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선택의 즐거움 : 알고리즘
르-르네상스 : 다시, 인간으로 5
채용공고를 모아둔 사이트를 보면 유독 인공지능 개발자나 프로그램 개발자들을 구하는 공고가 많이 보인다. 1분 1초가 치열한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 이제는 문과와 이과의 경계도 없어졌고, 코딩 교육은 필수가 되었다. 그토록 기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이 코딩과 프로그램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들은 21세기에 맞춘 새로운 경영을 위해 노력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들을 최대한 분석한다. 그들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더 완벽하게 전달해주고 싶어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 시대에 알맞은 변화인 것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을 떠올리면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유튜브는 실시간 피드백 루프(좋아요, 싫어요, 동영상 시청시간 등)를 통해 각 시청자의 관심사에 맞는 동영상을 검색해준다. 넷플릭스는 자신의 시청기록, 콘텐츠 평가 결과와 더불어 유사한 취향을 가진 다른 사용자의 영상 목록, 장르, 배우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물론, 처음에는 좋았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었기에. 그런데 과연,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게 해주는 알고리즘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주는 알고리즘이 좋기만 한 것일까?
빼앗긴 선택의 즐거움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도, 가족들과 장을 보러 갈 때도, 언제나 항상 밝은 모습으로 카트 손잡이를 양손에 쥔다. 마트에 들어서면 무엇을 사야 하는지를 까먹을 정도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번 달의 특가 상품도 보고, 계절별 과일들도 찾아본다.
그날은 유독 고기가 먹고 싶었는지 정육 코너 앞에 멈추어 섰다.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같은 다양한 고기들. 무엇을 어떻게 해 먹을지와 같은 고민이 시작된다. 돼지고기를 김치찌개에 넣어 먹을지, 소고기를 구워서 먹을지와 같은 행복한 생각들을 떠올린다. 그러다 저번 주에 TV에서 봤던, 에어프라이어로 요리한 돼지 바비큐가 생각나서 돼지고기로 정했다. 처음 해보는 요리인 만큼 기대감에 부풀어서 조금이라도 질 좋은 국산 돼지고기를 구매했다.
만약 알고리즘이 있었다면, 그날 내게 한돈을 추천했을까? 평소에 가성비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한돈을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이미 먹었기에, 먹었던 돼지고기를 추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고리즘은 해줄 수 없는 것, 선택의 즐거움. 인터넷 쇼핑과 알고리즘이 만나면 내 장보기의 즐거움은 없어질 것이다. 시식도 하고, 제품 성분도 비교해보는 즐거운 일들. 게다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알고리즘에 지배가 된다면 우리는 화면에 빠져, 집 밖을 나갈 일도 없어질 것이다.
수많은 제품의 질감이나 향기를 직접 느껴보거나, 콘텐츠의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고 느끼며 상상하는 일들. 그 일들의 즐거움은 점점 사라져 간다. 양방향성의 시대가, 다시 일방향의 시대로 회귀한다.
심화된 선택장애와 (양)극화
“뭐 먹을래?”라고 묻는 물음에, 아무거나라고 답한다. 그러고는 본인이 선택 장애가 있다며 웃으며 넘어간다. 누구는 사회 모두가 집단적 선택 장애가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요즘 우리는 선택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야기한다. ‘선택장애, 이제는 그만’, ‘알아서 추천해주는 서비스’.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로 인해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쉽게 선택하게 된다.
이제는 추천 없이는 선택하지 못한다.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시간만 몇십 분이 걸리기고 하고, 오늘 밤에 볼 영화를 고르다가 정하지도 못한 채로 잠에 들기도 한다.
추천은 추천에 불과하지, 결국 몇 개의 선택지 중에서의 최종 선택은 우리가 한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개의 선택지 중에 고르는 것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선택지가 주어진 순간, 우리는 선택을 잃게 된다. 결국 하나를 고르더라도, 선택지에 없었던 더욱 완벽한 후보는 언급도 되지 않고, 고려 대상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물렁해져가는 선택의 근육이다. 물론 무엇을 먹을지나 무엇을 감상할지와 같은 작은 선택들을 추천받는 것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에 대한 선택이나, 자신의 인생을 뒤집는 선택의 기회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없이 추천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사소한 선택으로부터 키워져야 했을 선택 근육. 그 사소한 선택들을 앗아가는 알고리즘이다.
이런 알고리즘이 뉴스와 접목된다면,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한다. 뉴스를 제작하는 신문사나 방송사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정치 노선이 있다. 같은 선거/정책에 대한 설문조사가 정반대로 나타내기도 하고, 특정 세력의 잘못을 덮기도 한다.
알고리즘이 만약 이런 뉴스와 접목된다면, 끝없는 극단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좌파에게는 좌파를 위한 뉴스만을 추천하고, 우파에게는 우파를 위한 뉴스만을 추천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고, 이를 받아들이기만 한다. 다양한 의견에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사회는 갈라져 간다. 정치뿐만 아니라 다른 갈등들에도 적용될 것이다. 알고리즘은 서서히 사회에 혐오를 뿌려내고, 나중에는 민주주의의 파괴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역주행의 아이러니
이유 없이 알고리즘으로 뜨는 영상들이 있다. 뜬금없는 저화질 영상이나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있는 영상들이 주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역주행이라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추천 영상 리스트에 존재하면 안되는 영상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능력'이라고 부른다.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는 영상들. 알고리즘의 숨겨진 능력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류가 아닐까?
원래는 추천 대상이 아님에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곧 알고리즘 밖에도 숨겨진 좋은 영상들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겠다. 알고리즘의 선택과 집중의 문제. 이는 알고리즘 밖의 원석들을 도외시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알고리즘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 추천은 우리가, 선택을 결국 당신의 몫이라는 속삭임에 넘어가고는 있지 않은가? 선택의 폭을 너무나 줄여두고, 그 안에서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더. 게다가 기업들은 우리가 편해지는 것만을 위해 추천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시간은 돈이다. 우리를 자신의 플랫폼에 1초라도 더 발을 묶게 하는 것이 더 많은 광고 노출로 이어지고, 타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을 보인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노출시켜서, 조금이라도 가두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쇼핑몰의 추천도 마찬가지이다. 소비자에게 계속해서 소비를 강요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은 사실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 그들을 위한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오늘은 어떤 밥을 먹을 것이고, 어떤 콘텐츠를 감상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한다. 더이상 일방적으로 강요받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늘 나의 선택은 내일의 나를 만든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작은 선택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