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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Jul 10. 2023

인생의 빌런이자 최고의 은인

경력직이지만 신입 무기 계약직입니다 (9)

B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첫 직장이었던 A사만큼의 업무가 과중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그로 인해 몸이 아프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사람이 말로 주는 상처를 그대로 떠안는 성격인 나에게 직속 상사인 홍보팀 과장에게 말로 받은 상처가 너무도 컸다.


홍보팀 과장은 수다쟁이였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는 시간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내 귀에 대고 쓰레기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마치 본인의 불행한 인생을 바이러스로 만들어 전파하는 전파자와도 같았다. 


고작 사람 한 명이 나를 힘들게 하고, 99명이 나를 응원해 줘도 괴로운 하루하루는 나아지지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을 무시하라거나 반격을 하라거나 했지만 미치광이의 언변은 내가 무시를 하건 반격을 하건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날이 갈수록 과장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을 나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말들을 넘기지 못하고 마음에 쌓아두는 스스로가 잘못된 거 같고, 듣기 싫은 말을 듣기 싫다고 강하게 의사 표현하지 못하는 게 내 탓 같았다.  


입사했을 때는 그렇게나 만족스럽게 다니던 직장이었는데 회사를 다닐 수록 점점 내 얼굴에는 웃음기를 잃어갔고 그때에 강하게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가 B사를 계속 다닌다면 홍보팀 과장이 퇴사할 일은 절대 없어 보였기에 나는 언제까지고 마음고생을 이어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생각하자니 A사를 탈출하고 고른 B사에서도 힘든 일은 있었고 또 다른 회사에서도 잘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나는 외국행을 결심했고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는다. 






최근에 이런 강연 내용을 온라인에서 본 적이 있다. 화분에 씨앗을 심었는데 꽃이 피지 않았을 때 씨앗을 탓하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강연이었다. 당연하게도 씨앗은 잘못이 없다. 그저 우리는 물을 충분히 주었는지 혹은 물을 과하게 주지는 않았는지, 햇볕이 잘 드는지 영양분을 어떻게 줘야 꽃이 필지 외부적인 요소를 고쳐나갈 뿐이다. 


우리 모두는 씨앗이다. 꽃이 피지 않는다면 외부 환경을 살펴야 할 일이지 씨앗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환경을 바꾸고자 했고 그렇게 일본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했다. 가족들과 친구들, 친한 회사 동료들이 너무 늦은 나이에 외국에 가는 것과 더불어 그 당시 (물론 지금도) 가장 큰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였던 방사능을 걱정하여 모두가 나의 일본행을 반대하고 나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에 변화가 없었다. 


워킹 홀리데이는 나이가 많으면 붙기 힘들다고 하던데 어떻게 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행사를 쓰지 않고 스스로 준비한 서류를 제출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비자 발급이 정해지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퇴사 준비를 시작했다. 






홍보팀 과장에게 일본에 간다고 말하며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들은 막말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에 간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말 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조금 있다)


그녀는 나에게 일본에 가는 순간 방사능을 먹고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와 함께 나이 먹고 어쩌려고 그러냐, 곧 서른인데 생각이 없다, 결혼은 안 할 거냐 여자는 B사 다니면서 결혼하고 애 키우는 게 최고다 등등 엄청난 오버 액션을 보여주며 내 인생이 앞으로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물론 홍보팀 과장 말대로 나는 외국행을 계기로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이별을 해야 했고, 앞서 말했듯 가족들과 친구들도 라이프 곡선을 생각해서 만류했으며 나 또한 걱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왜인지 마음이 너무나도 편안했고 진심으로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부모님은 나를 응원해 줬지만 나는 나 혼자 결정하고 해외로 가버리는 것이 죄송스러웠으며, 앞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할 강아지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오로지 나를 위해 내린 결정이었고 그렇게 29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떠난다.






B사 안에 있을 때는 그저 싫기만 한 마음에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홍보팀 과장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를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난과 시련을 주는 존재였던 그녀는 내 인생의 빌런이었다.


그러나 홍보팀 과장 덕분에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외국행을 선택하게 됐다. 나 같은 겁쟁이가 해외에서 거주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홍보팀 과장은 나의 은인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해외에서 정착해서 오랜 시간을 잘 지낼 수 있었고 내 인생에 큰 용기를 갖게 해줬다. 그녀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하지만 은혜는 갚지 않겠다. B사에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옆에 있으면서 그 쓰레기 같은 말들을 다 들어준 걸로 이미 그 은혜에 대한 값은 다 치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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