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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Feb 26. 2020

사랑을 건축으로, <건축학개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타이밍.”

 


 <건축학개론>은 건축학도였던 이용주 감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걸작이었다.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을 건축과 집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담아내었다. 영화는 공간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대비하였다.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랑과 삶’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정릉과 개포동, 과거와 현재    

 

 교수가 수업 중에 언급했던 ‘143번 버스’. 이 버스의 두 종점은 정릉과 개포동이다. 순수했던 과거와 현실에 순응하게 된 현재를 대비하며 보여주는 형식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개포동이 미사일 이름이냐고 묻던 ‘서연’은 개포동 사모님이 되었고, 담배를 피우지 못했던 건축학도 ‘승민’은 담배를 없이는 못 사는 건축가가 되었다.

 영화는 승민을 중심으로 현실과 과거를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승민의 얼굴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승민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시 말해, 승민은 서연을 잊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났을 때 승민은 모른 척 그녀를 맞이했지만, 그는 그녀가 첫사랑 서연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집이라는 것     


 감독이 건축가인 만큼 영화 속 집은 ‘거주로서의 집’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영화는 3가지의 집을 보여준다.

 첫 번째 집은 승민과 승민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집이다. 첫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이 집처럼 생각보다 ‘부모-자식’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장면들도 많이 들어있다. 그 집은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그녀의 분신과도 같았다. 꽉꽉 들어찬 냉장고, 질서 없어 보이지만 나름 어머니만의 질서로 정리된 물건들은 우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 나아가, 철없던 승민이 어머니와의 다툼 끝에 고장 낸 문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고칠 수 없는, 상처받은 어머니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두 번째 집은 정릉의 빈집이다. 승민과 서연을 이어준 빈집은 ‘무’에서 ‘애’로의, 서로를 서로로 채워가는 그들의 마음을 나타낸다. 텅 빈 곳은 집이 아닌, 그저 공간일 뿐이다. 그 공간을 사람의 흔적으로 채워가는 것이 그 공간을 집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들은 텅 빈 집을 함께 청소하고, 꽃을 심으며 집을 꾸며간다. 사소한 오해가 그들을 이어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사랑의 시작과 끝은 항상 이 집에서 시작되었다.


 마지막 집은 첫사랑에 대한 마지막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 서연의 집이다. 승민은 서연의 집을 지어준다는 약속을 몇십 년이 지난 후에서야 들어줄 수 있었다. 나름 고심해서 디자인한 수많은 집을 서연은 불만족스럽다는 듯 거절했다. 그녀는 과거 승민이 자신과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지, 자신을 사랑했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결국, 완성된 집은 서연이 과거 그에게 그려주었던 그림 속 집과 닮았다. 지붕에 방을 올려 이층집으로, 폴딩도어로 많은 창문을 표현해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승민은 서연의 집을 완성하는 것에 집착했다. 아마도 과거의 첫사랑의 끝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들을래?”      


 영화 속 명장면이라고들 하는 ‘옥상 씬’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의도적인 시간 끌기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설렘과 긴장감을 극대화했고, 몇 초간 비친 하늘 속 구름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기억의 습작’이라는 음악까지 사용하여 ‘그때 그 시절’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렇듯 감독은 여러 장치로 설렘과 긴장감, 사랑까지 완벽하게 표현했다.

 또, ‘과거 속으로’, ‘체념’과 같은 배경음악은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나중에는 배경음악만 들어도 그 장면이 무슨 장면인지, 배우의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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