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리의 내 이야기
나는 큰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꼭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겠노라 다짐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나는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의지와 열정으로 치면 똘똘 뭉친 나는 뭐라도 할 기세였다.
대학원 시작 첫날, 나는 알았다. 우리 학교에는 전 세계에서 피아노 좀 친다는 애들이 다 모여있다는 사실을...현실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조기교육의 수혜자도 아니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도 아니요.
또한 대대로 음악가 집안도 아니요.
그렇다고 피아노에 미친 아이도 아니요.
더군다나 영어가 유창하게 술술 나오는 학생도 아니었다.
열정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 나의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마음을 좀 내려놓고 차근차근하면 될 것을, 타고나기로 욕심이 많은 스타일이라 쉽지 않았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유치원 아이처럼 선생님한테 이쁨도 받고 싶었고,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싶었다. 콩쿠르에 나가서 상도 받고 싶었고, 오디션에 떡하니 붙고 싶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나는 예민해져 갔고 눈물로 지새우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직감했다.
이러다가는 내가 망가지겠구나.
세상에 미련 없이 모든 걸 내려놓겠구나.
무서웠다. 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를 다시 일으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생각났다. 나는 힘들 때면 중국집을 갔다는 사실을.. 기름기 가득한 아이들을 배 터지게 먹었다는 사실을... 나는 당장 중국집으로 향했다.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 마지막 희망이었다.
중국집 문을 열자마자 내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는 역시 친근했다. 나는 허세 가득하게 먹고 싶은 걸 다 주문했다.
게살 치즈 튀김만두 (crab rangoon)
제너럴 쏘 치킨 (General Tso Chicken )
새우볶음밥
중국식 볶음면 (Lo Mein)
혼자서 4개를 시키는 나를 종업원은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변명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날이었다. 음식 주문만으로도 내 마음은 벌써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음식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내 코를 향해 돌진하는 그들의 향기는 그저 황홀했다.
고칼로리에 지방덩어리,
달고 맵고 짜고의 최고봉!!
살들이 몸에 달라붙는 게 느껴졌지만, 괜찮았다.
그들도 나의 친구요. 나 좋다고 오는 애들인데 내가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먼저 게살 치즈 튀김만두를 집어 들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오 마이 갓!
치즈의 느끼함과 튀김의 기름이 합쳐지면서 내 입안은 축제의 향연 그 자체였다.
치즈와 기름을 한껏 느낀 뒤 우리의 소울 푸드인 치느님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흡사 양념치킨 맛을 내는 제너럴 쏘 치킨은 나를 한국으로 안내했고, 새우볶음밥과 함께하는 치킨의 맛은 말해 뭐하겠나. 이 축제에 면이 빠지면 또 섭섭하지. 기름기 가득한 볶음면은 방금 함께한 치킨과 볶음밥의 묵직함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기름과 같이 내 스트레스와 피로는 미끄러져 내 몸을 떠났고, 나는 점점 음식에 취해 세상을 다 가진 아이가 되어있었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건데 뭐…
이러라고 인생 사는 거지..
뭐 좀 못할 수도 있지.
버티는 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거야.
인생 길다. 요즘 100세 시대라잖아.
너 고작 20대야. 이제 베이비라고..
기죽지 마. 너는 대기만성형이다. ’
중국집에서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몰라도 나는 다시 슈퍼 원더우먼이 되어있었다. 난 슈퍼에 들려 아이스크림 샌드를 사서 한입 물고 콧노래를 부르는 여유까지 부리며 집으로 향했다.
이렇듯 난 유학생활 7년 동안 힘들고 지칠 때면 중국집을 찾아갔다. 나는 중국집 경제를 책임졌고 중국집은 나에게 살과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