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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Mar 28. 2021

당신을 위한 당신의 삶

당신을 위한 당신의 삶
 
 
 
 
 
 
 
 
 
 
 풍족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부족한 우리 집. 그 누구 할 것 없이 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해왔다. 어머니도, 할머니도, 성인이 된 나도.
 마트에 가면, 우리는 전단지를 보고는 필요한 것을 사기보다는 1+1 상품, 특가 상품만을 구매하기 일쑤였다. 좋은 게 아닌, 싸고 좋은 것만을 구매해왔다. 게다가,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 돈을 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가끔 당신의 용돈을 모아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는 것은 봤지만, 어머니는 그런 적이 없었다. 좋은 화장품들을 사지 않고, TV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묶음 상품만을 구매하셨다. 또는 번화가를 걷다 어머니가 ‘이거 이쁘다.’, ‘저거 이쁘다.’라는 말을 하실 때면 항상 장난으로 말한 거라며, 필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답답했다. 도대체 돈이, 자식이 어떤 의미이기에 이토록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신이 살아온 시대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놀이동산을 간 적이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놀이동산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여느 놀이동산이 그렇듯,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아무거나 다 먹으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것은 새우 볶음밥과 핫도그뿐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 나는 새우 볶음밥에 케첩이 없으면 먹지 않았다. 그곳에는 케첩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부모님께는 케첩이 없으면 밥을 안 먹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정말로 케첩이 없어서 먹지 않겠다고 했었는지, 볶음밥을 그 가격에 먹는 것은 돈 낭비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내가 먹을 수 있는 가격대의 음식이 이것들뿐이어서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머니는 화가 나셨다는 것이다. 잠깐의 긴장 상태가 끝난 후,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문밖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버리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만 같다. 나는 비싼 음식을 안 먹는 것이 배려이자 착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됐다.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위해 나왔는데 투정을 부리는 아이. 비싼 음식들을 마음껏 사주고 싶지만, 그 어린아이가 집안 사정을 알기에 음식도 가격을 생각하며 주문한다는 것. 아무런 생각 없이 먹기만 해야 할 나이임에도 너무 철이 일찍 들어버린 아이를 보고는 당신 자신에게 화도 났을 것이다.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 게 당신 탓이라는 생각에, 더 돈이 많았다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럼에도, 그런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돈이 행복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다. 내가 그렇고, 당신도 그렇기에. 주어진 만큼의 것들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 좁은 집은 청소하기에도 편하고, 모두가 모여있기에 항상 온기로 가득하다. 나와 내 동생은 적은 것으로도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로 자랐다.
 
 이제 나도, 내 동생도 어른이 되어가며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이제는 우리를 위해 아끼는 그 돈을 자신에게 쓰셨으면 좋겠다. 그래, 당신이 변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이 당신을 위해 살지 않겠다면, 내가 당신을 위해 살겠다.
 



 엄마의 생일이었다. 나는 선물과 편지를 준비했다. 뭣도 없는 스무 살, 용돈 없이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45만 원을 벌며 생활했다. 조금씩 모은 돈으로 엄마에게 작은 목걸이 하나를 선물했다. 그때 길을 걸으며 이쁘다고 하셨던, 그 목걸이와 비슷하게 생긴 것. 내가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선물로 현금은 절대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좋아하시겠지만, 자식이 힘들게 벌어온 그 돈을 맘 편히 쓸 수 있는 부모님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신에게 돈을 쓰기 아까운 부모님들은 그 돈을 저축하시거나, 다시 가족을 위해 쓰실 것이다. 결국, 부모님께 드린 현금은 사랑을 타고 다시 본인에게 돌아오게 된다. 선물을 받으면서까지도 자식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기에.
 
 어머니는 여자가 아닌 엄마로만 살아왔다. 자신의 삶을 가족들로 채워, 정작 자신들의 행복과 즐거움은 어디로 보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아들들도 좋지만, 엄마가 당신의 삶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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