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감정
기합만 가지고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 굳이 '몇 천 시간', 혹은 '몇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언어를 빌리지 않아도 살다 보면 그저 이해가 된다.
'수고로이 일한 자'들은 그만큼의 삯을 받을 것이고, 때로 순리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느낄지라도 당신의 마음이 마냥 허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기만 했다면 말이다.
물론 노력이 배신할 수 있다.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 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경험이 누구나에게 있다. 손에 결과를 쥐고 마는 이들의 우상이 순수한 노력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노력 그 자체를 희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노력을 희구한다'는 말이 목적지가 아닌 '길'을 바라보는 일이고, 따라서 문장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순수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범인(凡人)들에게는, 환경의 어떠함 보다 나 자신을 향한 의심의 굴레를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세상을 향한 긍정적 시야를 회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노력과 성공을 긍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최선을 다했으므로 당신도 최선을 다했을 거라 굳게 믿고 싶다. 신성하고 고귀한, 불가침의 영역으로 노력이 영원히 존재하길 바란다.
- 독서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