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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Jun 26. 2023

계약직의 서러움은 실제로 존재했다

 경력직이지만 신입 무기 계약직입니다 (7)

2013년에 방영된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는 일본의 <파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비정규직인 주인공 미스김이 정규직보다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설정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 미스김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수는 그 해의 연기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대형 마트의 기간제 비정규직을 해고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카트>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비정규직, 계약직을 소재로 한 영상들을 본 적이 있었지만 스스로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현실에 어느 정도 픽션을 가미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계약직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걸 인식은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이직할 직장을 알아볼 때 계약직이라는 사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계약직이라는 것이 그저 고용 형태가 다른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는 일이 똑같고 고용 형태가 다른 것이라면 그게 싫으면 정규직에 구직을 하면 되고, 계약직인 조건에도 자기 기준에 만족하면 회사를 다니면 되는 것이라는 안일한 사고였다. 






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나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계약직으로 입사를 했고 경험을 통해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은 그저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베이스로 두고 여러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홍보팀의 무기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입사 시 어떠한 고지가 없었음에도 계약직이기 때문에 회사 혹은  상사의 필요에 의해 사내 부서를 옮겨 다니며 근무했다. 내가 하는 일은 항상 다른 팀의 부족한 일손을 돕는 정도였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하루 업무가 끝이 났다. 당연히 매일 난이도 낮은 업무를 하며 스트레스가 없었지만 이 상태라면 몇 년이 지나도 나의 커리어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물경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나는 취업할 때 공고 내용과 다른 업무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회사에 정식으로 얘기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직속 상사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계약직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인터넷으로나마 알아보았는데 공고 내용과 다른 업무를 시키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에 회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홍보라는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 계약직이어도 상관없이 인하우스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디 가서 홍보 일 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들만 이어졌다.


계약직이니 이런 업무가 싫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끝나는 구조였다.

내가 선택한 게 계약직 고용이었으니 그에 대해 나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그에 더해 회사에서 정규직과 계약직에게 대우할 때에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각종 명절이 되면 정직원에게는 상여금과 건강식품이 선물로 나왔다. 물론 계약직은 상여금이 없었으며 선물도 준비되지 않았다. 명절에 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다들 손에 명절 선물 세트를 하나씩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며 내심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내가 겪은 첫 직장 A사의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었기에 B사를 다니면서 월급이나 상여, 그 외의 금전적인 부분과 관련해서는 크게 불만이 없었다. 그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말끝마다 누가 계약직이다, 누가 정규직이다라는 구분을 짓는 정규직들을 볼 때 이게 계약직의 서러움이구나 라는 건 확실히 느꼈다. 내가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의아했던 것은 정작 계약직 직원들 당사자들 조차 항상 '우린 계약직이니까'라는 말을 붙이는 게 일상이라는 것이었다. 


B사는 무기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10년 단위로 일을 해도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이제 고작 1년 넘게 계약직 근무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있는 찰나였으니 그런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근무를 했는지는 가늠이 안 간다. 그저 다른 팀 계약직들은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매주 임원이나 상사들과 밤을 새우며 술시중을 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이어지는 직속 상사인 홍보팀 과장의 듣기 싫은 말들에 나는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었다.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매번 달라지는 업무 내용도 회사에서의 차별도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였지만 역시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사람이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나는 매일 이런 종류의 말들을 매일 듣는다는 하소연을 한 적이 있는데 홍보팀 과장의 말을 녹음을 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녹음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녹음기를 틀어놓을 수도 없고, 갑자기 과장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잠시만요~" 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녹음을 할 수도 없었다.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홍보팀 과장이 쏟아내는 막말을 녹음하는 데에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사실 녹음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녹음한 걸로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매일같이 누군가를 흉보는 소리, 나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소리, 나는 관심도 없는 본인 가족들에 대한 하소연  등 과장의 말을 듣고 있는 게 너무 곤혹이었고 항상 과장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나는 정말 딱 한번, 참다 참다 회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못 참고 갑자기 소리 내서 운 적이 있었다. (정말 창피하게도 다 큰 어른이 엉엉 울었다) 그걸 본 다른 팀 사람들은 나에게 이유도 묻지 않고, 그냥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내 어깨를 다독여줘서 정말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생활을 1년 6개월 정도 하니 나는 '내가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날고 기는 사람도 취직이 어려운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다. 내가 B사에서 무기 계약직으로 근무할 때 동료에게 "이 맛에 헬조선 살지!"라는 말을 들으며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있다. 


헬조선. 

누구나 다 힘들겠지... 

나는 블랙회사도 경험해 봤고, 계약직의 서러움도 겪어봤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도 모른 채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커져갔다.

그러면서 점점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이 교차되며 나는 내 기준에서 그토록 만족스러웠던 B사를 퇴사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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