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알고 보니 블랙기업? (8)
출근을 염원하는 순간이 있었다.
회사 생활을 푸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부러웠던 시기도 있었다.
취직만을 간절히 바라며 어렵게 입사한 나의 첫 직장은 블랙 회사였다.
블랙 회사를 다니면서도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고, 일에 대한 열정도 있었으며 시련이 있을 때마다 이걸 버티는 것이 승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A사는 직원들의 입사와 퇴사가 반복되는 게 일상이었고 근무 기간이 1년만 돼도 회사의 고참 선배가 되는 수준이었다. 팀을 막론하고 나와 같이 입사했던 직원들은 물론 나보다 먼저 입사했던 사람들도, 나보다 나중에 입사한 사람들도 모두 퇴사를 해 버렸다.
나는 믿고 일하는 선배 한 명과 단 두 명이서 팀 일을 다 쳐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때가 코피 터져가며 일하던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팀장이라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원래 다섯 명이서 하던 일을 두 명이서 처리하고 있었다. 밀려드는 일을 처리해 나가면서 우리는 다시 신입도 뽑고, 그 신입들도 나가고, 다시 신입이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한 해가 마무리 되어 갔다.
A사에는 각 팀에 할당된 한 해의 목표 매출액이 있고, 이를 달성하는 좋은 성과를 낸 팀에게 연말에 보너스로 10만 원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우리 팀은 두 명이서 다섯 명이 일할 양을 쳐냈으니까 당연히 연말 보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팀 매출도 굉장히 좋았고, 팀장도 대표랑 얘기했는데 우리가 받는 거라는 이야기를 팀원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었기 때문이다.
10만 원, 보너스라고 하기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대단한 금액도 아닌데, 그때는 한 해 동안 고생한 것들이 가슴에 남아 있었기에 그 보상으로 연말에 보너스를 받는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드디어 연말 종무식.
연말 보너스를 받는 팀을 발표하는 순간.
난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나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해의 우수팀으로 발표된 건 다른 팀이었다.
'이건 아니지 않나...?'
우수팀 직원들이 울면서 상금을 받아가고 소감을 말하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내 눈에 비쳤고, 나는 누군가에게 망치로 내 뒤통수를 쎄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화가 났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용량을 넘치게 화가 나면, 눈물도 안 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처럼, 종무식 행사는 계속 이어지는데 내 귀에는 나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멍한 기분이 들었다.
돈을 못 받아서가 아니다.
우수팀도 열심히 일했으니까 눈물을 흘릴 정도겠지, 우리 팀이나 다른 팀이나 일 많은 건 매 한 가지이니까 싶으면서도, 두 명이서 박 터져가며 매일 그렇게 일을 했는데 회사는 인정을 반의 반도 안 해준다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밤늦게 끝나는 업무 시간,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날아오는 모욕적인 말들, 열심히 만들어도 쉽게 내던져지는 서류들, 나에게 쉽게 언성을 높이는 회사 사람들,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나가서는 클라이언트나 기자들에게 당하는 갑질들, 일을 해도 늘 가난한 지갑 사정, 그걸 모두 포함한 스트레스들...
많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회사를 떠난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내 손을 붙잡으며 여기는 진짜 아니라고,
여기서 버티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같이 나가자고 이야기를 무수히 들어도 묵묵히 회사를 다니고 맡은 일을 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버티는 것인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연말 종무식이 끝나고, 마신 소주가 참 달았다. 인생의 쓴 맛을 보고 나니 소주는 설탕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 집에 가는 길에 빨간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나는 나에게 취업이라는 고마운 기회를 준 A사를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