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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닙 Sep 16. 2022

지난 프로젝트 백업을 시작하다.

퇴사할 결심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내 꿈을 위한 여행



7월 25일 혐오하는 월요일. 평소와 같이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다.

하지만 오늘은 분명 다르다.

내년 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개월 뒤, 퇴사를 결심했다.

고작 퇴사 결심한 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 싶겠지만, 디데이 카운터가 작동하기 시작한 개인의 역사적 날이다. 마음을 부지런히 정리하다 보면 퇴사일로 지정한 날 보다 더 빨리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퇴사 전에 부지런히 쓴 글을 모아 퇴사 후에 출간해야지.

사무실 책상 앞에서 볼펜으로 끄적이는 글이지만, 결국 멋진 한 권으로 펼쳐내리!


2022년 7월 25일. 결심 1일 차. D-169일.


벌써 7월 말이라니.

요즘 날씨를 봐서는 "아직 7월이라니!"가 맞지만, 한 해의 절반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퇴사 결심 1일 차에 내가 할 일은 지난 프로젝트 파일 백업이다.

근래에 갑자기 블루스크린이 뜨거나 강제 종료되어버리는 컴퓨터 탓에 여러 번 난감했다.

장비가 늘 문제다. 오늘 컴퓨터 부품의 일부인 SSD 하드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어 프로젝트 파일을 백업해야 한다.

그 김에, '퇴사를 위한' 백업도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업무일수록 제일 먼저 하는 게 맞다.

유독 온갖 '정리'에 취약한 사람이지만, 퇴사를 전제로 한다면 다르다.

쓰임을 몰라 좀처럼 삭제하기 어려웠던 작은 파일부터 주저 없이 지워나간다.


25일은 직원들의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자, 지난달의 정산 건이 마무리되는 달이다.
큰일이 터졌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금전 손실이 발생했다.


마이너스 33만 원.

엄연히 따지면 오늘 잃은 돈이 아니라 잃었던 돈을 발견한 셈이다. 의식하지 못했을 뿐.

지난달 사무실 벽에 붙일 포스터 스무 장을 법인 카드로 결제한 돈이 월급날까지 입금되지 않았다.

결재를 올리고 정산하는 과정에서 뭔가 누락된 모양이다. 급하게 경영팀을 찾아갔지만 이미 끝난 정산인데 어쩌겠냐는 싸늘한 눈총뿐이다. 확인을 잘한 거냐고 묻는데, 그럼요. 진즉 수포자의 길을 택하고 혹여 실수라도 생길까 잔뜩 긴장한 채 월 말 정산 금액은 최소 다섯 번은 다시 계산하는걸요. 왜 디자이너가 전표까지 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큰 금액이라 다시 가능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이미 올해 분기가 지나 감사까지 끝난 금액을 어쩌라는 거라며 버럭 화가 돌아온다. '절대 불가능'이란다.

하필 지난달은 일 년의 절반인 한 분기, 6월이었다.

당황한 나에게 자리로 돌아가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부장은 등을 돌린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해볼까 했지만, 그가 지난달 정산을 어려워하는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추어예요? 알아서 하세요."


그런 사람에게 면담은 무슨.

누군가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직장에 다닌 지 벌써 두 해가 되어가는 직원인 나는 '여기'라서 수없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33만 원도 셀 수 없이  잃어온 것 중 하나일 뿐이다.

회계의 'ㅎ'자도 모르는 나는 이미 끝난 일이라는 한마디에 영영 통장에 채울 수 없게 된 33만 원을 마음으로 품었다.


그 누구도 나의 난처함을 도와주지 않는 회사를 위해 내가 일 하고 있구나. 혹이 잔뜩 난 뒤통수를 한 대 더 얻어맞은 것만 같다.

역시 결심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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