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이지만 신입 무기 계약직입니다 (6)
보통은 회사 각 팀에서 필요할 때마다 대체 인력으로 근무하는 일이 많았지만, 소속은 홍보팀 무기 계약직이었던 나의 직장 상사는 홍보팀 과장이었다. 홍보팀은 과장 1인 체제의 팀으로, 나의 전임자나 나처럼 무기 계약직으로 헬프를 하는 직원이 있는 작은 규모의 팀이었다.
평소처럼 다른 팀 업무 서포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업무를 하러 갔는데 타 팀 직원에게서 흥미로우면서도 내 입장에서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 거 아세요? 우리 회사에서 전 직원 대상으로 암암리에 설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우리 회사 싸이코 1위로 뽑힌 게 홍보팀 과장이래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아무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했겠냐만은 들어보니 직급을 단 직원들도 몇몇 참가할 정도로 꽤 대규모로 이루어진(?) 설문조사였던 것 같았다.
보통은 가장 많이 엮이고 함께 근무하는 자신의 직속상관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전 직원들이 손꼽을 정도의 싸이코라니 과장에게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처음에는 직속 상사라는 이유로 홍보팀 과장이 무슨 말을 해도 같은 팀 직원이 2명뿐인데 으쌰으쌰 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점차 시들어가게 됐다.
홍보팀 과장은 유명한 짠순이었다. 물론 과장은 자식이 3명이나 있는 집안의 워킹맘으로서 절약을 하는 건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하고 가정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옆 팀 과장은 종종 식사 후에 직원들에게 커피를 사거나, 먹을 걸 돌렸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해도 홍보팀 과장을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팀원인 나를 포함해 같은 사무실을 쓰는 직원들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홍보팀 과장은 자신의 방법으로 나를 챙겨줬다.
"아침 먹었어?" 홍보팀 과장은 나에게 다정하게 물으며 항상 유통 기한이 아주 오래 지난 해묵은 과자들이나 두유, 먹거리들을 건넸다. 일부러 집에서부터 챙겨 와서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감사했지만 솔직히 먹고 싶지 않아서 고맙다고 받아 들기만 하고 몰래 버리곤 했다. (먹어도 탈은 안 나겠지만...)
어느 날은 검정 봉다리에 콩고물이 잔뜩 묻은 맛있어 보이는 떡을 한 아름 가져왔다.
나에게 먹으라고 건네줬고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떡을 받아 들어 한입 베어 먹었는데 먹자마자 콩고물을 사방으로 뿜으며 콜록콜록 기침과 함께 떡을 뱉어버렸다.
떡은 말도 못 하게 쉬어있었다.
과장이 왜 그러냐고 물으며 손으로 봉지에서 떡 하나를 집어 태연하게 먹었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떡이 쉰 거 같아요."
"나는 배가 튼튼해서 쉰 거 잘 먹어~"
본인이 쉰 거 잘 먹으면 본인이나 먹지... 나는 황당한데 말은 안 나오고 말없이 입 주변에 묻은 콩고물을 정리했다. 나는 평소 비염으로 냄새를 잘 못 맡는 편인데도 그 떡은 쉰내가 풀풀 나고 도저히 씹어 넘길 수 없는 맛이었다.
그때 다른 직원이 이런 사정을 모르는지 내 쪽으로 왔다가 "어머 떡이다~" 하며 떡을 먹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그 직원의 손을 찰싹 쳐버렸다.
직원분도 나도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봤고 나는 곧바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떡이 좀 쉰 거 같아서 혹시 드실까 봐요.."
나에게 있어 그 떡은 무례하게 사람 손을 쳐낼 정도로 먹어서는 안 될 위험한 음식이라고 생각됐던 것이다.
홍보팀 과장은 호사가였기 때문에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참으로 관심이 많았다. 물론 가장 최측근으로 과장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나에게도 큰 관심을 가져 주었다.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했지?"
