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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Jul 03. 2023

늦어버린 나의 '뭐 해 먹고살지?'

경력직이지만 신입 무기 계약직입니다 (8)

요즘 시대에는 퇴사가 비교적 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사회적 분위기이다. 오히려 이직을 잘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의 첫 번째 퇴사는 도망이었다. 


도망치는 사람의 목표는 도망이니까 그저 퇴사를 위해 앞뒤 재지 않고 퇴사부터 하고 봤다. 퇴사 후 계획도 짜지 않고 무턱대고 사표를 던지다니, 어찌 보면 한심할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두 번째는 달랐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골라 입사를 했으며 퇴사 또한 달랐다. 먼저 퇴사하고 생각해 보자는 마인드는 없어졌으며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앞으로 무슨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대체 모두들 자신이 선택할 직업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언제부터 명확하게 자신의 적성을 알게 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나는 그게 늦어버렸다. 학생 때 했으면 좋았을 직업에 대한 고민을 회사를 다니면서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항상 CA는 독서감상부를 선택했었고, 학교 끝나고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새마을 문고나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여러 가지로 알아보다가 작법 수업을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국비 지원을 통해 자격증을 따거나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가 있어서 큰돈을 들이지 않고 작법을 배울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항상 읽기만 하던 글을 작법 수업을 들으면서 직접 써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작법 수업을 통해 내가 글쓰기에 대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인 줄 뼈저리게 알았고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기에는 능력 부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 스스로 부족한 걸 알기에 지금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으로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과 항상 함께 근무할 수 있는 직업인 도서관 사서를 하고 사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도서관 사서에 대해 알아보며 직업으로 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문헌정보학 수업을 듣거나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점은행제를 신청할지 고민을 하다가 먼저 도서관 사서 무료 봉사활동에 지원해서 주말에 쉬는 날을 이용해 적은 부분이나마 사서 업무를 직접 경험해 봤다.


"도서관 봉사는 왜 하시는 거예요?"


보통 중고등학생이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선택하는 도서관 봉사활동을 다 큰 어른이 하고 있으니 사서분들께서 나에게 궁금증이 생기셨는지 말을 걸어왔다. 나는 사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사서라는 직업이 어떤지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가 만난 사서분들이 말하는 사서라는 직업은 단점밖에는 없었다. 우선은 현실적으로 월급이 적다는 점이 그랬고 주말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등 고초가 많은 모양이었다. 책을 좋아해서 사서가 됐지만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분도 계셨다. 


또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직업과 나의 상황을 듣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들을 많이 해주셨다.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 게 무조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뭘 해 먹고살지???

나의 고민은 거듭됐다. 그즈음 우연히 내 주변에 외국에 살다 온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항상 영국에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1년쯤 살면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평범하게 대한민국에서 자라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스스로 외국에서 거주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힘들었다. 나는 내가 뭘 해 먹고살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다른 회사에 가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나를 꾸미는 형용사가 흔히 출신 지역이나 대학교 이름, 다니는 직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했고 블랙 회사를 다니며 고생이나 했지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명함을 내밀 일은 없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간다면 어떨까? 외국에서 나는 그저 외국인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고생했던 것들을 상쇄시키고 새로운 직업으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취업. 겁도 많고 내성적인 내가 그렇게 해외 취업까지 생각을 넓히게 됐다. 


어디 가서 살지?

영어권 나라와 중국, 일본을 후보로 뒀다. 그중 일본은 거리상으로 가까워 자주 한국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또 나는 대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 한 경험이 있어서 JLPT N1은 이미 가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영어나 중국어는 일상생활을 하기에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일본을 선택하는 데에 한몫했다.






외국에서 산다고?

내가?


평생을 겁쟁이로 살아왔고 남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는 평범함 그 자체였던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외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그때 내 나이는 일본 워킹 홀리데이 비자받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28살이었다. 그래도 생각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고, 반대로 늦은 나이라면 나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 워킹 홀리데이 비자 발급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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