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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코알라 Jan 03. 2023

컵라면을 처음 먹은 10살 아이가 울고 싶었던 이유

나의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친구들이 같이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 먹자는데 그래도 돼?"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하교 후 친구들과 자주 가던 떡볶이집에서 간식을 먹고 학원에 가기로 한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친구들이 떡볶이 말고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 먹자는데 그래도 돼? 안 되겠지?"

나에게 안 되겠지?라고 묻는 아이의 말에는 허락해달라는 속마음이 가득 담겨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순간, 10살 아이가 컵라면을 친구들과 처음 같이 먹어보는 것이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은 생각에 흔쾌히 허락했다.

"당연히 되지~ 컵라면을 친구들하고 처음 같이 먹으면 너무 신날 거 같은데?"


나의 말에 아이는 신이 나서 쩌렁쩌렁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너무 고마워!"



컵라면을 처음 먹어 본 아이는 물 붓는 선을 몰랐기에

컵라면 가득 물을 붓고 뚜껑은 아예 떼어내 버린~ 그것은 "짜장라면"이였다.




아이와 전화를 끊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고르며 잔뜩 상기되었을

아이의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아이에게서 온 메시지가 울렸다.

순간, 뭔가 곤란해졌구나 하는 엄마로서의 촉, 그 느낌이 왔다.


아이가 친구들과 있을 때 전화가 아닌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친구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이다.


역시 내 예상은 맞았다.

컵라면을 처음 먹어 본 아이는 물 붓는 선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컵라면 가득 물을 부었고

거기에 컵라면 뚜껑은 아예 떼어내 버린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귀여운 장면 푸훗>

여기서 아이가 고른 라면이 "짜장라면"이였다는 사실이 그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실 나에게는 웃음을 더하는 포인트였지만ㅎㅎ>


옆에서 아이를 보던 친구들이 하나 둘 뚜껑을 떼면 어떡하냐고, 물은 왜 이렇게 많이 부었냐고

너 혹시 컵라면 처음 먹어보냐고 걱정 반 놀람 반으로 보태는 이야기에 아이는 얼굴이 울상이 되었을 것이다.


잠시 후 아이에게서 온 메시지, "울고 싶다"

괜찮아, 처음이라 몰라서 그런 거니까~~



"나 컵라면 처음 먹어서 방법을 몰라서 잘못했는데 울고 싶다"

아이가 보낸 메시지에 난 답장을 보냈다.

"괜찮아 처음이라 몰라서 그런 거니까"


순간, 아 내가 왜 컵라면을 처음 먹는 아이에게 컵라면은 물 붓는 선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가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아이가 경험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실수의 경험을 막을 뻔했구나

짜장라면에 물을 가득 부은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경험은 치를 만한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며

오늘 또 한 번 성장했을 아이가 기특하게 여겨졌다.





"인정"받는 것에 익숙한 아이

친구들 앞에서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웠을 아이




아이가 정말 울고 싶었던 이유를 안다.

"인정"받는 것에 익숙한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웠을  아이이다.


무엇이든 먼저 하고 잘 해내는 편인 아이가 가진 그 적당한 우월감은 아이의 동력이다.

처음 컵라면을 먹어보는 아이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

혼자 물을 가득 붓고 뚜껑을 떼어내 버린 것은 늘 그래왔듯 먼저 알아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자신의 실수를 알고 얘기했을 때

아이는 친구들에게 "나 사실 컵라면 처음 먹어봐서 몰랐어"라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 순간 엄마에게서 듣고 싶었을 말을 해주었다.

"괜찮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친구들한테 처음이라 몰랐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도 멋진 용기야"



엄마말대로 처음이니까 실수할 수 있는 건데!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홀가분해졌어~




나를 만난 아이가 아까의 '컵라면'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처럼 아이는 능숙하게 컵라면을 고르는 아이들 틈에서 혼자 처음 먹어보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필 물을 적게 부어야 하는 짜장라면이라서 더욱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는 말까지.


엄마와 통화를 하고 마음이 좀 나아져서 친구들에게 사실 컵라면 처음 먹어봐서 몰랐다고 얘기를 했는데

친구들이 "물어봤으면 내가 도와줬을 텐데"라고 말해줘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을 건네며

이어지는 말에서 아이의 또 한 뼘의 성장을 느꼈다

"엄마말대로 처음이니까 실수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잘하는 것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게 어려웠어

근데,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홀가분해졌어"


그제야 난 궁금했던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래서 물을 가득 붓고 뚜껑을 떼어버린 짜장라면 맛은 어땠어?"

"음... 먹을 만은 했어" 푸훗





10살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겨울 어느 날,

학교 앞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처음 먹어본 "짜장라면" 컵라면의 맛을 아이는 잊지 못할 것이다.

실수의 경험을 인정하는 것은 마음이 후련해진다는 것까지 알아가며

그렇게 나의 아이는 또 한 뼘의 성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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