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인혁 Mar 27. 2021

나라는 행성

나라는 행성
 
 
 
 
 
 
 
 
 
 
1.
 어렸을 때, 난 참 좋지 못한 아이였다. 내 희미한 기억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한 집이 아니었다는 것,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지 못했던 것. 강남의 식당에 들어가 비싼 가격을 확인하고는 부모님께는 메뉴가 별로라며 다른 곳으로 가자고 이야기하는 아이. 적은 돈이지만, 혹시나 부담될까 0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인지 내 어렸을 적 기억은 항상 무언가를 쫓기 위해, 성공을 위해 발버둥 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줄 수 있도록.
 유치원 때는 누군가를 꼬집었다. 그 친구가 나보다 색연필을 더 이쁘게 정리했다는 것이 내가 기억하는 꼬집은 이유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그 친구가 얄미워서였는지,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는 게 싫었던 모양인지. 그 친구에게 사과와 함께 전해줄 작은 선물도 부모님이 준비해주셨다. 당시에 2000원이 조금 넘는 초콜릿. 그걸 사러 간 순간에도 나는 부모님께 너무 비싼 것 아니냐며 친구에 대한 미안함보다 돈의 아까움이 앞섰다. 내 잘못을 깨닫는 것이 그에 대한 순수한 미안함이 아닌, 지출로 배웠다.
 그렇게 나는 돈과 성공만을 생각했으며,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남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나보다 못나기만 하면 되었다.
 내 삶의 배경은 이런 나를 더욱 가둬놓았다. 용산구 한남동의 반지하. 한남동의 절반은 몇십억씩 시작하는 고급주택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거미줄 같은 골목과 오래된 집들로 가득한 달동네였다. 그 빼곡한 3층, 4층의 빨간 빌라 중 하나가 나의 집이었다. 평범하게 살기에 아주 조금은 부족한 나의 삶과 손 닿으면 잡힐 것 같은 그들의 빛나는 삶. 이런 모습은 나를 더 괴물로 만들어갔다. 오직 돈과 성공만을 좇는 기계가 되어갔다.
 
 
 
2.
 영화 같은 계기는 없었다. 그냥 수도 없이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를 생각했다. 잠들기 전에는 항상 기억 속 내가 했던 모든 일과 만났던 모든 사람, 그리고 그 안의 나를 생각했다.
 그러며 내가 없는 그들의 삶은 어땠을지를 생각해보았다. 내가 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웃음이 더 많아졌을까. 가족부터,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나는 그저 부모님이 돈 쓰는 것이 싫어, 비싼 식당에서 나왔을 뿐인데, 자신의 아이가 돈 때문에 식당을 나선다는 사실이 부모님께는 얼마나 상처로 남았을까. 친구들을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했던 일들은 또 어떠했던가. 내 입장에서만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했던 날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날들의 잘못이 이어져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참 못났다.’
 편히 누워있지 못할 만큼의 부끄러움에 빠졌다. 나와 마주친 당신도 나와 같은 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눈에서 보이는 풍경은 생각지도 못한 채. 당신과 마주 보지 않고, 함께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그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내가 이렇게나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나. 참 행복해 보였다. 많은 사람 사이, 웃음을 잃지 않는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성공 때문에 다른 이들을 나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제쳐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세상은 내 눈으로부터 내게 들어온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니, 좋은 것만을 바라보고, 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당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를 묻는다. 당신의 답을 듣고는 당신의 삶을 그려본다. 그래서 다음번, 내가 당신을 위해 먼저 움직였을 때, 당신이 나를 보고는 나로 인해 조금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제야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얼었던 강물이 녹아내리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기분. 사람을 피하고 싶었던 그때와 달리,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따뜻해지는 기분.
 
 
 
4.
 우리가 함께 같은 온도로 행복해지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오랫동안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균형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 아름다운 당신들과 함께하기 위해
 적당히 당기는, 그래서 서로의 주위를 맴도는 행성들처럼, 너무 당신에게, 너무 나에게 치우치지 않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자리 잡은, 성장해간 나라는 행성.
  피곤한 날, 샤워하기 위해 물을 튼다. 뜨거운 물에 놀라 찬물로, 오른쪽으로 수도꼭지를 튼다. 그러자 조금은 차가운 것 같아 계속 조절해가며 균형을 맞춘다.
 완벽한 라떼 한 잔을 위해 우유의 농도를 조절한다. 씁쓸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완벽한 한 잔을 위해 농도를 맞춘다.
 당신과 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며 행복한 균형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별자리, 구름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