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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Feb 11. 2021

비가 그치면

태양은 눈을 찌르고, 매미 소리는 귀를 찌른다. 그러던 한 여름, 무더위의 한 가운데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은 구름 뒤로 사라지고 한 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다 불현듯, 그쳤다. 갑자기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장마였다.

비가 내리기 전에는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구름은 새하얀 빛에서 심술궂은 회색빛으로 변하고,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에. 그러다 무언가 나의 코를 '툭' 치는 느낌과 함께 비가 쏟아진다. 땅이 비에 젖어가는 냄새, 머리를 치는 빗방울의 물리력에 우산을 펼친다.

반면, 비가 그침을 알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우산을 펼친 채로 길을 걷다보면, 우산이 비를 막기에 내가 비에 안 맞는 것인지, 애초에 비가 그쳐버렸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다 우산을 잠시 어깨에 기대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우산을 하나 둘 접는 이들이 보인다. '아, 비가 그쳤구나.' 그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비가 그쳤음을 깨닫는다. 비는 갑자기 찾아와서는 소리없이 떠나가버린다.

혜화역에서 종로 3가로 걸어가던 길. 어둑어둑한 날씨에 비가 내렸다. 흐르는 빗방울에 우산을 펼쳤다. 어차피 산책하던 길이었기에, 생각없이 한 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다. 한 귀로는 음악을, 한 귀로는 도심의 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비오는 풍경을 눈에 다시 담기 위해 우산을 살짝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높은 빌딩 앞에서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우산 없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디를 가는지, 그의 발걸음에선 힘이 느껴졌다. 다시 우산을 원래대로 하고 걸어가려는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가 우산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펼쳐진 우산을 허리 아래로 내렸다. 어두운 하늘 아래, 바람만이 불었다. 비가 그친 것이었다. 건물 앞, 횡단보도에서 나도 우산을 접었다. 횡단보도 맞은 편에 있던 아이와 그의 엄마도 나를 보고는 우산을 접었다. 그렇게 모두들 우산을 접어갔다.

비가 그치면 가장 먼저 우산을 접는 사람. 그 사람은 언제나, 항상, 심지어 우산을 쓰고 생각 없이 걸어가던 그 순간에도 자신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사람이다. 신호등처럼 타인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주위에 대한 작은 관심으로 하나하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사람.

비가 그치면, 가장 먼저 우산을 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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