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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Sep 17. 2019

적당한 인간에서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빨간불에는 기다리고 초록불에는 건너자

나는 나를 지금까지 제법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살면서 누구에게 큰 피해를 준 적도 없고 범죄를 저질러 본적은 더더욱 없었으며 남들 다 하는 소소한 일탈 몇 번에, 그냥 적당히 남들 다 넘는 선 정도 넘어가며 살아가는 '적당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름 스스로에게 정해진 엄격한 철칙 같은 것은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횡단보도에서는 꼭 초록불에 건너자'라는 아주 기본적이며 너무나도 당연한 철칙이었다. 어렸을 때 본 책에서 신호등이 고장 나도 묵묵히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독일인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그런 융통성 없는 모습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더 올려주며 더 잘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아주 단순한 적용점을 찾아낸 것이 그 시작이었다. 남들이 빨간 불일 때 묵묵히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정말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우스운 착각을 하며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 얄팍한 철칙은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 유난히 일이 힘든 날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처럼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늘 마주하던 횡단보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주 짧은 횡단보도였지만 그 날 따라 초록불로 바뀌는 대기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몸은 지치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게 들었다. 느리게 가는 시간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옆에 있던 사람들과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이 빨간불을 무시한 채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온 이 철칙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차들도 다니지 않았고 어느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들도 없었기에 어쩌면 그들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하며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철칙을 이렇게 쉽고 어이없게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기엔 이미 내 몸은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였고 더 이상 내게는 이 알량한 자존심을 지킬 체력조차 남아있지 않았었다. 결국 나는 그동안 굳건히 지켜왔던 내 철칙을 단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버려 버렸다. 마치 사탕 몇 개와 담배 몇 개비에 자신들의 신념을 버린 채 공산주의자가 된 미군의 심정이 비로소 이해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 누구도 내 행동에 대해 따지거나 도의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 해보니까 별거 아니네? 다음에도 그냥 건널까?'라고 드는 생각이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새벽에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도 묵묵히 신호를 지키시던 분이었다. 빨리 가자는 나의 재촉에 아버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며 그제야 신호를 무시한 채 차를 움직이셨다. 만약 아버지가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어땠을까, 나와 같이 자책감에 괴로워했을까, 아니면 다음번에도 망설임 없이 신호를 무시했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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