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현 May 17. 2023

듣고 싶은 말

낯설은 삼월의 밤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여느 날처럼 오늘도 피곤한 정도와는 상관없이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부쩍 우울해진 나를 토닥이려고 재미있는 걸 보고 귀여운 걸로 위로해보고 듣기 좋은 걸 아무리 들어도 눈물만 차오르는 건 내가 많이 약해진 탓이리라.


 이럴 땐 꼭 쉽게 스스로를 달랠 수 있던 방법들이 모두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큰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어도 나도 모르게 숨을 짧게 토하면서 마치 이 공간에 공기가 사라져가는 듯 답답해진다. 느린 템포의 잔잔한 노래로 달래보지만 이미 내 안에서는 한계를 정해논 것 같았다. 이건 정말 터뜨려야 한다고 속에서부터 경고하는 것이다.


 딴짓도 서성거림도 바쁨도 소용없는 이 순간은 왜 그렇게 감정이 무거워지는지 아직 극복해야 할 게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나름 다사다난한 인생에서 굴곡지고 깊게 내려가 본 인생이었는데, 이럴 때면 참 나 자신이 어리게만 느껴진다. 고민하고 뱉은 말도 귀에 맴돌면서 왜 더 현명하지 못했는지 후회하고 자책하면서도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소심과 예민함은 그들의 자유와 편안함을 위해서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게 위선적이라면 난 차라리 편함을 버렸어야 했다. 스스로를 속여가며 사회에서 모두가 편할 수 있는 가면으로 지내는 게 나을지도. 



 이 밤, 잠을 불러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선택한 한 수면 유도 영상을 틀어보니 댓글에 위안의 말이 써져 있다. 이제는 머리보다 앞서는 눈물에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3월 3일이네. 예전 어느 3월 30일에는 내 인생에 큰 결정을 하고 내 심장을 한 번 포기했었는데. 오늘도 긴급하게 잠시 포기해볼까.


 위안의 댓글에서는 내일의 나를 믿는 누군가가 걱정 말라고 했는데 그게 참 고마웠다. 나를 의심하진 않는다. 열심히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잘해보려는 마음도 확인했다. 다만 그런 내가 너무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나의 진심을 나도 모른 채 하려고 하는 거에. 그렇게 별것 아니라며 아무렇지 않게 잘 해내 보자 하는 나에게 실망했던 것 같다. 



 감정은 지나가는 구름일 뿐, 하늘은 그대로 파란색이고 별은 떠 있다는 거. 듣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고 나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구름을 자꾸 몰라주면 이렇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질 수도 있구나. 그 구름이 커져가는 걸 모르는 체하면 장마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럼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겠구나.



 서른일곱 살의 나는 아직도 한참 어리고 약하고 미숙하다. 언제쯤 내가 원하는 현명하고 밝은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난 눈을 감고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는 영상을 틀어놓으면 행복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가 갑자기 '사랑해'라고 속으로 해버렸다. 그러고 또 울어버렸다.


 나를 너무 오랫동안 내가 사랑한다고 헤아려주지 못했구나.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