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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Apr 03. 2023

직장 거지배틀하면 지진 않을 회사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알고 보니 블랙기업? (6)


최근 온라인에서 직장 거지배틀을 하는 웃픈 글을 보았다. 누구네 직장에서는 이런 일도 있어요 라며 서로 자신의 직장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를 대결하는 글이었다.


탕비실에 있는 커피 믹스를 하나 먹을 때마다 이름 쓰고 먹는 회사, 탁상 달력 하나를 여러 명이서 나눠 쓰는 회사... 가지각색의 거지 같은 회사들의 사연들이 눈길을 끌었다.


가지각색의 거지 같은 회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의 첫 직장인 A사의 이야기를 풀어 보면 거지배틀에서 지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A사는 출근을 하면 첫 일과의 시작이 사무실 청소였다.


직원들이 청소를 하는 회사는 회사의 규모가 작은 곳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A사는 직급이 높으면 청소를 안 하거나 간단한 것만 하고, 직급이 낮을수록 쓰레기 분리수거, 층 별 청소기 밀기, 화장실 청소  등 힘든 일들을 하도록 청소 분담을 했다.


청소에 대해서는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하며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제대로 된 좋은 회사였다면 그런 건 없었겠다 싶은 마음은 든다.


또 회사의 가장 큰 문제였던 업무량 과다로 매일 같이 차고 넘치는 업무에 다들 박이 터지는데, 어느 날 회사에서 사내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한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어냈다. 


정확하게 동아리 활동을 강요당했다.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동아리 활동을 반드시 해서 참여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삼삼오오 동아리 활동을 했다. 자신만의 컵 만들기, 미용 배우기 등등 많은 동아리가 있었는데 동아리 활동과 관련한 비용은 사비로 지출해야 했다.


나는 처음에 무언가를 배우는 동아리 활동을 몇 번 하다가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까운 마음에 점심시간에는 어차피 밥을 먹어야 하니까 멋대로 식도락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친한 직원들과 모여서 밥을 먹고 그 내용을 보고서로 꾸며 작성해서 동아리 활동을 때우곤 했다. 직원들 중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즐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A사는 사내 동아리 활동을 복지라고 표현했다.






A사는 신입 사원들이 들어오면 한 달 정도는 모여서 춤연습을 해서 회식 장소에서 춤 공연을 펼쳐야 하는 전통이 있었다. 나 또한 입사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는 직원들과 모여 그 당시 인기가 많았던 걸그룹의 춤을 연습해서 고깃집에서 공연을 해야만 했었다. 


나중에 후배들이 들어왔을 때 야근하면서 잠깐씩 시간 내서 회의실에서 춤연습 하거나 주말에 모여서 춤연습하는 걸 보면서 미안해 죽는 줄 알았다. 회사의 악습을 내가 바꾸지 못하고 그저 대물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했다. 


업무 외에도 연말에 한 해동 안의 자신의 성과를 모든 직원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등의 보여주기식 일거리는 많았지만 그 정도에서 A사는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말에는 전 직원이 참여하는 마니또를 했다.

서로의 눈치가 보여서 자기 마니또에게 과자 같은 선물 공세를 해야 했고 마니또 발표도 하며 억지 친목을 만들었다.


평소 어느 팀이든 부하직원들에게 악을 지르는 게 일상화되었던 회사였기에 마음속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회사였던 만큼 마니또는 서로에게 굉장히 곤혹스러운 이벤트였는데, 그중에서도 모든 사람이 손꼽아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마니또 상대로 대표를 뽑은 사람이었다. 어느 회사나 대표라는 사람은 일단 부자고, 그런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렇게 직원들은 업무도 바쁜데 업무 외적으로 쓸데없는 일까지 힘을 쏟아야만 했다.


한 발 양보해서 일이 한가한 회사라면 어쩌면 내가 말한 것들을 사내 이벤트 정도로 즐겁다고 좋아하는 직원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즐겁자고 하는 이벤트를 위해 발생하는 비용이 모두 직원들의 적은 월급에서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회사의 직원들에게도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다.






독특한 조직문화라고 받아들이기에 A사의 조직문화는 고등학생들의 일진놀이나 대학생 때 과 생활하는 풍습을 회사에서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업무는 업무대로 밀려서 야근해 가면서 동아리 보고서 작성하고 있던 때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있을 때는 무언가를 바꾸어보려는 시도도 어려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이상의 잡무가 늘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정도였다. 게다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은 A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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