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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Sep 13. 2020

주말 저녁 드라마의 마법

좋은 콘텐츠란 무엇인가?

KBS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또 하나의 뻔한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100부라는 대장정 끝에 9월 13일 막을 내렸다. 역시 ‘KBS+주말+저녁+가족 드라마’의 조합은 실패하지 않았다. 아니, 실패할 수 없었다. 5070의 힘으로, 끝까지 30%를 훌쩍 뛰어넘는 시청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뻔하고 감동만을 주는 드라마들이 싫다.     


KBS 주말 저녁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모든 KBS 주말 저녁 드라마가 그렇듯, 다 같은 내용이었다. 다만 좀 다른 것은 ‘이혼’을 큰 주제로 가져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혼 후 재결합’이라는 요소로 이어지며 결국 안정함을 추구하는 주말 드라마로 회귀했다. 진부했다. 하지만, 중장년층과 주부들은 똑같은 스토리의 반복과 변주에 항상 열광한다. 감동을 준다며, 똑같은 스토리임에도 재미있다고 항상 주말 저녁의 TV를 사수한다. 또한, 코로나 블루와 겹쳐 '위로'를 주제로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구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이다. 그러나 그 눈물이 탄탄한 스토리와 작가의 실력이 아닌 것이 문제이다. 진정한 감동이 아닌,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장치를 사용했기에 감동하는 것이다. 그 감동은 100부에 달하는 시간과 신파극에 의한 기계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100부작에 가까운 양은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내 주변인처럼 느끼게 한다. 친구가 슬퍼하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 인물이 힘든 상황에 놓인다면, 나아가 그의 가족 캐릭터를 이용한 억지 슬픔을 만들어낸다면, 기계적인 반응으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 시청자층은 이와 같은 기계적인 감정을 느끼고 잘 만든 드라마라며 칭송한다. 

     


그들만의 판타지 드라마     


 주말 드라마는 5070인 부모님의 판타지를 총집합한 콘텐츠이다. 주 시청자라 할 수 있는 5070의 여성이 살아온 환경에 맞는 요소들을 집합시켰다. 5070 여성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살아왔다.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 하나 없이,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힘든 시집살이, 독박 수준의 집안일을 해왔음은 사실이다. 그들의 판타지를 주말 드라마는 정확히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문직 남성이 힘들게 살아온 여성과 만난다. 힘들게 살아온 5070 여성에게 ‘자신이 젊었을 때 저런 사람(준수한 외모, 능력, 재력을 갖춘 남성)이 나타났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생각으로 잠깐의 설렘을 주며, 과거의 자신을 투영하여 대리만족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두었다. 또한, 5070과 같은 세대로 나오는 ‘주인공의 부모로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자신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식-부모 간의 갈등과 화합을 자신의 삶과 비교/대비/일치시키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물론 ‘드라마는 감동을 주고, 즐거우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극’의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감정들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마취제라고 생각한다. 보고 눈물을 흘린다고, 감동을 느낀다고 바뀌는 것이 있는가?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재미만을 추구하는 콘텐츠로 어쩌면 질이 낮은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마취가 풀리면, 감동을 느끼고 나면, 그들의 앞에 펼쳐진 것은 바뀌지 않는 현실뿐이다. 

    


새로운 시도, 위험한 드라마?     


 반면에 안정성을 추구하는 드라마와 달리, 도전적인 드라마들도 있었다.  <멜로가 체질>은 코믹,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이다. 영화 <극한직업>의 감독이기에 개그 코드가 남다를 것이라 생각했고, 생각은 적중했다. 재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1차원적인 몸개그, 언어유희 등의 방식도 물론 사용했지만, <멜로가 체질>의 개그 요소에서 집중할 부분은 클리셰의 해체였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재미를 담기 위해 ‘클리셰의 해체’를 사용했다. 공중파에서는 절대 시도할 수 없는 과감하고 위험한 시도였다. 드라마의 낮은 한 자릿수대의 시청률이 아직 대중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대답해준다. 드라마 속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장면이 등장한다. 넘어지는 여성 주인공을 잡아주는 남성 주인공은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꼭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병헌 감독은 넘어지는 여성 주인공을 잡아주려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 뿐만 아니라 ‘만남-사랑-위기-결실’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이별부터 시작하는 ‘결실-파괴-재시작’의 순서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반적이지 않은,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모습은 대사에서도 수없이 등장한다. 뻔하디뻔한 드라마에 지겨움을 느꼈을 젊은 층을 위한 젊은 감독의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재미만을 추구하는 드라마는 아님이 분명했다. 드라마 속에는 ‘직장 내 갑질의 고발’, ‘성소수자’, ‘페미니즘적 요소’ 등 최근 사회에서 뜨겁게 떠오른 개념들도 녹아있다. 내가 이 드라마를 가장 고평가 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요소를 극에 삽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性) 담론에 대한 부분이 눈에 띄게 강조되었다. 드라마에는 남성-남성의 성소수자 커플이 등장한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TV 드라마에 등장한 것 자체가 과감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남성과 부족한 여성이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기존 드라마와 달리 3명의 여성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오히려 남성 주인공이 조연의 비중이라 다루어질 만큼, 매력적이고 수동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를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멜로가 체질>은 상업적 측면에서는 실패했다. 소수의 매니아 층을 남긴 채로 대중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미디어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음을 알 수 있었다.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


 또한,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는 성인 웹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여혐’논란에 휩싸였지만, 주 시청자인 젊은 층들은 이를 문제 삼아 이슈로 만들었다. 나아가 법적 제재까지 받게 되었다. 콘텐츠를 통해 많은 이들이 다시 한 번, 비판적으로 드라마를 나아가 사회를 쳐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이르렀다. <편의점 샛별이>가 올바르고 건강한 드라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미디어 콘텐츠로서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방송 콘텐츠     


 상업성과 미디어의 역할, 이 두 균형을 맞추어가는 것이 앞으로의 방송 콘텐츠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재미와 클리셰는 상업성과 연결되고, 과감한 시도는 의미와 연결된다. 방송을 제공하는 곳도 엄연한 영리 기업이기에 상업성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위험할 것이고, 의미 없는 콘텐츠는 죽은 콘텐츠와 다름없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과감한 시도로 사회에 요구되는 새로운 영역들에 대한 질문(성 담론, 사회 이슈)을 시청자에게 던졌다. 그러나, 질문을 위해 설정한 장치들이 대중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기에,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어 상업성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새로운 질문보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감동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로, 높은 시청률을 얻어 상업성 달성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재미나 감동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생각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으면 좋겠다. 감정을 느끼기만 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감상에서 멈추는 것이고,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스스로 드라마나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면 고차원적인 감상이 될 것이다. 고차원적인 감상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이에 맞추어 방송에서도 질적인 콘텐츠를 주로 생산할 것이다.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미디어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상업성과 재미/감동의 균형을 맞춘 콘텐츠가 좋은 방송 콘텐츠일 것이다. 질적인 콘텐츠의 제공과 수준 높은 시청자의 시청 태도가 맞물린다면 콘텐츠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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