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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Mar 27. 2023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람, 웃게 하는 것도 사람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알고 보니 블랙기업? (5)


회사에서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사람 덕분에 웃었다.

나에게 시련을 안겨 준 회사였지만 결국엔 그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내가 사람들에게 만만이 콩떡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편한 상대라는 것이고,

더 솔직하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A사에서 흔히 말하는 일은 못해도 착한 사람 포지션을 맡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날카롭고 신경질인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오히려 나한테 만큼은 마음을 열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인지 근무하는 날들이 쌓여가면서 우리 팀 사람들 뿐 아니라 회사 사람들이 나를 참 좋아해 줬다. 나한테 느껴질 정도로.


입사 초창기에는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물론 무시당하는 건 계속되었지만 점점 나는 나라는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받아들여주고, 그 안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내가 외근을 나갈 때면 옆 팀에서 빨리 갔다 오라고 사무실이 나 없으면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다 같이 코코아를 마실 때에는 다들 물에 타먹는데, 몰래 나한테만 우유를 사다 주거나 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회사 전체 내에서 유명한 호랑이 같이 무서운 옆 팀 상사도 왜인지 나만은 예뻐해주기도 했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사람조차도 내가 퇴사할 쯔음에는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기도 했다. 물론 나에겐 굉장히 민폐였지만, 허세가 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나에게 약점을 보인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측은지심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매일 반복되는 힘든 회사 생활을 이어 나가면서, 아무리 지쳐도 직장동료와 퇴근하고 나서 허름한 통닭집에서 한잔 마시는 맥주의 맛이 끝내 준다거나, 멘탈이 바스스 부서질 정도로 상사에게 깨진 날에는 팀 선배와 같이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매운 양푼 갈비찜을 먹거나, 그런 게 다 좋았다.


마치 고등학교 때 야자하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으니까 고생스러우면서도 야자 할 때 친구들이랑 추억이 많이 생기는 것처럼. 딱 그런 느낌으로 같이 고생하는 동료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힘든 만큼 정이 쌓였다. 많은 신입 사원을 만났지만 나중에 들어온 착한 팀 후배 2명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지금도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온다. 정말 잘해주고 싶었는데, 먼저 회사 그만둘 때는 상사로부터 후배들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아련했다. 


같이 맥도날드 가서 점심 먹으면서 별거 아닌 거에도 웃고 떠들고, 야근하면서도 혼자가 아니라서 든든했고, 행사 있는 날에는 같이 나가서 또 으쌰으쌰 하고... 내가 퇴사하고도 계속 연락하는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근무기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는 신입 티도 조금씩 벗어가면서 그 당시에는 일도 너무 재밌었다. 언론 홍보를 담당하고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보도자료 작성한 것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거나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리면 엄청난 성취감이 있었다. 주나 월단위로 내가 담당하는 거래처에 보고를 하는데 성과가 좋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정말 기억에 남은 일 중 하나는 집에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는데 내가 작성한 보도자료의 내용이 그대로 설명으로 나와있던 일이었다. '뭔가 내용이 낯익은데?' 싶어 찬찬히 보니 내가 만든 내용이었고, 아마 웹툰 작가분이 해당 내용을 찾아보다가 내 보도자료가 기사화된 것을 설명에 참고한 듯했다. 그 누구도 몰라주겠지만 나만은 그 내용이 내가 작성한 것을 알았기에 기분이 묘했다. 짜릿했다. 


내가 하는 일이 눈앞에 쌓여있을 땐 숨이 막힐 정도로 버겁지만, 그게 대중들이랑 연결되어 있고 내가 한 일을 사람들이 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대단한 일의 숨은 조력자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보도자료 작성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되게 어려웠지만, 나중에 내가 쓴 보도자료가 수정 없이 한 번에 컨펌을 통과하거나 하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보도자료 하나 쓸 때 처음에 일주일이 걸렸을 정도였으므로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나에게 오버가 아니었다.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다. 그 당시에는 일에 떠밀려 감흥이 없었지만 각종 행사장이나 특이한 출장도 많이 다녔다. 아무리 횟수를 거듭해도 기자들을 접대하는 미팅에는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친절하고 보도자료 기사화 잘 내주시는 기자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았는지...


그렇다.


돌이켜보면 주변에는 늘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덧붙이기에는 별 건 아니지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빠도 점심시간에 틈날 때 혼자서 회사 근처의 공원을 산책했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속에 혼자서 공원을 걷고 있으면 잠시나마 회사가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도 참 소중했다. 


이 선명하게 행복했던 기억을 깡그리 어두운 색으로 물들 수 있는 A사의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왜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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