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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Jan 09. 2020

‘어쩌면 사랑’,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역사와 상관없는 해석이며, 2020년의 관점으로 읽은 영화입니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이상하다. 참 이상했다. 여성 캐릭터가 없었다. 그 흔한 왕비도, 후궁도 없었다. 어쩌면 단 한 명의 여성 캐릭터가 장영실의 제자 ‘사임(전여빈)’이다. 그녀가 울며 잡혀가는 ‘장영실’을 향해 슬퍼하는 게 전부였다. <동백꽃이 필 무렵>에 ‘동백이’, <멜로가 체질>의 세 여성 캐릭터들처럼 최근에는 능동적이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여성상을 가진 캐릭터들이 서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영화 <천문>은 남성 캐릭터들만이 서사를 주도했다.

 여성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지우고, 남성 캐릭터들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남성중심주의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마 영화 형식상 <천문>이 두 남자의 이야기만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여성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러브라인을 만들어 영화의 흐름을 깨어 비판받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일반적인 영화의 필수 장치인 '기존의 남성 주인공-여성 주인공’의 러브라인을 두 남자의 러브라인으로 대체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브로맨스를 넘어선 ‘두 남자의 사랑’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브로맨스는 두 남자가 외부로부터 나타나는 위기인 갈등을 협업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남성 둘을 데려다가 이상하고 웃긴 그림을 만들어 재미를, 때로는 전우애와 같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천문>에서는 기존 브로맨스를 넘어선 ‘무언가 더 있는’ 관계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극에서 두 남자가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일하는 도중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진 순간이 있다.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익살스러운 눈빛을 주고받거나 가벼운 배경음악을 틀며 장난인 양 넘겼을 것이다. 나아가 두 배우의 연기력이었다면, 이러한 상황을 순식간에 코미디 영화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문>에서는 그 순간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관객들도 마음껏 웃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둘은 마치 감독의 디렉팅을 받은 듯, 무언가 애틋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고, 그들의 연기와 분위기는 몇 초간의 긴장감을 조성했다. 마치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남-여성 주인공 사이의 긴장감'을 풍겼다. 과거 군신관계가 왕을 사모하는 관계라고 하더라도, 관객들이 보았을 때, 다른 사극 영화와 드라마들에 비하면 군신관계를 넘어선 관계라고 생각한다.



 또한, ‘장영실(최민식)’은 자신을 한동안 찾지 않는 ‘세종(한석규)’을 향해 ‘왜 자신을 찾지 않았는지, 자신을 잊을 줄 알았다’와 같은 말들을 한다. 마치 다른 사극 영화에서 후궁이 왕에게 할 듯한 말, 삐진 연인에게 하는 말과 같은 이러한 대사는 둘의 ‘무언가’가 사랑이라는 것을 지지해준다. 군신관계를 넘어선, 우정을 넘어선, ‘플라토닉 러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배경 상, 두 남자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그 마음이 사랑일지라도 엄격한 유교 사회 속, 본인들은 동성 간의 사랑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식도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왕이 노비 출신 남성의 사랑이라? 상상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관계가 우정과 사랑 중에서도, 사랑에 치우친 관계라고 생각한다. 허진호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멜로/로맨스로 채워진 감독이기에 더욱 그렇다.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그들의 관계를 묘사했는지는 모른다(우정인지 사랑인지). 한 가지 의문은, 단순한 우정으로만 그리고 싶었다면 영화 속 ‘두 남자의 애정씬’에 코미디 서사를 집어넣어 더욱 관객의 반응이 좋은 영화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그 씬들에 무게감을 주어 큰 재미들을 놓쳤냐는 것이다. 코미디 영화들이 대세이고, 영화 속에도 웃음을 주려 노력한 부분들('임원희'와 감옥 씬)도 있기에 의심은 더 커져갈 뿐이다.

 만약 이 둘의 관계가 사랑이라고 한다면, '민감한 동성애를 감히, 한국의 영웅인 세종에게 적용한다'며 비판을 받을 것이 뻔하다.(고증의 문제도 있다-역사적 사실로도 세종이 동성애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뭐, 하지만 이 영화 <천문>이 비판받을 경우, 우정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줄타기하는 애매한 연출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게끔 만들어 숨겨놓았기에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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