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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Apr 22. 2021

브레이브걸스 : 혜성인 줄 알았는데 달이었다.

 몇 년 전부터, 음악 시장을 표현하는 단어이자 트렌드 : 역주행. 주식부터 코인까지, 요즘에는 한 방이 유행인가 싶다. 최근 그 ‘역주행’의 최대 수혜자인 브레이브걸스. 역주행을 넘어서 <롤린>은 하나의 밈이 되어 2020년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유행을 싫어한다. 이유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는 혜성 같은 것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1. 아카이브 -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과거의 그들

 알고리즘에 우연히 선택되어, 운 좋게 대박 난 거라고 말하고는 한다. 아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었다. 미디어 시장에서 아카이브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아카이브가 없다면, 아무리 운이 좋아 알고리즘에 선택받더라도, 아무리 좋은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게 끝이다.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기에.

 사람들은 하나의 콘텐츠를 보면, 관련된 영상을 더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도서관에 책이 더 없다면 다른 곳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브레이브걸스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만의 아카이브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대형 방송사 음악 방송에 나가지 못하는 인지도였기에 '위문열차' 같은 소규모 무대라도 출연하였다. 예비팬들이 보고 싶어 할 많은 무대 영상들이 있었다. 알고리즘이 선택한 소수의 영상에서, 아카이브로 넘어가고, 곧 브레이브걸스 자체로 관심이 이어질 수 있었다.

 이 사소하고 작디작은 무대들이, 영상들이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고, 브레이브걸스를 채워나갔다.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들어간 그들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2. 타겟팅 - 전우애로 단결한 군인

 확실한 타겟팅도 한몫했다. 그들의 영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군인이다. 그들의 동아줄은 군인이었고, 군인들의 동아줄도 그들이었다. 군 생활에 지친 군인들은 브레이브걸스의 노래로 위로를 받았고, 그들은 보답했다. 그들의 가장 힘든 시기에 군인들은 손을 내밀었다. 서로가 가장 힘든 시간에 위로가 되었기에. 팬심을 넘어선 전우애로 이어졌다.

 군인들의 리액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을 보기 위해 무대 앞으로 뛰어나갈 때의 흙먼지, 장병들이 따라 추는 안무까지. 보는 나도 압도될 만큼 화제성이 강렬했다. 게다가, 군인들을 생각했을 때의 이미지-엄격, 절도, 진지함과는 다른, 진심으로 그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도 행복을 전달한다. 군대에도, 걸그룹에게도 관심이 없던 이들도 이 광경을 보고 있자면, 절로 클릭했을 것이다.



3. <운전만해>


 가수들은 사랑을 다룬 노래로 팬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는 한다. 군입대를 앞두고 팬들과의 이별을 고하는 성시경의 <안녕 나의 사랑>, 자신을 뽑아준 팬들을 위한 IZ*ONE의 수 많은 노래들. 이처럼, 꺼져갔던 브레이브걸스도 <운전만해>를 마지막 앨범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준비했었을 것이다.

 <하이힐>, <롤린>과 같은 노래들과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ITZY가 ‘나 잘났어’ 풍의 노래가 아닌, 이별을 다룬 발라드를 부른 듯한 기분이었다. 비정상은 곧 의도이며, 의도는 곧 메시지이다.

 <운전만해>. 연인인 둘. 달라진 사이. 이별을 앞둔 지금의 답답함을 꺼내 보이지 못하고, 그냥 운전만 하라는 내용이다. 너무나도 그들의 이야기였다. <롤린>으로, 지금까지의 행보로 잠깐 그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생겼다. 연약하지만 존재하는 팬층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들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한탄과 실망. 그럼에도 이를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혼자만 작아져가는 기분.



브레이브걸스의 마지막 노래가 될 뻔한 <운전만해>(2020)


 브레이브걸스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멀어져가는 사이에도 계속 운전만 하라는, 꺼져가는 지금이라도 계속 옆에 있어 달라는 마지막 외침이었을 것이다. 이 스토리에 화려한 겉모습 속 슬픔이 담긴, 시티팝이라는 장르의 찬란함까지 더해졌다.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역주행 며칠 전, 그룹 해체를 고민했다는 이야기. 여느 걸그룹처럼 연습생을 하고, 빵빵한 소속사에서 데뷔하고, 큰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명이었고, 간간히 작은 무대만을 섰다.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진가를 볼 수 있다는 모습. 매일 꾸던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들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달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그들이 2017년의 노래로, 2021년에 음악 방송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모습. 다행이었고, 축하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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