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알고 보니 블랙기업? (9)
내가 A사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 엄마한테서 지인의 아들이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근길에 몸이 안 좋아 쉬어 가려고 잠시 벤치에 앉았다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과로사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구나...’
당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과로사는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2017~2021년의 과로사 노동자가 모두 2,503명이라는 집계도 있고, 산재사고 사망자의 60%가 과로사라는 추정도 있다고 한다.
씁쓸한 현실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보다 먼저 퇴사하는 이들로부터 회사 출근길에 차에 치여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면, 회사 생활을 이어가기 힘든 것이니 퇴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해봤다는 말도 함께 전하며 먼저 퇴사를 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나는 또 충격을 받았다. 먼저 퇴사하는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듣기 훨씬 전부터 이미 매일 아침마다 출근길에 차에 치이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차에 치여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면 당장 제출해야 하는 데이터 관리는 어떻게 될까, 내가 담당하는 거래처 미팅은 하긴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만약 모든 걸 놓아버리게 된다면 편해지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간 나에게도 다가올 예정된 퇴사였다.
퇴사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은 눈치 싸움이었다.
언제 누가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회사였기에 같은 팀에서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사람들이 매 순간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팀원들에게 나의 퇴사 사실을 알렸다. 팀원들은 나와 함께 일하지 못하는 사실에 아쉬워하면서도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맡아왔던 일이 본인들에게 넘어오는 것을 걱정했다. 남아있는 이들 중 먼저 퇴사를 한다는 미안함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고 나서는 나의 직속 상사인 과장에게 나의 퇴사 사실을 알려야 했다.
언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며칠을 끙끙 앓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서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언제든지 괜찮으실 때 혹시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너 그만두니?"
과장은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항상 아무 군소리 없었던 내가 그만둔다는 것에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탕비실로 불렀다.
"왜 그만두는데?"
나는 미리 퇴사 사유를 준비했다.
나는 절대 내가 이 미친 인간들과 돌아버린 회사 때문에 그만둔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비겁했지만 아주 작은 분란이라도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원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그저 하루라도 빨리 퇴사 처리가 되어 조용히 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이상적인 퇴사 사유라고 손꼽히는 자아실현을 내세워 퇴사의 이유를 지어냈다. 원래부터 좋아하던 제과 제빵일을 본격적으로 배워서 자격증도 따고 그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 거짓말이다.)
과장은 실소를 지으며 한심한 표정으로 "너 나이가 몇인데 지금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니?" (내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해 "우리가 그때 사람 급해서 그 스펙에 니가 우리 회사 같은 곳을 다닐 수 있던 거지, 너 다른 데 가려고 마음먹으면 이렇게 큰 회사 못 들어와" 와 같은 막말을 앉은자리에서 쏟아냈다.
그리고는 일주일간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시 생각해 볼 마음은 없었다. 그저 맡은 일을 하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두 번째 면담 때 과장은 이미 내 퇴사를 받아들인 상태였던 것 같다. 별로 말도 길게 하지 않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서 퇴사 의사를 전했다.
넌 배신자야
과장은 내가 배신자라고 말했다. 과장에게 퇴사는 회사를 배신하고 동료들과 상사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퇴사하는 날이 오기만을 바랐다.
회사를 퇴사한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나는 퇴사 의사를 전한 이후로 한 달 정도 회사를 다녔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야근을 했고, 일은 끝날 기미가 안보였지만 조금씩 팀원들에게 인수인계를 해 나갔다. 한번 퇴근할 때마다 데스크에 있는 내 물건들을 하나씩 집에 가져갔다.
조금씩 비워지는 책상을 보며 속이 후련했다. 섭섭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퇴사하는 날이 왔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하루 종일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인사 직원이 나를 각 팀 별로 데리고 다니면서 퇴사 인사를 시켰는데 내가 밝은 모습을 보이자 "웃지 마세요, 사람들이 안 좋게 봐요"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데 그 말을 들어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퇴사합니다 !
나는 퇴사하는 날 직전까지 내가 뇌종양인 줄 알았다.(정말이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두통이 너무 심해 머리가 깨질 것 같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A사를 출근하지 않은 다음날, 나는 그렇게 건강할 수가 없었다. 두통은커녕 머리가 맑고 지난날들의 스트레스가 몸속에서 다 녹아버린 기분이었다.
내 치료약은 퇴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