 불렀다. 


"그 가방 어디 거야?"


2팀장의 질문에 딱히 브랜드가 없는 가방이라고 대답하자 '그런 거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좋은 의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집에 가서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언니가 마음에 걸렸는지 회사 들고 다니라고 실용적인 롱샴 가방을 하나 사다 줬다.


나는 또 언니 마음이 고마워서 곧바로 롱샴 가방을 메고 출근을 했는데, 2팀장은 나를 보자마자 "롱샴 가방도 들고 다니네" 라며 폭소를 했다.


나를 보며 책상에 엎드려 폭소하는 상사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상처를 받았다. 


2팀장은 늘 지방시 가방을 들고 다니며 자기 친구는 남자 친구에게 어떤 명품 가방을 받았고 자신은 다음에 무슨 가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명품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건 싫으니까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건네는 상처가 되는 말은 무시를 하거나 되돌려 주면 그만이지만, 사회 초년생 때는 그런 말을 들어도 말대꾸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를 살 월급이나 주면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3선배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격 좋은 사람으로 인기가 많았다. 나도 항상 따뜻한 말을 해주는 3선배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업무적으로는 달랐다. 


매일 루틴하게 오후 시간 맞춰 팀의 성과 데이터를 각 팀원이 모두 만들었어야 했는데 3선배는 데이터 제출 시간이 되면 항상 나에게 개인 메신저로 내 자료를 요구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인 3선배는 매일 내 자료를 다운 받아 자신의 이름을 추가해 데이터를 제출했다. 나는 답답하게도 3선배의 요구에 데이터를 넘겨줄 수 없다고 말도 못 했고, 상사에게 보고도 못했다. 


그저 매일 내가 만든 데이터를 3선배에게 건네주고 속으로 끙끙 앓을 뿐이었다. 한참 뒤 3선배가 회사를 그만둘 때 모두들 아쉬워했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원수가 일한다고 해도 말릴 이상한 회사라서 일주일, 한 달 만에 그만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들 현명한 선택을 했구나 싶다. 그런데 4주임은 고작 3개월 일하고 퇴사한 뒤에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팀이 가지고 있는 거래처 명부를 건네 달라고 했다. 


나는 정말 벙졌다. 도대체 이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뭘 맡겨 놓은 걸까? 

지긋지긋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4주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A사에는 각 층에 남녀 공용 화장실이 하나씩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층에 근무하던 5대리는 꼭 내가 근무하는 층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어느 날 나는 점심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내가 나갈 때까지 문을 '쾅 쾅 쾅' 두드렸다. 놀라서 얼른 양치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5대리가 내 얼굴에 주먹을 내밀면서 "화장실에서 양치하지 마라"라고 윽박을 질렀다. 


"네?" 황당해하는 나를 뒤로 하고 5대리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너무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그 이후로 나는 5대리와 화장실에서 마주치지 않도록 다른 건물 커피숍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양치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하도록 했다. 


5대리와 같은 팀이었던 6과장은 예쁜 외모와 화려한 스타일링으로 유명한 사내 인사였다. 나는 6과장과 담당이 겹치는 게 없어서 교류가 없었는데 뜬금없이 어느 날 6과장에게서 메신저로 자신이 화장품을 안 가져왔으니 파우치를 빌려 달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화장품 파우치를 빌려 주겠다고 답변을 했다. 그러자 6과장은 친한 동료들과 내 자리에 와서 파우치를 빌려 가더니 파우치에 있는 화장품을 책상에 다 쏟아놓고 하나하나 구경하며 "이건 뭐야?" "에뛰드인가 봐." "다 싼 것만 쓰나 보다." 라며 내 파우치 속의 화장품들을 꺼내 품평회를 했다. 






나는 모든 게 처음이고 뭐 하나 제대로 잘 몰라서 A사에서 만난 사람들이 주는 상처를 그대로 껴안아 내 마음에 새겨 넣고 스스로를 갉아 먹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 한명만 되도 힘든 회사 생활에 괴인들이 수두룩 빽빽한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나 또한 그들과 다름없이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제대로 의사 표현을 못하니 매사에 스스로를 탓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매일 같이 우울한 감정이 들었다. 일에 지쳐 몸도 힘들고 사람들에 치여 마음도 힘든 생활 속에서 내가 직장 생활을 이어갔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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