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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현 Jun 27. 2023

포옹

혼자가 아니야



  요즘 글을 못 쓰고 있다.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러는지 마음에 무겁고 검은 돌 하나가 또 얹혔다. 매일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 이상 하는 것 같은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건 마음속 다른 큰 돌이 너무 무거워서 들어낼 걱정만 하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서.



 모처럼 나 혼자 이 작은 공간에서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잠시지만 이런 안전한 시간을 좋아하는 나는 인기척으로 켜놨던 불을 끄고 마음을 가라앉힐 노래를 틀어놓고는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든 움직여보려는 노력을 다시 이어갔다. 참 하잘 것 없는 노력.. 그런데 자꾸 가사가 귀에 들어와 눈으로 읽어가던 게 진행이 되지 않았다. 이 순간에도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는데, 글을 쓰는 것도 무거워 달그락거리는지라 옆으로 치워놓고 브런치를 켰다.


 제목은 포옹. 아무 생각 없이 노래의 제목을 쓰고 부제를 썼다가 지웠다. 혼자 이런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적당히 어둡고 작은 공간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글을 쓰려고 했다가 흘러들어오는 노래 가사들은 나를 자꾸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는 말을 건네면 그게 더 위안을 주는 것 같아서 부제를 다시 썼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언제나 항상 불안함과 걱정이 날 쫓아온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서 행복을 느끼는 내가 있다. 너무 자주 행복을 느낄 때면 또 그걸로 자책을 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역할과 일과 또 이 시기에 해야 하는, 나중에 후회를 안 하고 남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들이 산더미인데 가만히 안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시간의 틈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관찰하고 아름다워하는 나를 매우 사랑하지만, 이따금씩 자책 안에 멈추게 되면 그리 괴로울 수가 없어서 이제는 행복을 느끼는 나에게 이건 사치인가 느껴질 정도.


 예전엔 자주 그랬다. 아니, 속으로 되뇌이면서 삶을 앞으로 밀어붙였던 적이 있다. 그렇게 대단한 걸 해내면서 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는 있어서 여기에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기에 충분히 효과는 있었다. 행복보다는 모든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다 버리고 싶었다. 느끼지 않으면 게임 속 캐릭터처럼 계획대로 안 돼도 실망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나에게 감정은 사치야, 느끼지 말고 나아가.]


 지금도 약간 그런 타이밍이 왔다. 지난주에는 감정의 울렁임이 너무 커서 내가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목적지 없이 긴 시간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내가 감당하고 이루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근원지가 다른 여러 파도가 한 곳으로 몰려오는 느낌. 온전히 잘 받아내고 소화해야 하는데 잘못해서 놓치는 순간 다른 근원지에서 오던 파도에게 힘을 실어주어 서로가 다 커져 버리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게 내 마음속 돌덩어리들로 자리 잡았다. 왜 그랬을까.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그들의 상호작용을 못 본 척 한 채로 꾸역꾸역 조금씩 방파제를 만들고 있다. 이것 역시 효과는 있다. 머얼리 돌아서 내 뒤를 톡톡 치며 알려주는 성과물은 그것 역시 내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는 대답. 그럼 난 왜 나를 자꾸 과소평가하게 되는 걸까. 



 나 스스로 나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다. 틈바구니에서 보이는 작은 행복에 주저앉아 쉬고 싶은 나는 핑계일 테니까. 이런 생각의 연쇄는 돌고 돌아 적당히 할 줄 모르고 내 발목만 연신 끌어내린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잖아. 미래에 후회하고 부끄러워할 거야?]


 나아가지 못하는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로 번지고, 포기하고 싶은 나로 커져서 다 싫은 나로 막다르게 되는데, 그러면 뭐 하나. 바뀌는 건 없으니까 손에 쥔 걸 남이 털어주기 전까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정말 의미 없는 시간 싸움이네, 이거.


 이렇게 혼자인 공간에서 아무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이것조차 행복으로 느끼는 나는 정말 쉬운 사람인 것 같다. 자책도 포기도 남들이 듣기 거북해하는 그 모든 단어들이 쉬운 나는 행복도 쉬워서 잘 살아있다. 어이없지만 참 밸런스 좋다. 그렇게 한 곡 반복해 놓은 노래를 배경 삼아 성찰의 글을 써 내리고 보니, 이 노래 가사와 선율에 감사하다. 마치 나를 들여다본 듯한 가사에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자책하고 감격했던 그 모든 감정들이 이제야 발아해 터지는 듯하다. 이것도 탓이라면 쓴 말도 달게 들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이런 내가 너무 좋아서 지금 이 세상이 좋다.


 [발아한 감정들이 잘 자라나면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면 우리 모두가 행복을 느낄 테니 나도 행복할 거야.]


 한껏 부푼 내 마음이 무겁던 돌들을 떠오르게 해 먼지를 털어준다.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자책들이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싹 틔운다. 안되면 뭐, 다른 기회가 생기겠지!






 고마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줘서 혼자여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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