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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Mar 13. 2023

맹순이는 이지메의 표적이 되기 쉽다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알고 보니 블랙기업? (3)



과하게 들뜨고 이상하리만큼 신경질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맹순이였다. 

맹한 농도가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부당한 일로 혼이 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담당하던 거래처에 월간 보고 미팅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보고 자료를 작성했고, 협력팀과 보고 자료를 취합하기 위해 내 자료를 들고 협력팀 담당자 1대리를 찾아갔다.


그때 하필이면 1대리의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그는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운이 나쁘게도 다른 층에서 근무하는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1대리님~ 취합할 저희 팀 보고 자료 인쇄해 왔습니다."


내가 말을 건네자마자 하나 대리는 "너는 왜 지금 와?"라고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더니, 내가 들고 간 서류철을 받아서 책상에 하고 집어던져 버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고, 무서웠고, 멍 했다.


큰 소리가 나니 협력팀 모든 직원들이 나를 다 쳐다봤고, 그 상태로 나는 1대리 옆에 우두커니 서서 말 그대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쏟아지는 화에 단 한마디 반박도 안 하고 그냥 묵묵히 서있었더니 이야기 말미에 1대리는 나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자기 기분이 나아지고 나서 건네는 사과의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훗날 1대리라는 사람은 새로 입사한 직속 부하 직원이 2주를 못 버티고, 사무실 자리에 짐을 다 두고 그냥 도망가서는 바로 핸드폰 번호 바꾸고 잠수를 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인사팀에서 도망자를 욕하는 소리를 어깨너머 들었지만 1대리의 난폭한 성격을 당해본 나의 머릿속에는 ‘오죽했으면’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 당시 나보다 고작 몇 살 더 많았을 1대리도 상사나... 그의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소리를 지르고, 쉽게 화를 내고 그랬던 걸까. 돌이켜보면 A사라는 환경이 누구에게는 그런 것들이 쉽게 용인되는 분위기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당하는 날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회사 화장실에서 숨죽이고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말자' 그런 다짐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당황스러워서 놀라 버리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그 시절의 나는 참 맹순이였다.


A사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알았다고 수긍했고, 항상 바보처럼 웃었다.


모든 사람들이 맡은 업무가 많다 보니 각종 잡일은 다들 정말 하기 싫어했는데 나는 뭐든지 그냥 했다.

팀 막내였을 땐 막내라서, 그 이후에는 그냥 해야 되는 건가 보다 하는 마음이었다.


전화벨은 2번 울리기 전에 무조건 내가 받았고, 정수기 물통에 물이 다 떨어지면 사람들이 나를 불러, 내가 20리터짜리 생수통을 갈았다. 


거래처에서 선물로 들어온 케이크를 먹을 일이 있으면, 직원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도록 홀 케이크를 20 몇 조각으로 소분해서 한 사람 씩 나눠줬다.


야근하면서 야식을 시켜 먹을 때 전화 주문은 내 담당이었다. (그 시절에는 어플 주문이 없었다) 오죽하면 내가 음식 주문을 맛깔나게 잘한다고 다른 팀에서도 소문이 나서 점심시킬 때 나를 불러서 대신 전화 주문을 시키기도 했다. 






나열하고 보니 이게 회사 생활인지 이지메를 당했던 건지 헷갈리지만, 사실 나는 그게 힘들지 않았다. 내 성향이 그런 것 같다.


누군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날카로운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지. 그런 거에 비하면 잡일 도맡아서 하는 건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들 일을 하다 보면 싫어하면서도 어느 정도 회사 분위기나 상사 성격을 자신도 모르게 닮아 가는데, 나는 그냥 나로 있었다.


하지만 어리숙하고 맹한 내가 나로 있다는 건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A사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일하기에는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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