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알고 보니 블랙기업? (2)
첫 직장으로 입사했던 A사는 홍보 대행사였다.
A사는 TV 광고나 기획 행사, 온라인 홍보 등 홍보에도 팀을 나눠서 나름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학보사 경력도 있었고 기자를 꿈꾼 적도 있었기 때문에 언론 홍보를 주력으로 하는 팀을 지원했었고, 그 팀에서 일을 하게 됐다.
홍보 대행사는 소비재를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제조 기술력이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인력이 중심인회사다. 그래서 홍보 대행사는 큰 규모가 필요하지 않고, 소수 인원의 회사가 많다.
내가 입사한 A사는 그 세계에서는 규모와 체계가 있다는 자부심이 있는 회사였다. 게다가 언론 홍보는 내가 하고 싶던 언론과 홍보를 연결시켜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다.
A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함처럼 화려하게 보이는 회사였다.
다만 첫 입사에 설레는 나에게는 입사 시작부터 큰 시련이 있었는데, 회사와 집이 너무 멀다는 것이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경기도 토박이었고, 취준생 시절에는 집과의 거리를 보고 회사를 지원할 형편은 전혀 아니었다. 일단 무조건 홍보 관련된 일을 지원하고 있었고, 취직이 된 게 A사였다.
A사는 내가 집에서 터미널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도착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른 루트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버스 타고 가서 지하철만 타고 가도 됐지만 거의 지하철 역의 끝에서 끝까지 가는 거라 정말 곤혹스러웠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열차가 시작하는 역에서 타는데도 앉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출퇴근이 편도로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사람들한테 집이 먼 데 괜찮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드디어 취직을 했다는 사실에 취해서 의욕이 넘쳤던 나는 뭣도 모르고 괜찮다고, 잘 다닐 수 있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하루에 3시간이 넘는 시간을 길에서 버리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내가 이 시절에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이때 탁상행정으로 인해 (놀랍게도 2022년에 다시 시행되었다고 들었다. 안전을 이유로. 하지만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변하지 않는 일처리에 한번 더 놀랐다) 경기도 버스가 입석 금지가 된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법이 시행되던 첫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하기 위해 빨간 버스(광역 버스)를 타고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희미하게 눈을 떠서 창 밖을 바라보니 제시간에 출근하려는 마음에 화가 난 경기도 출퇴근인들이 정원이 초과되어 자신들을 태우지 않겠다는 버스를 막아서서 온몸으로 버스를 흔들고 있었다.
"자 다 같이 흔듭시다!"라고 선봉에 나선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자 다 같이 우렁찬 구호에 맞춰서 영차 영차하고 버스를 흔들었다. 나와 같이 버스 안에 미리 타고 있던 승객들 또한 한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버스에 미리 탄 사람이던 못 탄 사람이던 시간 맞춰서 출근해야 하는 동지니까.
그렇게 한참 흔들리던 버스는 난감해진 기사님이 회사에 연락해 결국 사람들을 모두 태우는 것으로 정해져서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모두 태우고 출발을 했다.
그 누구도 경기도민들의 출근길을 막을 수 없었다. 그게 국회의원이건 법이건.
그렇게 힘들 게 출근을 하면 퇴근은 쉬웠느냐? 단연코 아니다.
A사는 야근이 너무나도 잦았다. 입사를 하고 일주일쯤 지난 시점부터 야근이 시작됐다. 정시 퇴근 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 물론 대표님은 예외.
한 명 한 명에게 맡겨진 너무나도 많은 업무량. 이게 누구 한 명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직원이 그랬다. 게다가 끝도 없는 컨펌의 늪. 무슨 업무를 하더라도 상사의 컨펌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 일이 끝나더라도 상사의 컨펌을 기다려야 했다.
말 그대로 눈치 보는 게 또 하나의 업무였다.
그때의 나는 8시에 퇴근하면 "와 오늘 진짜 빨리 집에 간다!"며 기뻐했다. 보통 일은 9시나 9시 반에 끝난다고 생각하면 됐는데 정말 일이 많고 바쁜 날은 11시나 12시까지 야근하는 날도 있었다.
잔업이나 야근에 대한 수당은 0원이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잦아서 매일 같이 저녁 식사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일을 하면 일은 더 더뎌지고, 더 늦게 집에 가야 하니까 그냥 먹지 말까? 아니면 어차피 늦은 거 저녁 챙겨 먹고 일을 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하루에 24시간을 살아간다.
나는 길에서 3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리고, 회사에서 12시간 이상 일했다.
단순히 계산해 보면 남는 시간은 9시간 이하...
그때는 내 인생에서 회사를 빼면 남는 게 없었다.
아침에 해가 뜨기 전에 나와서 저녁에 회사 창문에서 해가 지는 것을 봤고 깜깜해지면 집에 갔다.
생각해 보면 그땐 25살, 26살 내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나이였다. 그럼에도 평일에 취미 생활을 가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퇴근을 하면 집에 가서 바로 잠들기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 만지면서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거나 티비를 보는 데 시간을 조금 할애할 뿐이었다.
그 아주 조금의 시간을 빼고는 잠을 잤다.
오죽하면 겨울에는 저녁에 샤워하고 나서 미리 스타킹(검정색 기모 레깅스, 겨울 필수템)을 신고 잠을 잤다. 아침에는 스타킹을 신는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옷만 입고 그냥 바로 나가 버렸다.
화장은 서울 도착해서 버스 갈아타면 그때 했다. 그래서 나는 A사를 다니면서 반영구 화장에 눈을 떴다. (엄청난 TMI) 눈썹과 아이라인 반영구를 하니까 화장하는 게 훨씬 편해졌다. 막상 반영구를 했을 땐 짱구라고 놀림받는 시기가 있지만, 그 정도는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에 비하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놀림이었다.
나는 정말 건강한 타입의 인간인데, A사를 다니면서 3번 코피를 흘렸다. 코피의 농도가 얼마나 짙은 지 나는 코에서 케첩이 흘러나오는 줄 알았다.
살아있는 좀비와도 같았던 그때.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갈 게 만드는 그 당시의 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은 분명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