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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Mar 27. 2021

낮에 뜨는 달 : 아버지

낮에 뜨는 달
 
 
 
 
 
 
 
 
 
 
 대학교 1학년, 교양 문학 수업에서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도 항상 존재하는 콘텐츠 속 반복되는 서사. 그중에서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직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되풀이된다. 아버지를 넘어서야겠다는 욕망과 그로 인한 좌절, 그리고 선망. 나도 모르게 신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 당신은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운전기사이자 정비사, 여행가이드.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차를 타고 둘이 어디론가 갈 때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의 학창시절부터, 하사까지 복무했던 군대 이야기, 사소한 집안일, 최근 정치 문제들까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당신은 개구쟁이였다. 비행 청소년은 아니었지만, 노는 것을 좋아하신 아버지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롤러장에 가셨다고 했다. 길 건너 백화점 4층 롤러장, 지금은 학원들로 가득한 대치동 근처 어딘가에서 젊음을 즐겼을 당신.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차엔 항상 8090 롤러장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다. 첫 번째 작은 경차부터 지금의 소형 SUV까지, 항상. 그래, 그 시절이 그리우신 게지.
 그렇게 공고를 졸업하고, 컴퓨터 붐에 힘입어 전자상가에서 사업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몇 년이 채 가지 않아 새천년이 도래하며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머니를 만났고, 첫째인 내가 태어났다. 차가 없었던 그때 우리 가족이 버스를 타고 놀러 갈 때면, 나를 안은 아버지를 보고는 붕어빵이라며 똑같이 생겼다는 말을 매일 들었다고 하셨다.
 이후, 이런저런 일을 하다 편의점 점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기업 직장인이나, 고위 공무원이 아닌, 사회가 말하는 성공한 가장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실패한 가장이라고 생각하시겠지. 아이가 둘이나 되기에 그 부담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 되고, 아버지의 몫일 테니. 쉰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그 시절의 가장에게는 짐이 있었다.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가장다운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맨박스. 충분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주눅 들고, 식사 시간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힘 없는 가장.
 
 그러나 당신은 가부장적이지도 않았고, 아들과 한 마디 나누지 않는 무뚝뚝한 다른 아버지들과는 달랐다. 당신은 핸드폰도 없던 시절 어머니를 기다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골목 가로등에서 기다리기도 했으며, 귀찮으리만큼 항상 나에게 문자와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내가 아버지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봤던 편의점에서 단골손님들과 장난치며 이야기하는 모습.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아버지는 우리 집의 그림자이며, 낮에 뜨는 달이다. 당신은 당신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묵묵히 올바른 길을 밝게 비추어주기만 했다.
 
 당신은 낮에 뜨는 달이다. 어렸을 때는 달이 밤에만 뜨는 것인 줄 알았다. 태양에 가려져서 그렇지, 항상 떠 있는 것을 몰랐다.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북극성도 아닌, 달이다. 우리의 밤을 환하게 만들어주며, 달빛 아래 잠시 책을 읽을 수 있게도 해주며, 길을 잃은 이에게는 도로를 빛내준다. 언제나, 줄곧 나의 머리 위를 비추어왔다. 있는 듯, 없는 듯. 따뜻한 눈길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본다.
 
 누구보다도 꼼꼼했던 아버지가 어느날 내 스마트폰 보호필름을 붙여주셨다.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삐뚤게 붙여주셨다. 손이 떨리시는지, 집중력이 떨어지신 것인지, 나이가 차가는 것인지.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보호필름을 누구보다도 잘 붙이셨다. 액정을 꼼꼼히 닦아 새 스마트폰처럼 만들고는 두 번의 손놀림이면 일을 마치셨다. 보호필름을 붙인 것인지, 그냥 핸드폰 액정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옶었던 주름, 손이 조금씩 떨리는 모습, 더 굽은 허리. 항상 그때의 모습으로 있으셨으면 좋겠지만, 그건 나만의 욕심일 것이다. 그래, 적어도 지금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당신의 차에서 그때의 롤러장 노래가 아닌, 최신 노래가 흘러나오길.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과거의 시간이 아닌 지금이 되고 당신을 감싸길 바랄 뿐이다. 내가 당신의 달이 되어 당신을 비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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