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딸 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에서는 일주일에 2번씩 단어시험을 본다.
일주일에 2번 한 회당 10개씩 보는 단어 시험은
아이에게 적지않은 부담으로 화,목일마다 돌아오는 반갑지 않은 미션이다.
그 날도 영어 학원을 가는 날이었다. 방학중이기에 학원에 가기 전 여유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쫑알쫑알 엄마와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의 수다는 그칠 줄을 몰랐고
단어를 외워야한다는 말만 할 뿐 단어장을 한번 보지도 않는 아이에게 단어를 좀 외우고 가야하지 않겠냐고
몇차례 말했지만 대답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학원에 간 아이는 수업이 끝나고 메세지를 보내왔다.
"엄마 미안 나 단어시험 최저기록 했어"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되"
답장을 보내주면서도 내면에서 울리는 나의 속마음은 노력하지 않은 과정에 대해 훈육하고 싶었기에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못 본건 괜찮은데 공부를 하지도 않고 못본 건 위로해주기 어려운 일이야" 라는 말은 마음속에 잠시 넣어두었다.
"엄마 나 단어시험 1개 맞았어. 지금까지 공부를 안했어도 이렇게 많이 틀린 적은 없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야"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잔뜩 상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넣어 둔 말이 튀어나오려는걸 다시 한번 꾹 눌러두었다. 이미 스스로 불편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고 다음엔 미리 공부해서 잘보겠다는 말을 먼저 건네는 아이에게 나까지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말
"엄마 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콤한게 먹고싶은데 오늘 저녁 메뉴는 매콤한 걸로 먹으면 안될까?"
아 이와중에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지나치게 당당한 아이의 신선한 발상에 실소가 터졌다.
스트레스는 니가 아니라 엄마도 받았다는 말은 한번 더 접어두고 원래 저녁 메뉴였던 스테이크에서 떡볶이로 급 변경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김말이튀김과 반숙계란까지 후다닥 했다.
아이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난 아이는 역시 스트레스 받을 땐 매콤한게 제일인 것 같다며
이내 기분이 좋아졌고 평소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는 유쾌한 아이로 돌아왔다.
사실 속에서 올라오고 싶었던 말을 몇 차례나 눌러둔 터라 나의 마음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유쾌해진 아이를 보며 오늘 내 마음은 잠시 넣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아이는 내게 '최고의 어머니상'을 내밀었다.
[위 어머니는 항상 가족들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친절을 주셨기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상장을 드립니다]
이 상장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따끔한 훈육보다 따뜻한 말한마디가 더 필요했을 아이에게 오늘 나의 위로와 공감이 온전히 닿았다는게 느껴지며 엄마는 속에 넣어두었지만 아이는 이미 엄마가 넣어둔 말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단어시험 최저기록을 한 날로 기억될 뻔한 그 날은 이렇게 서로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 받은 날로 따스하게 남았다.
몇일 전 아이가 국어 학습지에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를 써놓았던 문구가 함께 떠올랐다.
[나에게 가족이란 서로 이해해주고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내가 속상하면 위로와 격려로 나를 격려해 주는 존재이다]
그 다음 단어 시험을 보는 날이 돌아왔다.
아이는 지난 시험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는지 스스로 단어 시험을 공부했고
그 날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당당하게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은 10개 다 맞았어. 역시 공부하면 되는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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