"대략 4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서류를 만들다 말고 말소리가 들리는 과장 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과장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히이익! (진짜 말소리를 냈다) 같은 경기도인데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어떻게 오는데?"
"역까지 버스 타고 가서, 지하철 타기만 하면 한 번에 올 수 있어요."
나는 평범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했는데 과장은 혀를 끌끌 차더니 갑자기 주거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역시... 사람들이 왜 역세권, 역세권 기를 쓰고 역세권에 살려고 하는지 너무 알겠다. 역 바로 앞에 집이어야 나와서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지. 그러면 시간도 절약되고 돈도 절약되고 얼마나 좋아. 나는 그래서 일부러 역 근처에 집 샀잖아. 근데 집이 자가는 맞지? 부모님 집인 거지? 아파트야 주택이야?"
...
나는 과장의 종알거리는 말소리를 듣다 듣다 할 말을 잃었다.
B사는 중소기업답게 사내 메신저로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었다. 업무 시간에도 퇴근 후에도, 연차를 써서 쉬는 날에도 홍보팀 과장에게 카카오톡으로 업무에 대한 연락이 오곤 했다.
카카오톡은 그 당시 멀티 프로필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홍보팀 과장은 가끔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관심을 표하며 말을 걸어오고는 했었다.
"음식 먹는 사진을 프사로 해놓다니 대단하다!"
"네?"
"00 씨는 남의눈을 신경 안 쓰는 편인가 봐. 살찌는 거 신경 안 써?"
"네??"
"아니 요즘 사람들은 포토샵으로 더 이쁘게 꾸미고 자신을 어필하려고 하는데 말이야. 00 씬 정말 특이해. 근데 수더분한 거 그거 안 좋은 거다? 알지? 우리 같은 홍보 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홍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네???"
영문을 몰라 말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내가 '네?' 소리만 하자 답답한지 홍보팀 과장은 직접 자신의 핸드폰으로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띄워 보여주며 말했다.
"프로필 사진 바꾼 거 말이야. 식당에서 음식 먹는 사진을 해놓는 게 너무 웃기잖아. 깔깔깔. 다시 보니 정말로 우습네."
그 당시 친구와 일본 여행을 다녀왔던 내가 일본 이자카야에 가서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놨는데 그걸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B사를 퇴사할 때까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없애고 아무런 사진도 프로필로 등록하지 않게 되었다.
출신 대학교 이야기도 많이 했다. 홍보팀 과장 본인은 서울에 있는 4년제를 나왔는데 나는 지방에 있는 4년제를 나온 것에 대한 이야기도 과장의 단골 잡담 주제였다. 본인은 훨씬 더 좋은 회사에 다닐 수 있는데 B사 대표님의 인품에 반해서 계속 다니는 거라며, 나도 여기서 오래오래 일을 하라는 것이 언제나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내가 점점 과장과의 대화가 버거워 날이 지날수록 과장이 무슨 말을 해도 멍한 표정으로 시원찮은 대답을 하자, 언젠가부터 과장의 수다 끝에는 항상 내 위치가 계약직이라 언제든 짜를 수 있으나 본인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성 멘트도 잊지 않았다.
홍보팀 과장의 이야기에 매일매일 귀가 썩을 것 같은 일상을 보내며 나는 그나마 다른 팀 서포트를 가는 일들이 많아 과장과 떨어져 업무 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됐다. 또 과장 외에는 좋은 동료들과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내가 다른 팀에 가서 과장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일 시작하고 정말 얼마 안 돼서부터 다른 팀에 갈 때마다 사람들에게 과장과 일하는 게 힘들지 않은 지, 너무 착하고 싹싹한데 너무 안 됐다, 나만 보면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지만 종종 힘들고, 종종 괜찮은 적당한 기분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가끔은 홍보팀 과장의 말에 상처받아 퇴근하고 몰래 눈물 흘리는 일도 있었지만, 회사 다니면 누구나 다들 그렇겠지 하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