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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Mar 15. 2020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귀걸이

 어제도 평소처럼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단지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스크를 쓰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할머니께서 말을 꺼내셨다.     


 “얘야, 마스크는 끼고 나가야지.”     


 그러고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내게 마스크를 씌워주셨다.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요즘에는 항상 귀 뒤가 거슬렸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 귀에 걸린 무언가가 유독 무겁게 느껴진 날이었다.     


 인생에서는 나이마다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다 다르다. 스무 살 청춘. 돈은 없지만, 패기와 용기로 세상을 마주한다. 더러운 세상과 마주하고 타협한 중년은, 뜨거웠던 과거의 꿈들을 가족을 위해 돈과 바꾼다. 노인들의 청춘은 빛바랜 지 오래고, 자식들을 위해 돈은 다 쓰고 말았다. 그 노인들에게 낙은 무엇일까?

 젊은 날, 사랑의 결실이자 인생의 모든 것인 아이. 힘들게 기른 그 아이가 낳은, 또 다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 주먹만 했던 또 다른 아이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며 행복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손주들이란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인생의 ‘낙’이다.


 그러나, 받기만 한 사랑은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쉽게 잊게 만든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뭐든 미련하게 아끼려고 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한 푼도 쓰지 않는 할머니를 보며 답답해하고, 화를 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과연 하나뿐인 인생의 낙이 될 자격이 있을까.          



 집에 돌아와 방을 다시 둘러보니, 옷걸이에 걸려있는 할머니의 파란 면마스크가 보였다. 평소 같으면 화난 목소리로 “좀, 면마스크 빨아서 쓰지 말고, 좋은 것 좀 쓰라니까요.”라고 말할 나였지만, 오늘은 말 대신에 좋은 마스크를 직접 씌워드렸다.     

 오늘도 할머니가 내게 씌워준 가장 무거운 귀걸이를 끼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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