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리의 내 이야기
엄마 말을 잘 안 듣던 그 시절,
엄마는 눈물을 보이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랬다.
엄마는 자기가 덜 입고 더 고생하면서 나를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다. 대부분 부모가 그렇듯 우리 엄마도 내가 잘 되는 게 유일한 바람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질 때도 딸 기죽을 까 봐 말 한마디 안 하셨다.
세상에 말 못 한 사정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우리 집도 그랬다. 엄마는 힘들어도 혼자 말없이 버텼다. 속이 곪을 때로 곪은 엄마는 수술대에 여러 번 누웠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텐데 엄마는 나한테 티 한번 안 내셨다.
나는 엄마의 희망이었고 대리만족이었다.
욕심이 많은 나는 매사에 열심히 하는 아이였고, 지기 싫어하는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칭찬도 꽤 많이 받았고, 엄마도 뿌듯해하셨다.
문제는 사춘기였다.
점점 머리가 커지면서 피아노 연습이 참으로 하기 싫었다. 매일 같은 부분을 몇 시간씩 반복한다는 게 너무나 지루했다. 없는 살림에 딸 피아노 시켜보겠다고 엄마는 그렇게 정성을 들였다.
그 정성에 못 미친 나를 못마땅해하는 엄마와 나는 매일 싸우고 울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우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은 그 뒷바라지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호강에 초를 쳤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서가 아닌 엄마의 만족을 위해 이러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난 참으로 그 시간이 싫었다.
사실 나는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포옹이 그렇게도 그리웠다. 엄마의 칭찬이 그렇게 받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은 그게 아니었다. 칭찬보다는 엄격함이었고, 따스한 포옹보다는 무뚝뚝하게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에 지쳐갔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 한번 없이 버텨내는 엄마를 보며 한편으로 미안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그런 미안함을 가질수록 내가 성공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쁜 길로 빠질 법도 하건만 너무 감사하게도 이런 두 가지 마음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효도를 하고 싶었다. 진정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 깜냥이 안 되는 일에도 겁 없이 덤벼들었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나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었지만 잘 참아냈다. 나는 알았다. 정말 부족한 나지만 나는 그녀의 자랑이요, 자존심이었다.
사실 내가 엄마였다면
나는 나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묵묵히 버텨준 엄마 덕분에
지금에 내가 있는 게 아닐까..
그때는 저 말이 그렇게도 싫었지만,
지금은 저 말이 그렇게도 고맙다.
나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나를 믿어주는 엄마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