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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코알라 Aug 01. 2023

슬기로운 여름방학을 위한 창과 방패의 계획표

 엄마의 초등학생아이의 심리전

초등아이의 여름방학은 시작되고



초등학교 4학년, 11살 딸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파워 계획형인 엄마와 계획형+즉흥적 성향이 골고루 섞여있는 아이.

계획형 엄마의 육아방식 안에서 아이는 그렇게 즉흥적 성향 안에서도 

계획을 세워놓고 마음 편히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남은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겨울방학에 비하면 3주 남짓되는 여름방학은 금세 지나가 버릴 듯 하지만

그동안 규칙적으로 지내왔던 일상이 한 번에 무너지기도 쉬운 방학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계. 획. 표.



"이번 여름방학 계획표 짜볼까?"

아이가 기분 좋게 계획표를 짜고 실천할 수 있도록 엄마가 준비한 당근은?



"이번 여름방학 계획표 짜볼까?" 방학을 맞이한 아이에게 말을 건네자

아이는 말로 방학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우리 이야기로 하지 말고 계획표니까 글로 쓰면서 작성해 보는 게 어떨까?"

나의 말에 작은 메모지를 가져와서 적고 있는 아이

"우리 보기 쉽고 눈에 띄게 큰 종이에 적어볼까?" 엄마의 몇 차례 제안이 이어지자

계획표를 짜기도 전에 벌써 아이의 찡그린 얼굴이 엿보인다.



일단 모른척하고 아이에게 신나게 방학계획표를 요일별로 짜보자며 흥을 돋구어본다.

아이에게는 무려 '방학'인데, 학교를 안 가고 신나게 놀 수 있는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요일별로 학습계획을 세워보자는 엄마의 말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별히 '당근'을 준비했다.

엄마가 준비한 당근은 바로 일일 계획목표를 달성하면 영상과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

11살 아이는 영상과 게임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엄마에게 불평을 본격적으로 토로하기 시작했었고

흔한 얘기로 친구들은 다 한다는데 나만 못한다는 말로 불평에 힘을 싣고 있었다.

방학을 맞이한 아이에게는 더없이 일상에서 맘껏 하지 못했던 제한된 영역을 깨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창과 방패의 치열한 고도의 심리전이 시작되고



아이에게 일일목표를 달성하면 영상과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겠다는 당근을

그냥 줄리 없는 엄마다. 



처음엔 학교숙제는 없으니 평소대로 학원숙제만 하겠다는 아이에게

엄마는 학교에 갈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하나씩 충분히 더 할 수 있다고 제안해 본다.

그렇게 1학기에 사놓고 하지 못한 학습지를 과목별로 푸는 것을 추가했을 때까지는

아이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선생님께서 방학 추천도서목록을 나눠주신 종이를 가지고 와서

하루에 한 권씩 추천도서를 읽는 것까지 포함하자 아이의 얼굴이 굳. 어. 진. 다.

아이는 선생님께서 추천도서목록을 나눠주시면서 읽으면 좋지만 못 읽어도 괜찮다고

확인하지 않는다고 하셨다는 말로 나름의 주장에 논리를 더해본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효과가 없을 것 같아 그럼 추천도서를 읽으면

영상시간을 10분 추가해 주는 건 어떠냐는 새로운 제안을 하자 금세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훗~ 넘. 어. 왔. 구. 나 

이내 좋다며 흔쾌히 수락한 아이는 기분 좋게 계획표에 써 내려간다.



짜증 부리면 더 이상 협의를 할 수가 없다는 나의 말에

양목소리로 혼자 마음을 달래고 오겠다는 아이




강아지와 하루에 20분씩 산책하는 것을 추가로 제안하자 그건 꼭 계획표에 쓰지 않고

시간이 될 때마다 해보겠다는 아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한건 아이였지만 실제 강아지 산책을 전담하는 것은 엄마, 아빠가 돼버렸기에 

이번 방학을 계기로 아이에게도 시간을 공동의 책임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나씩 추가되자 방학인데 학원숙제도 많은데 거기에 학습지에 일일 추천도서에 강아지 산책까지

아이에게 무언가 억울한 감정이 밀려오는 표정의 변화가 읽혔다.

그 안에는 다른 아이들은 쉽게 보는 영상과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은 게임이 난 왜 이렇게

어렵지 하는 푸념도 더해졌을 거다.



이내 아이는 찡그린 얼굴이 되어 짜증이 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고

난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지금 계획표를 짜고 있고,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짜증 내지 않고

분명하게 너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협의를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어"



아이는 복잡한 얼굴이 되어 짜증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심하게 떨리는 양목소리가 되어 말한다

"네 엄마, 잠깐만 방에 가서 마음을 달래고 와볼게요"



아  순간 그 모습과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 

아이는 그렇게 방에 들어가서 잠시 후 정말 혼자 마음을 달래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계획표 짜기를 이어갔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치열했고 

아이는 생각보다 논리적이었으며 그렇게 고도의 심리전이 오고 갔다.

그렇게 극적인 타협으로 만들어진 여름방학의 계획표는 완성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일일계획을 완료하면 얻을 수 있는 달콤한 당근의 시간을 위해 열심히 계획을 지켜나가고 있다.

영상과 게임을 최대한 늦게 노출시키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만으로 무조건 막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허용은 하지만 일정한 규칙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그래야 아이도 무조건 조른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조절하고 결과에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학계획표를 지켜가고 있는 슬기로운 방학생활





엄마~ 나 오늘은 일일과제가 뭐지?

방학에 꿀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가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오늘의 계획을 확인하는

재미있고 슬기로운 방학생활의 풍경이다. 훗.





#육아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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