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현 Jul 18. 2023

하루의 끝

한숨

  최근 오락가락하는 감정과 상담의 여파로 저 안에 있던 기억 속 먼지가 털어지면서 글이 쓰여지는 듯 하다. 소재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과 연습이리라 생각하고 숨겨둔 이 글을 올린다.






  몇 년이 지났을까.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중간중간 잘 쉰 것 같으면서도 하루하루 버겁게 견뎌온 것도 같다. 



 아주 오랜만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다. 뭐, 내가 한 선택이니 당연히 겪어야 하기도 했고,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누구나 감당하기에 스스로도 또 주변에서도 당연하게 기대하는 모습을 난 넘기지 못했다. 그로 인한 자책감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고 이 마음을 잠재우기까지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했다. 누구는 술 마시고 덮어라, 넘겨라 할텐데 이런 상황엔 알콜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프가 정확히 마이너스 저 아래로 내려간 어제저녁에는 비가 오든 말든 무작정 걷고만 싶었다. 한 서너 시간 걸으면 풀릴 것만 같았다.


 지금의 나에겐 그럴 여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아니, 여유라고 표현하면 안 되겠구나, 그냥 내 시간 속에서 나를 다독일 수 없었다. 잠은 아무리 자도 깰 수 없고, 밤엔 얌전히 있어도 잠이 안 온다. 자고 일어나면 또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나하나 해나가다가도 기억이란 어쩜 그리 영악한지, 상대를 마주하기에는 너무 여렸다. 좁은 공간을 같은 방향으로 종종 걸어 몇 바퀴째인지도 모를 때, 문득 고개를 들어 다른 이의 흔적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렇게 주변을 걸어와서 보는 것도 피해가 되려나.’ 하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심지어 의식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 생활이 반복되고 그 속에서 내가 큰 낙담하지만 않는다면 결국은 뭐라도 해낼 것이다. 중대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대한 방향의 결과를 얻을 수는 있지 않을까 싶은 건데, 그렇다고 하면 지금을 사는 내 안에 나는 미래에서 이미 결과를 예상하며 ‘과거의 내가 결국은 하긴 할거야.’라고 팔짱 끼고 있고, 지금을 사는 <나>는 감정만 없어지면 될 듯 하다. 예전부터 하던 생각이다. 자아를 객체화 해버린다고 해야 할까.



 이건 게임인 거다. 이 게임의 엔딩을 맞이할 때, 적 어 도 후회는 하지 않기 위해서 흡사 어떤 퀘스트를 깨야 하는 것처럼. 아니면 의미 없이 어려운 교육을 반복해서 레벨을 올려야 하는 것처럼. 최대한 <나>를 죽여보려고 한다. 가끔은 도움이 되고, 어쩌면 정말 그렇게 됐으면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잘 안됐다. 왜 안됐을까. 정상적이지 않았던 건 내가 문제여서였을까, 상황이 문제였을까. 아, 최근 상담에서는 상황이 가장 어려울 때하고 나를 위로해주시기는 했다. 그 당시 내 대답도 그랬다. 그치만 더 힘든 상황도 겪어본걸요. 결국은 다 하고 견뎌내겠죠 라고.  


 왜 나는 자책을 하는 걸까. 정말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인가. 이렇게 무력해진 적이 있었나. 오히려 글을 쓸 때는 행복해. 원래 시험 기간에는 공부 빼고 다 재미있다는데 내가 그런 꼴인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10년 넘게 계속 열심히 일한 사람도 아니고, 나이를 지긋이 먹어 이제는 쉬고 싶어 할 때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쉬고 싶어서 매일 쉬다 보면 살아지는 인생도 아니잖아. 실제로 쉬는 시간 없이 바쁘게 날들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가.     



 일단은 한 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내에 어떻게든 해보고자 오전부터 단순하게 움직였다. 그랬더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야 하는 일에 전념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름 기분도 좋아져서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일했다. 그러다가 왜 갑자기 또 집중력이 떨어진 건지 다른 노래를 들으려고 찾다가 내 마음의 bpm을 못 맞추는 것 같아서 고른 게 [하루의 끝] 이라는 노래. 

 맞다. 몇 번이고 눈물을 삼키고 이 모든 사건들은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척. 오히려 내가 미안해서 편하고 내가 힘들어서 편했다. 정말로 뭐가 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감정의 값이 보통보다 많이 떨어져 있을 때엔 이걸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금 찾아봤다. 그리고 듣고 또 머릿속으로 가사를 써봤다. 이제는 당시와 마음이 다르다. 이런 게 무뎌진 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나는 저렇게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누가 날 들어주고 사라지려 하는 날 보며 울어줄까.     


 어릴 적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주는 인어공주였다. 진짜 결말을 어릴 적에 읽었다면 충격이 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진짜 결말을 읽고 가슴에 새겨진 듯하다. 마음껏 사랑하고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뒤에 더 써놓은 글이 있었으나 더 이상 가라앉지 않길 바라며 여기에서 글을 마친다. 그리고 우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비관에서만 살고 있지 않음을 언젠가 또 글로 풀어내야 할 숙제를 안고 끝내기로 했다.

이전 07화 포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